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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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태우기

일반적으로 말해서 소설가라는 것은 비교적 이상한(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연연하는 인종이라고 정의해도 좋을지 모른다. 때로는 별것도 아닌 일에 대해서 궁금해 미치려고 한다. 예를 들면 1970년 무렵에 우먼 리브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여성 해방을 주장했는데, 그 메시지의 일환으로서 브래지어를 태운 일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광장에 모여 기세를 올렸고 타오르는 장작불더미 속에 모조리 브래지어를 던져 넣었다. '이런 것이 여성을 사회적으로 속박하고 있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 그녀들의 주장이었다. 신문기자들은 그 사진을 찍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것은 뭐 그것대로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남자여서 브래지어가 물리적인 관점에서 어느 정도 ..

일편단심 야쿠르트 팬인 나

나는 프로야구 팀으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응원하고 있다. 응원한다고 해도 응원단에 들어가거나 선수에게 돈을 주거나 하는 것 같은, 무엇인가 구체적인 일을 하는 건 아니고, 혼자 쭈그리고 앉아서 '야쿠르트가 이겼으면 좋겠는데...'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할 뿐이다. 영화 [디어 헌터]에 러시안룰렛이라는 게임이 나온다. 리볼버 권총에 탄환을 한 발만 집어넣고 실린더를 빙글빙글 돌려놓고서,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갖다 대고 방아쇠를 잡아당기는 게임인데,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응원하는 것은 6개의 탄창에 4발의 탄환을 집어넣고 러시안룰렛을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길 확률이 대략 3분의 11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약한 팀을 응원하는 게 건강에 좋을 리가 없다. 내가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응원..

장어

친구에게 빌린 번쩍거리는 검은 대형 메르세데스 벤츠를 운전해서 주차장에 들어가다가, 오른쪽 사이드 미러를 그 입구 기둥에 쾅 박아버려, '아, 큰일 났다. 어쩌지!' 하며 식은땀을 흘리다가 눈을 뜨니 새벽 3시 42분이었다. 이 꿈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분명 오늘은 장어를 먹으라는 것이리라. 검은 메르세데스 벤츠는 장어의 상징이고, 미러를 부딪친 것은 칼로리가 높은 것을 먹는 것에 대한 나의 자책으로 풀이한다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다. 사실은 그저 오늘은 장어를 먹고 싶다고, 뭐, 그렇게, 문득 생각했을 뿐이다. 꿈을 꾼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장어는 정말 맛있다. 무엇을 감추랴, 나는 장어를 무척 좋아한다. 매일 먹는 것은 아니지만, 두 달에 한 번 정도 '그래, 오늘은 장어를 먹..

양복 이야기

요전에 나는 옷장의 옷들을 정리하다가 양복을 다섯 벌이나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넥타이도 스무 개나 있었다. 그러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과거 3년 동안 양복을 입은 적은 겨우 한 번밖에 없고, 넥타이 역시 한 해에 몇 번 맬까 말까..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양복을 가지고 있는 거지 하고 나는 스스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일단 명색이 사회인이니 무슨 때를 위해서 계절마다 양복을 준비해 두는 것은 상식이겠지만, 그것 역시 '흥, 나는 양복 따윈 안 입어.' 하고 형식을 거부하면 직업병으로 통하지 않을 것도 없다. 어째서일까 하고 나는 머리를 갸우뚱거리다가 문득 생각났는데(까맣게 잊고 있었다.), 마흔 전후쯤 되었을 때 '그래, 이제 내 나이 젊지도 않은데 슬슬 제대로 된 차림을 하고 제대로 어른다..

카레라이스에 나물무침 같은 회의

가끔 텔레비전 야구 중계 같은 걸 보다 보면, 경기 후의 인터뷰에서 투수에게 "오늘의 투구가 100점 만점에서 몇 점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 아나운서를 보게 되는데, 대체 그런 질문을 해서 무슨 도움이 될까? 대개 그런 질문을 하는 아나운서는 투수가 "글쎄요, 90점 정도일까요"라고 하면, "아아, 그렇습니까? 90점입니까?" 하는 식으로 얘기를 끝내 버리고 만다. 얘기는 거기서 끝나고, 90점이라는 자기 평가가 과연 어떤 기반과 체계 위에서 성립된 것인가 하는 분석까지는 가지 않는다. 이래서는 답안지를 받고 어디가 틀렸는가를 반성하지도 않고 "와아, 90점이야, 90점" 하고 떠들어대는 초등학생과 하나 다를 바가 없잖은가. 도대체 무엇이 100점 만점인가 하는 설정부터가 애매한데도, "..

