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크게 나누어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가르치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잘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배우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양쪽 다 잘하는 사람도 있고, 양쪽 다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충 처음에 말한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뉠 것이다.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배우기를 좋아하는' 타입으로,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데는 전연 소질이 없다. 그러니까 강연 의뢰라든가 문화 교실의 '소설 작법 강좌'를 맡아 달라는 의뢰 같은 게 들어와도 언제나 사양하고 있다. 세상에서 뭐가 불행하니 어쩌니 해도 가르치는 게 서툰 사람이 남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야 할 때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나한테 소설 작법을 배운 사람이 훗날 도대체 어떤 소설을 쓸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가르치는 쪽도 불행이지만, 배우는 쪽 역시 대단히 불행한 것이다.
미국의 대학에는 '문학 창작과(크리에이티브 코스)'라는 게 있어서, 작가가 학생들에게 소설 쓰는 법을 가르친다. 나도 실제로 본 건 아니므로 정확하게는 말할 수 없지만, 대략 열 명 내외의 학생들이 1주일에 한 번 모여서 자신이 쓴 단편 소설을 발표하기도 하고, 거기에 대해 토론을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교수인 작가가 학생들의 작품을 체크하고, 고쳐 쓰기 위한 충고를 해준다고 한다.
이 시스템의 장점은 학생들이 전업 작가와 접촉하여 실전적인 충고를 받을 수 있다는 것과, 작가의 수입이 안정된다는 데 있다. 교수로서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으니 작가는 여가 시간을 자신의 창작 활동에 쏟을 수도 있다. 이런 시스템이 교육 수단으로써 어느 정도 효과적인지를 나로서는 판단할 수 없지만, 일본 대학에도 어느 정도 이런 코스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에게는 퍽 무리한 얘기지만, 가르치기를 잘하는 작가와 배우기를 잘하는 학생들이 하나가 되면 그 나름대로 효과는 나타날 것이다. "대학의 강의실 같은 데서 어떻게 소설 쓰는 법을 배울 수 있겠느냐"라는 의견은 너무 편협한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특히 젊은 사람들은-다양한 곳에서 무언가를 배워 가는 법이고, 그 장소가 대학의 강의실이라 해서 부적당한 건 아니다.
하긴 나 자신은 학교란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았을 뿐더러 상당히 반항심이 강한 학생이었다. 중학교 때는 선생님에게 매를 맞았던 기억밖에 없고, 고등학교 3년은 마작을 하거나 여자들과 놀러 다니는 사이에 지나갔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원 분쟁으로, 그것이 일단락 지어질 무렵에는 학생 신분에 결혼을 해서, 그 후로는 생활에 쫓기느라, 지금 생각해 보면 꼼짝 않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공부를 했던 적이 전혀 없다. 특히 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7년 동안이나 다녔지만-이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무엇 하나 배운 게 없다. 와세다 대학에서 얻은 것이라곤 아내뿐인데, 배우자를 발견했다고 해서 그 점이 교육 기관으로서의 와세다 대학의 우위성을 입증하는 건 아니다.
내가 매사에 배우기를 좋아하게 된 것은 대학을 나와 이른바 '사회인'이 되고 나서부터다. 어쩌면 그것은 학창 시절에 정신없이 놀기만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원래 성격상 학교란 제도가 맞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며, 아니면 원래 나라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타입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일하는 틈틈이 짬이 나면 내가 좋아하는 영어 소설을 열심히 번역하거나, 친구에게 불어를 배우거나 하면서 지냈다. 그뿐만 아니라 일하면서도 의식적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거나 이런 저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자 노력했다.
남의 얘기를 듣는 건 꽤 재미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여러 가지 사고방식이 있다. 개중에는 '과연 그렇군.' 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생각도 있고, 전혀 무의미하고 바보 같은 생각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무의미하고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해도 잘 들어 보면 그 나름대로의 가치 기준 위에 확고하게 성립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하튼 먼저 한걸음 물러나 이야기를 들으려는 태도를 보이면, 대개의 사람들은 비교적 정직하게 마음을 열고 얘기해 준다. 당시에는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었지만, 훗날 소설을 쓰는 데 이런 학습 경험은 무척 도움이 되었다. 이런 건 대학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다.
이건 내 생각이지만, 젊을 대 지나치게 공부를 하면 어른이 되어 '공부 기피증'에 걸리게 되거나 반대로 '공부 중독증'에 걸리게 되지 않을까?
'공부 기피증'이란 학창 시절에는 무턱대고 그저 공부만 하다가 사회에 나온 다음부터는 뒹굴며 텔레비전만 보는 증상이고, '공부 중독증'이란 좌우지간 뭔가를 공부하지 않으면 진정이 되지 않는 증상이다.
뭐 그런 건 어차피 남들이 사는 방식이니까 아무래도 좋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린 시절에 실컷 놀았던 사람 쪽이 훨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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