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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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기피증과 공부 중독증

세상에는 크게 나누어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가르치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잘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배우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양쪽 다 잘하는 사람도 있고, 양쪽 다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충 처음에 말한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뉠 것이다.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배우기를 좋아하는' 타입으로,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데는 전연 소질이 없다. 그러니까 강연 의뢰라든가 문화 교실의 '소설 작법 강좌'를 맡아 달라는 의뢰 같은 게 들어와도 언제나 사양하고 있다. 세상에서 뭐가 불행하니 어쩌니 해도 가르치는 게 서툰 사람이 남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야 할 때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나한테 소설 작법을 배운 사람이 훗날 도대체 어떤 소설을 쓸지를 상상하는..

체중계

"여러분은 체중계를 좋아하십니까?" 하고 누군가가 물으면, "그건 그냥 체중 재는 기계 아냐. 좋아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 하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이란 대체로 그런 것 같으니까. 혹은 "체중계에 올라설 때마다 불쾌해지기 때문에 체중계 같은 건 너무 싫어!" 하는 사람도 개중에는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미움을 받는 체중계가 불쌍하다고 동정하지만. 솔직히 털어놓으면, 나는 개인적으로는 체중계라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까지 몇 개나 체중계를 소유하며 생활을 함께 해 왔다. 언제나 욕실 한 구석에서 말없이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데, 가끔 한번씩 끌어내서 올라타고는, "으으." 니 "아아." 니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그대로 한쪽 구석에 밀어붙여 놓게 되는 체중계가..

안녕을 말하는 것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 속에 '안녕을 말하는 것은 잠시 죽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나도 여차할 때, 그런 결정적인 대사를 한 번쯤 읊어 보고 싶다고는 생각하지만, 쑥스럽다고 할까, 좀처럼 맨 정신으로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취하면 실수를 할 것 같고 말이다. 이러니 평생 못할 수밖에. 챈들러 씨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견을 좀 늘어놓자면, '안녕'을 말한 직후의 죽음은 실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 우리가 정말 잠시 죽는 것은 자신이 '안녕'을 말했다는 사실을 몸 한가운데에서 직면했을 때다. 이별을 말했다는 사실의 무게를 자기 자신의 일로서 실감했을 때. 그러나 대개의 경우,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주위를 한 바퀴 돌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도 지금까지의 인..

쓸모없는 물건도 버릴 수 없는 집착

나는 특별히 물건에 집착심이 강한 것도 아니고, 수집벽 같은 것도 그다지 없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데도 내버려두면 여러 가지 물건이 주위에 걷잡을 수 없이 쌓이게 된다. 레코드니 책이니 테이프니 팸플릿이니, 그밖에 서류, 사진, 시계, 우산, 볼펜 같은 종류의 물건들이다. 어떤 것은 그 나름대로의 필연성이 있다고 늘어나고, 어떤 것은 아무런 필연성도 없이 늘어난다. 그러나 필연성의 유무에 상관없이, 그러한 사물은 자동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법이고, 우리들의 한정된 힘으로 그 흐름을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까지 나에게는 느껴진다. 그러한 무용지물의 자연적 증가 경향은 젊었을 때는 그다지 현저하지 않지만, 인생이 어떤 시점을 넘어서면, 돌연 명확한 형태를 보이며 우리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다...

이상한 동물원

나는 동물원을 좋아해서 외국 여행을 가면 곧잘 그 지역의 동물원을 찾는다. 그래서 세계의 여러 동물원들을 찾아가 보았다. 중국 대련의 동물원에 갔을 때, '고양이'라는 간략한 이름표가 걸린 우리가 있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우리인데, 안에 고양이가 한 마리 뒹굴며 자고 있었다. 극히 평범한 고양이였다. 설마 싶어서, 한참 주의 깊게 관찰해 보았지만, 아무리 오래 지켜보아도 역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평범한 갈색의 줄무늬 고양이였다. 나는 비교적 그때 한가했기 때문에 우리 앞에 서서 그 고양이를 한참 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고양이는 동그랗게 몸을 구부리고 잠을 잤는데, 전혀 눈을 뜨지 않았다. 깊은 숙면을 취하고 있는 듯했다. 중국까지 와서 어째서 한 마리 평범한 고양이가 평범하게 자는 것을 이렇게 열심히 ..

