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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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

'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이란 게 나의 좌우명이다. 조만간 안자이 미즈마루 화백에게 족자에 그렇게 써달라고 해서 거실에 걸어 두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글씨 밑에 철제 아령 그림 같은 게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 어째서 '첫째가 건강'이고 '둘째는 재능'이냐 하면, 단순하게 생각해서 건강이 재능을 불러들이는 일은 있어도, 재능이 건강을 불러들일 가능성은 일단 없기 때문이다. 물론 건강하다고 해서 재능이 부쩍부쩍 늘어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노력과 집중력을 유지하려면 아무래도 체력이 필요하고, 노력과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재능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인 것이다. 하기야 이런 사고방식은 천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천재란 아무리 ..

내 카페 종업원이었던 야마구치 이야기

지난번에 야마구치 마사히로가 찾아와서 "저, 하루키 씨 제 펜네임 하나 지어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갑자기 '야마구치 마사히로'라는 이름을 대봤자, 독자들 대부분은 그게 누구인지 잘 모를 테니까, 일단 설명을 해둔다면 야마구치 마사히로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내가 경영하고 있던 재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인물이다. 당시는 무사시노 미술 대학의 학생이었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아서 곤란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도중에 슬그머니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하여간 그런 인물인데 그 후 광고 관계의 프로듀스 회사에 들어가,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책을 만들거나 해서 지금도 가끔 만나 술을 마시곤 한다. 부인은 상당히 미인인데 안자이 씨는 나를 만날 때마다 "야마구치에게는 아까워!"라고!" 말하고, 나도..

크로켓과의 밀월

옛날에 나는 '크로켓'이란 이름의 크로켓 색깔의 커다란 수고양이를 키웠다. 이 고양이를 볼 때마다 크로켓이 먹고 싶어지는 것이 내게는 좀 문제였다. 하지만 크로켓이란 미워할 수 없는 음식이다. 나는 크로켓을 좋아한다. 크로켓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는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테이블 앞에 앉아 무심히 크로켓을 먹는 사람을 뒤에서 갑자기 야구방망이로 습격하는 일은 좀처럼 없을 것 같다. 물론 먹고 있는 것이 불고기면 그래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당연하다). 아내는 기름을 써야 하는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덕분에 아내에게서 결혼 이후 크로켓이니 튀김을 얻어먹은 기억이 없다. 그래서 집에서 크로켓이 먹고 싶으면 어딘가에 가서 만들어 놓은 것을 사 오든가,, 혹은 내가 직접 만들 수밖에 없다...

도넛

이번에는 도넛 이야기이다. 그러니 지금 진지하게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은 아마 읽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넛 이야기니까. 나는 옛날부터 단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넛만은 예외로 가끔 이유 없이 무작정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어째서일까? 생각건대, 현재 사회에서 도넛이라는 것은 단순히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한 개의 튀김과자에 머물지 않고, '도넛적인' 모든 요소들을 종합하여 링 모양에 집결한 하나의 구조로까지 그 존재성을 지양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으음,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그저 도넛을 아주 좋아한다는 말이다. 내가 보스턴 교외에 있는 터프츠 대학에서 '연수 소설가'로 적을 두고 있을 때, 나는 학교 가기 전에 곧잘 가게에서 도넛을 샀다. 학교 가는 도중에 있는..

가르치는 데 서툴다

나쓰메 소세키가 학교 선생님을 했다는 것은 아시는지? "도련님"의 주인공은 물리 교사지만, 소세키 자신은 영어를 가르쳤다. 그 시대로서는 드물게 영국 유학까지 갔다 왔던 그는 발음이 너무나 유창해서 학생들이 모두 감탄했다고 한다. 열심이었고 유능한 선생님으로 기성 교육법에 얽매이지 않은 독자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 가르치는 법은 엄했지만 많은 학생들이 흠모했다. 그러나 자신은 '나는 선생이 맞지 않아' 하고, 도쿄 대학의 교수 자리를 걷어차고 작가가 되었다. 그야 매일 어딘가에 출근해서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것보다 집에서 좋아하는 소설을 쓰는 편이 더 마음 편했을 것이라고 나도 생각한다. 소세키는 물론 그 후 작가로서 대성하여 일본 근대 문학의 기초를 닦았지만, 몸을 망가뜨려 만년은 병상에서..

