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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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마음

존 어빙이 자신의 소설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써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영화 "사이더 하우스 룰"을 보러 갔다. 이야, 정말 잘 만들었군. 하고 감탄했다. 원작은 너무 긴 데다 설교 풍이 많고, 곳곳에 약간 억지스럽기도 한데, 과연 영화에서는 그런 부분이 편집되어 아주 좋은 분위기로 정리되어 있었다. 물론 어빙 소설의 최대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그 길이와 끈질김에 있지만, 어쨌든......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스콧 피츠제럴드에서부터 포크너, 카보티, 챈들러 심지어는 레이몬드 커버까지 수많은 일류 실력파 작가가 할리우드에 도전했지만, 아카데미 각본상을 획득한 것은 존 어빙이 처음이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와 관련해서 약간이라도 해피한 결과를 남긴 작가는 지금까지 거의 한 명도 없었다. 그런 징크스를..

스키야키가 좋아

스키야키를 좋아하는지요? 나는 상당히 좋아한다. 어릴 적에 '오늘 저녁은 스키야키다.'라고 하면 얼마나 기뻤던지. 그러나 어찌 된 이유에서인지 내 인생의 어느 시점을 지난 후부터(어느 시점일까?), 내 주위에서는 스키야키를 좋아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 누구에게 질문해도, '스키야키? 음,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데요.' 하는 냉담한 대답이 돌아온다. 아내도 '스키야키 같은 건 5년에 한 번 먹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요?'라고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결혼해서 제대로 스키야키를 먹어 본 기억이 없다. 5년에 한 번이라면, 올림픽보다도 횟수가 적지 않은가. 누가 나와 함께 스키야키를 먹어 준다면, 나는 곤약과 두부와 양파를 좋아하니 고기 위주로 먹어 줄 사람이라면 무척 기쁘겠다. ..

30년 전에 일어난 일

이사를 한 뒤에 서고 같은 것이 생겼다. 그래서 박스에 넣어서 오랫동안 창고에 처박아 두었던 낡은 잡지 더미를 겨우 가까이 둘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부피가 큰 것을 언제까지나 가지고 다닐 수는 없으니 적당한 시기에 처분해야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오늘날까지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다니던 것이다. 1970년 전후의 「평범 펀치」니 「영화평론」이니 「태양」이니 「일본판 롤링 스톤」이니 「다카라지마」니 하는 잡지들이다. 「평범 펀치」는 아직 오오하시 아유미씨가 컬러풀한 표지를 그릴 무렵의 것이고, 「anan」도 창간호부터 몇 년 치인가 모아 온 것인데, 1년쯤 전에 내가 키우던 수고양이가 히스테리를 일으켜 오줌을 싸질러서 많이 못 쓰게 되었다. 아까운 짓을 했다. 고양이 오줌이란 것, 정말 고약하다(가끔 히스테..

세상은 중고 레코드 가게

내 취미는 오래된 LP 레코드 콜렉션이다. 콜렉션 범위는 주로 재즈인데,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틈만 나면 중고 레코드 가게를 찾는다. 요전번의 스톡홀름 체제는 사흘이었는데, 나는 그 사흘 동안 레코드 가게에 박혀 지냈다. 그 사흘을 아내는 앤티크 식기 가게에 박혀 살았다(그것이 그녀의 취미이다). 덕분에 둘이서 사 모은 레코드와 그릇의 무게에 짓눌려 돌아오는 길에는 죽을 뻔했다. 스톡홀름까지 가면서 시내 관광 따위는 하나도 하지 못했다니. 참 희한한 부부다. 좋은 중고 레코드 가게를 찾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조건 그 지방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나는 '어디 중고 레코드 가게 없습니까?' 하고 물으면서 돌아다닌다. 시내 지도를 준비해서 대답을 들을 때마다 그곳을 표시해 나간다. 이국의 지하철을 갈..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옛날(지금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어느 전기면도기 제조업체가 아침 통근 시간 도중의 샐러리맨을 잡고 길거리에서 면도를 해 주는 실연 광고를 한 적이 있었다. 깎여 나온 자기 수염을 보면서, '아까 면도기로 깎고 왔는데, 그래도 이렇게 수염이 남아 있군요.' 하고 놀라는 내용이었다. 광고여서 당연한 조작도 있었겠지만, 꽤 현실감이 있었다. 나는 가끔 이 제조업체의 면도기를 사용해서 광고와는 반대의 일을 해 본다. 먼저 전기면도기로 수염을 깎고 잠시 후 보통 면도기로 한 번 더 깎는 것이다. 왜 일부러 나는 그렇게 귀찮은 짓을 하는가? 먼저 첫째로 심심해서, 둘째로 호기심에서, 앞에서도 말했지만, 요컨대 그런 부류의 사람이 소설가가 되는 것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와 같은 순서에서도 역시 남아 있던 ..