버드나무여, 나를 위해서 울어 주렴

버드나무를 좋아하는지? 나는 아주 좋아한다. 나는 생김새가 가지런한 한 그루 버드나무를 발견하고 내 정원에 옮겨 심어 놓았다. 마음이 내킬 때면, 그 아래에 의자를 가져가서 태평스럽게 책을 읽는다. 겨울은 역시 춥지만, 봄에서 초여름까지는 가는 녹색 잎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이 여간 기분 좋은 게 아니다. 버드나무는 건강한 나무여서 방치해 두면 이내 잎이 빽빽하게 어우러지기 때문에, 종종 나무를 다듬는 기술자에게 부탁해서 산발을 한다. 인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산발을 하면 외견이 산뜻해지고 가지도 가벼워져, 그것이 새로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마치 소녀들이 지칠 줄 모르고 종일 댄스에 미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휘늘어지기도 하고, 흐르기도 하고, 회전하기도 하고. 버드나무는 날씬하고 우아하다. ..

워크맨을 위한 진혼곡

4년 간 혹사를 당해 온 워크맨이 최근에 그 성능이 나빠졌기 때문에 신형을 구입하기로 결심했다. 한마디로 44년 간이라고 해도, 내 경우에는 매일 아침 조깅을 할 때 서포터로 워크맨을 팔에다 묶고 달렸으니까, 소모 정도가 보통 사람의 경우보다 훨씬 더 심할 것이다. 그래서 정확히 표현한다면, '워크맨'이라기 보다는 '런맨'이 되는 셈이긴 한데, 하여간 4년 동안 불평 없이 땀투성이가 되고, 비를 맞고, 뒤흔들리고, 어떤 때는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면서 탈 없이 잘도 버텨 주었다고 생각한다. 기계를 전문적으로 받아 주는 절이라도 있으면 워크맨 공양이라도 올려 주고 싶을 정도다. '무라카미 주행 음악 동자'라는 법명이라도 붙여서 말이다. 오디오 가게에서 사 온 두 번째 신형 워크맨은 첫 번째 워크맨에 ..

고양이의 자살

마르탱 모네스티에라는 프랑스인 저널리스트가 쓴 [자살 전서]는 아주 흥미로운 책이다. 여기에는 동서고금의 자살에 대해서 막대한 양의 사실이 한 권으로 집약되어 있다. 나는 읽으면서 감탄하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하고, 깊은 생각에 빠지기도 하는데, 그중 제1장에서 각종 동물들의 자살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동물들도 자살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로마의 프랑스인 학교 교장이 키우던 수고양이는 프랑스 대사가 기르던 암고양이에게 사랑을 호소했지만, 단호히 거절당하자 팔네제 관의 발코니에서 몸을 던졌다. 세상을 비관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장을 보았던 사람의 이야기로는 '아무리 봐도 자살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상상에 지나지 않지만, 프랑스 대사가 ..

독신 남성이란

여성 잡지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하고 소리치고 싶어 지는 일이 종종 있다. 그래서 그런 유의 잡지에는 손을 대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 밖에 아무것도 읽을 것이 없을 때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페이지를 들춰 보게 된다. 얼마 전에도 그런 식으로, 《하퍼스 바자》지 12월호를 거의 다 읽어 버렸다. 읽었다고는 해도, 이런 잡지는 실질적으로는 읽을거리가 별로 없다. 라든가, 이라든가, 이라든가, 그러한 기사를 읽어 보았자, 나에게는 전혀 무익하니까 말이다. 내가 그 가운데서 유일하게 시선을 멈추고 읽은 것은, 이라는 특집 기사였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열 명의 명단은 잡지사가 선정한 것이 아니라, 산드라 반하트 라고 하는 여배우(킹 오브 코미디)가 독단적으로..

여자에게 친절 베푸는 일에 관하여

최근 들어 절실하게, 여자한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나는 올해 서른네 살이고, 뭐 보통 사람들이 하듯 여자를 대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여자한테 친절을 베푼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몸에 사무치도록 알 게 되었다. 미리 말해 두지만, 그냥 단순히 여자한테 친절을 베푸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집까지 바래다준다든가, 짐을 들어준다든가,, 마음에 들 만한 선물을 사준 다든가, 입은 옷을 칭찬한다든가, 그런 것은 고등학생이라도 할 수 있다. 내가 어렵다고 하는 뜻은 그런 일을 하면서도, 상대방이 '하루키 씨는 정말 친절하군요.'라고 말하지 않게 하는 테크닉이 어렵다는 것이다. 왜 여자한테 '친절하군요.'라고 말하도록 해서는 안 되는가를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