내 잠버릇의 3대 특징

나는 대체로 쉽게 잠이 드는 편이어서, 이불을 뒤집어쓰자마자 정신없이 깊이 잠들어버린다. 금세 잠이 든다, 잘 잔다, 어디서든지 잘 잔다는 것이 내 잠의 3대 특징인데, 잠이 잘 들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목격하면 적지 않게 불쾌한 모양이다. 나도 나보다 빨리 잠드는 사람을 보면-그러한 경우는 정말로 극히 드문 일이지만-이 친구, 바보 아냐하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처남이 우리 집에 놀러 와서 함께 술을 마시고, 열한 시가 되었기 때문에 "그럼 이만 잘까?" 하고 말하고서 각자의 방으로 철수했는데, 문을 닫는 순간에 무엇인가를 잊어버리고 그냥 나온 것을 생각해내고 객실에 돌아가 보니까 처남은 벌써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면서 잠에 빠져 있었다. 약 10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아무리 빨라도 ..

대체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어디가 그렇게 좋단 말인가!

내 주위에는 어찌 된 일인지 잘생긴 남자를 밝히는 여자들이 많다. 나이 서른이 지나 남편도 있으면서 뭘 그리 잘생긴 얼굴을 밝히느냐고 나는 생각하지만, 마음이 약해서 그런 소리는 입 밖으로 내지도 못한다. 단지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나는 그런 여자들에게 훌리오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 출판사에서 내 글을 담당하고 있는 여자도 훌리오 증후군에 걸린 환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녀는 훌리오 전에는 이브 몽땅의 팬이었다. 몽땅이 일본에 왔을 때는 아파서 누워 있는 남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현금 카드로 은행에서 몰래 2만 엔을 인출해서는, 티켓을 사서 혼자 콘서트에 가 '이제 남편 따윈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냐'라고 생각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대단한 사람이다. 그래서 아마도 훌..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속아서 모기향을 빼앗긴 뒤, 우리에게는 바다거북의 습격으로부터 몸을 지킬 만한 것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전화나 우편으로 통신판매 회사에 새 모기향을 주문하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짐작했던 대로 전화선은 끊겨 있었고, 우편배달도 보름 전부터 끊긴 상태였다. 생각해 보면 저 교활한 바다거북이 그런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둘 리가 없다. 녀석은 여태까지 우리들이 갖고 있던 모기향 때문에 실컷 쓴맛을 보았다. 지금쯤 틀림없이 푸른 바다 밑바닥에서 득의에 찬 미소를 짓고, 밤을 위해서 낮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우린 이제 끝장이군요." 그녀가 말했다. "밤이 되면 둘 다 바다거북에게 잡아먹힐 거예요" "희망을 버려선 안 돼" 내가 말했다. "지혜를 짜내면 절대로 바다거북 따위한테 먹히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카키피 문제는 뿌리가 깊다

세상에 영구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물리학의 일반상식이지만, 반영구운동이랄까, '영구 운동 같은 것'은 꽤 있다. 예를 들면 카키피(과자 이름. 땅콩이 감씨 모양의 과자에 섞여 있음)를 먹는 것이 그렇다. 카키피라면 대개 알 것이다. 톡 쏘는 매운 감씨와 통통하고 맛있는 땅콩을 섞은 뒤에 잘 배분해 가면서 먹어야 한다. 누가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아이디어다.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배합이다. 그걸 착안한 사람에게 노벨 평화상을 주고 싶다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지만(설령 말해도 상대해 주지 않겠지), 탁월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감씨가 만담을 할 때 공격하는 역이라면, 땅콩은 멍청하게 받아주는 역에 해당하겠지만, 땅콩에는 땅콩의 통찰력이 있고 인격이 있어 그저 끄덕거리기만 하는 역으로 끝나지 않..

파스타라도 삶아라!

나는 이탈리아에서 살 때 운전면허를 땄다. 따라서 대담하게도 초보 드라이버 시절을 로마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래서 -로마를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은 아마 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지간한 것은 무서워하지 않는다. 로마 시내는 세계 다른 대도시보다도 운전사에게 스릴과 혼란과 흥분과 두통 그리고 비뚤어진 큰 기쁨을 나눠주기 때문이다. 정말이다. 의심나는 사람은 로마에 가서 렌터카를 빌려 직접 운전해보라. 이탈리아인 운전사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뭔가 불만이 있으면 이내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동시에 손도 휘두른다. 운전하면서 이 짓을 하니 옆에서 보고 있으면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나의 지인인 이탈리아인은 서툰 운전을 하며 탈탈 달려가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자 얼른 추월하더니, 피아트 우노 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