상당히 문제가 있다

서른이 되기 조금 전에 아무런 맥락도 없이 문득 '소설을 쓰자'는 생각이 들어 쓴 것이 공교롭게 한 문예지의 신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내게는 습작이라는 것이 없다. 처음 쓴 것부터 전부 그대로 '상품'이 되었다. 그때는 뭐, 그런 것이겠거니 하고 마음 편하게 받아들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뻔뻔스러운 일이다. 흠흠, 이건 내 자랑을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사실을 쓰고 있을 뿐이다. 나는 '수상이 결정되었습니다.' 하는 연락을 받고 출판사에 가서 담당자를 만났다. 그리고 출판부장(인지 누군지)에게 가서 인사를 했다. 보통의 의례적인 인사이다. 그랬더니, '당신 소설에는 상당히 문제가 있지만, 뭐 열심히 해 보세요.'라고.' 말했다. 마치 실수로 입에 넣은 것을 퉤 하고 뱉어내는 듯한 어조였다. 이 녀..

김밥과 야구장

나는 열여덟 살 때 대학에 들어가면서 도쿄에 온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야쿠르트 스왈로즈 팬이다. 당시는 산케이 아톰즈라는 이름이었는데, 터무니없이 약한 팀이었다. 언제나 최하위거나 기껏해야 4, 5위였다. 어째서 이렇게 약한 팀을 응원하게 되었는가 하면, 진구 구장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구장도 좋아했고, 구장 주변의 분위기도 좋아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지금의) 스왈로즈를 응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반 라이온즈라는 것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나 한심한 시합들이 많아서 외야석 잔디 위에서 곧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요전에 의학 책을 읽다가, '응원하는 스포츠 팀이 이기면 인간을 건강하게 활성화하는 어떤 분비물이 체내에서 보다 많이 분비된다.'라는 문장이 있어 나는 아연했다. 그것은 요컨대 ..

옛 종업원이 선물한 단골 삽화가의 그림 있는 티셔츠

얼마 전에 이 수필에서 야마구치 시모다마루, 즉 야마구치 마사히로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언급을 했더니, 그 며칠 뒤에 야마구치가 찾아와서 얼음에 채운 은어를 열 마리가량 놓고 갔다. "이게 뭐지?" 하고 내가 으니까 "에헤헤헤, 시모다의 어머니가 무라카미 씨에게 갖다 드리라고 보내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따금 좋은 이야기도 써달라고 부탁드리라고요. 아무튼 시골 분이라서요" 하고 대답했다. 그래서 은어는 감사히 받아, 소금을 쳐서 구워 먹고 찌개를 해 먹고 튀김도 해 먹었다. 굉장히 맛있는 은어였다. 도쿄에서는 맛있는 은어를 우선 구할 수가 없으니까 귀중하다. 타인의 험담은 해놓고 볼 일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는 세 번쯤 야마구치 마사히로=시모다마루에 대하여 에세이를 썼지만, 좋은 이야기는 한 번도 쓰..

로도스 섬 상공에서

아슬아슬한 한계까지 '죽음'에 가까워지는 순간이 사람에게는 있지 않을까. 실제로 하마터면 죽을 뻔한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달리 특별히 이렇다 할 이유도 관련성도 없이 불시에 죽음 그 자체의 존재를 아주 가깝게 느끼게 되는 것 말이다. 우리는 평소에는 그다지 죽음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그런 생각을 매일 한다면 피곤하겠죠). 그러나 어느 순간, 어쩌다 보면 죽음의 숨결을 문득 목덜미에 느낄 때가 있다. '그래, 우리는 극히 당연하게 살아서 낮에 튀김 덮밥을 먹고 농담을 하고 웃고 있지만, 사소한 변화로 간단히 소멸되어 버리는 덧없는 존재야' 라는 것을 실감한다. 거기에 맞춰 주변 세계의 풍경이 일시적으로나마 자신의 모습을 휙 바꾸어 버린다. 나는 언젠가 그리스에서 낡은 쌍발 프로펠러기를 ..

어정쩡한 내 고향

나는 교토에서 태어났지만 바로 효고 현 니시노미야 시 슈쿠가와란 곳으로 이사를 했다가, 다시 같은 효고 현의 아시야 시로 옮겼다. 그러니까 내가 어디 출신인가는 명확하지 않지만 10대를 아시야에서 보내고, 부모님의 집도 그곳에 있으니까 일단은 아시야 출신이라고 한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좀 더 막연하게 '한신칸 출신'이라고 해야 내 마음도 편하겠지만, 이 '한신칸'이라는 말의 뉘앙스는 간사이 지방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이해하기 힘들다. 하긴 아시야라고 해도 내가 자란 곳은 지금 한창 화젯거리가 되고 있는 공주병 붐이 일어난 아시야가 아니라, '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인 아시야니까 아무래도 솔직히 "아시야 출신입니다"하고 말하기가 좀 그렇다. 괜히 쑥스럽다. 우리 집 주위는 납치당할 것 같은 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