넓은 들판 아래에서

옛날, 내가 아직 학생이었던 시절, 신주쿠 서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해서, 그것은 '특별히 쓸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거나,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거나 하는 복잡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그저 텅 비고 넓은 들판뿐이었다. 지금은 그곳에 고층 빌딩이며 호텔이며 도청 청사 등이 빽빽하다. 그래서 무엇인가 편리해진 것들도 있을까. 아무튼 잘은 모르겠지만, 뭐 편리해지기는 했을 것이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통근하거나 쇼핑하러 가고 있으니. 그러나 나 무라카미에 한해서 말하면, 특별히 편리해졌다는 실감은 없다. 신주쿠 서쪽이 옛날 들판인 그대로이더라도, 특별히 (전혀) 불편은 없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

아, 안 돼!

몇 가진가의 사소한 행운이 잇달아 일어나는 일이 있다. 그런 하루가 있다. 예를 들면 스톡홀름에서 렌터카를 빌렸을 때가 그랬다. 호텔까지 차를 보내 주었는데, 사브 9-3의 번쩍이는 새 차였다. 계절은 오월, 하늘은 스칸디나비안 블루로 맑게 개었다. 고속도로를 곧장 남쪽으로 달리다가 도중에서 시골의 근사한 호텔을 발견하면 며칠 머물다가 페리를 타고 차와 함께 덴마크로 갈 계획이었다(지금은 다리가 개통되었지만, 이때는 아직 페리가 우아하게 왕복하고 있었다). 좋겠지! 그곳에서의 일도 마침 끝나서 우리는 상쾌한 기분으로 이 장거리 드라이브를 시작하려고 했다. 아침 일찍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차 시동을 걸고 (부룽!) 시가지를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들어선다. 수동 변속기는 마치 따뜻한 나이프로 버터를 자를 때처..

와일드한 광경

이번에는 화장실 이야기이니, 그런 부류의 아름답지 않은 화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지금부터 식사를 해야 하는 사람은 읽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른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주시기를.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변비를 경험한 적이 없다.'그거, 원숭이나 마찬가지 아냐.' 하고 종종 무시당하지만, 원숭이든 반달곰이든 상관없다. 인생에서 괴로운 일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런 나였지만 두 번, '기미는 있는데 볼일을 보지 못한' 경험이 있다. 지저분한 이야기지만, 나왔던 것이 도로 들어갈 지경이었다. 왜냐고? 변소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와일드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그리스의 아토스 반도의 어느 작은 수도원에서였다. 이곳 변소에 대해서는 전에 어딘가에 쓴 적이 있으므로 생략한..

뛰기 전에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미국에 이블 크니블이라는 이름의 유명한 직업 모험가가 있다. 이 사람은 평생 동안 다양한 종류의 모험에 도전해 왔지만. 그중에서도 평판이 높은 것은 오토바이로 그랜드 캐니언을 뛰어넘은 대단한 시도였다. 도움닫기를 하기 위해서 활주 사면을 만들어 놓고 그 사면을 전속력으로 달려 올라가서 그대로 건너편 대안까지 피융 하고 호를 그리며 날아갔던 것이다. 이런 것은 보통(정상적인) 사람은 여간해서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계곡의 폭이 가장 좁은 곳이라고 해도, 그랜드 캐니언은 정말로 넓은 곳이다. 그래서 이블 크니블 씨가 이 위업을 달성한 뒤에 한 말이 생각난다. '점프하는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은 착지를 하려는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과연 그렇군, 듣고 보니 확실히 그렇다. 기세 좋게 점..

코트 속의 강아지

물론 세상에는 여러 가지 불쾌한 일들, 마음에 들지 않는 갖가지 일들이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도대체 얼굴 사진 찍는 일만큼 싫은 것이 없다. 옛날부터 사진에 찍힌 내 얼굴은 이상하게 좋아지지가 않았다(사진에 찍히지 않은 실물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특별히 더 그렇다는 뜻이다). 그래서 얼굴 사진 촬영을 요구하는 일은 가능한 한 거절하는데, 그래도 폴 매카트니도 노래하듯이 인생은 길고 구불구불한 길, 거절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어째서 사진에 찍힌 자신의 얼굴을 좋아하지 않는가 하면, 나는 카메라를 향하는 순간 거의 반사적으로 얼굴이 굳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카메라맨이 '예, 힘을 빼고 웃어 주세요.'라고 해도, 나는 긴장해서 더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웃는다는 것이 사후 경직 예행연습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