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간 혹사를 당해 온 워크맨이 최근에 그 성능이 나빠졌기 때문에 신형을 구입하기로 결심했다. 한마디로 44년 간이라고 해도, 내 경우에는 매일 아침 조깅을 할 때 서포터로 워크맨을 팔에다 묶고 달렸으니까, 소모 정도가 보통 사람의 경우보다 훨씬 더 심할 것이다. 그래서 정확히 표현한다면, '워크맨'이라기 보다는 '런맨'이 되는 셈이긴 한데, 하여간 4년 동안 불평 없이 땀투성이가 되고, 비를 맞고, 뒤흔들리고, 어떤 때는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면서 탈 없이 잘도 버텨 주었다고 생각한다. 기계를 전문적으로 받아 주는 절이라도 있으면 워크맨 공양이라도 올려 주고 싶을 정도다. '무라카미 주행 음악 동자'라는 법명이라도 붙여서 말이다.
오디오 가게에서 사 온 두 번째 신형 워크맨은 첫 번째 워크맨에 비하면 훨씬 작고, 무게도 절반에 가깝고 게다가 오토리버스 기능까지 되고, 충전도 할 수 있다. 가격도 지난번 워크맨보다 싸다. 하나의 기계가 겨우 4년 만에 이렇게까지 진보할 수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니, '감개무량'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감탄할 만한 일임은 분명한 듯싶다.
적어도 인간이(가령 나의) 진보의 스피드와 비교하면, 기계의 진보의 스피드는 괄목할 만하다. 하지만 그것에 감탄함과 동시에, '워크맨'이 과연 이렇게까지 진보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야 물론 하나의 기계가 값싸고 작고 편리해지는 것 자체에는 전혀 반론의 여지가 없지만, 은퇴한 워크맨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까, '진보 안하고 이대로였어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니까, 이 세상의 진보의 95퍼센트까지는 불필요한 것처럼 생각된다.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긴 하다.
어쨌든 간에 소니 워크맨 WMⅡ여, 평안히 잠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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