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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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법

나의 여행법: 여행하면서 쓰고, 쓰면서 여행한다. 나는 여행지에서는 쓰기를 잊어버리려고 한다. 카메라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내 눈으로 여러 가지를 정확히 보고 머릿속에 정경이나 분위기, 소리 같은 것을 생생하게 새겨 넣는 일에 집중한다. 나 자신이 그 자리에서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오늘날은 여행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여행에 대해서 글을 쓰고, 나아가 여행에 관한 한 권의 책을 쓴다는 것은 참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이다. 정말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에는 해외여행이란 것이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다 마코토가 를 썼던 시대와는 다른 것이다. 가려고 생각만 하면, 즉 그럴 마음이 있고, 거기 드는 비용만 준비되기만 하면 대충 세계 어느 나라에라도 ..

식당칸과 맥주

설령 메뉴에 비프 커틀릿이 들어 있지 않다 해도, 열차의 식당칸은 꽤 멋지다. 뭐랄까, 옛날 식당 같은 고아한 분위기가 좋다. 먹기 시작하기 전과 다 먹은 후에 서로 다른 장소에 있다는 것도 느낌이 신선하다. 그리고 덜커덩 덜커덩하는 그 흔들림도 기분이 좋다. 식당칸에는 왠지 '잠시 동안의 제도'라고나 해야 할 독특한 분위기가 떠다닌다. 즉 식당칸에서는 먹는 식사는 '쑤셔넣기' 위한 식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맛을 음미하기' 위한 식사도 아니다. 우리는 그 중간쯤에 위치하는 불분명하고 잠정적인 식욕을 품고 식당칸을 찾는 것이다. 그리하여 식사를 하면서, 어디론가 확실하게 옮겨져 간다. 그러면서 애달픈 감상에 젖기도 한다. 식당칸의 그 '잠시 동안의 제도' 중에서 유난스레 내 마음을 끄는 것은, 아침부터 ..

중국 음식 알레르기

나는 어렸을 때는 편식이 심해서 고생했지만, 커 가면서 여러 종류의 음식을 별로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을 만큼은 되었으며, 사실 대개의 음식은 먹으려고 생각하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 음식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센다가야의 '호프겐'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우리 집 근처이기 때문에 거의 매일 지나다녔다) 기분이 나빠진다. 요코하마의 중국인 거리는 도저히 걸어 다닐 수가 없고, 중국인 거리는커녕 슈마이 냄새를 맡는 것이 싫어 요코하마 역에서 내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알레르기다. 태어나서부터 라면 같은 것은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다. 그런 얘기를 하면 모두들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이건 진짜로 사실이다. 예전에 우연히 중국 음식점에 초대를 받아 ..

어찌하여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게 되었는가?

최근에는 옛날에 비하면 현저하게 책방엘 들락거리지 않게 된 듯한 기분이다. 어째서 책방에 안 가게 되었는가 하면, 그 이유는 자신이 글쟁이가 된 데 있다. 자기 책이 책방에 진열돼 있다는 게 어쩐지 부끄럽고, 진열돼 있지 않으면 그건 또 그것대로 난감한 일이다-등등의 이유로, 책방으로부터 싹 발길이 멀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집 안에 책이 너무 많이 쌓여 있는 탓도 있다. 아직 채 읽지도 못한 책이 몇 백 권이나 저장돼 있는데, 그 위에다 부질없이 더 올려 쌓는 것도 왠지 바보스러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 쌓여 있는 책더미를 죄다 정리하고 나면 책방에 가서 또 읽고 싶은 책을 끌어 모아야지, 하고 생각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한 권도 줄지는 않고, 오히려 날로 늘어나기만 하는 실정이다. 는 아니..

설날은 즐거워

1 옛날부터 설날이란 날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고, 납득이 안 갔다. 어째서 1월 1일이 설날이고, 어째서 설날이 새해의 시작인지, 그런 것들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필연성이 전혀 없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치로 따지면 동짓날이 지난 그 다음 날부터 신년이 시작된다고 하는 편이 그나마 타당성이 있을 듯하다. 어째서 1월 1일이 한해의 시작이 아니면 안 되는 걸까? 그렇긴 해도 거기엔 물론 무슨 필연성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데 인류가 몇 천 년이나 아무런 불평없이 그런 습관을 꼬박꼬박 지켜왔을 리가 없다. 그 점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조사해 봐야지, 조사해 봐야지' 하면서도, 아직껏 조사하지 못하고 있다. 머잖아 틀림없이 조사해 봐야지. 그런 까닭으로 나는 설날에 대해 좀 회의적이다. 대학생..

이상한 하루

며칠 전 갑자기 딕킨스의 가 읽고 싶어져서 모 대형서점에 가서 찾아보았는데, 이게 도대체 눈에 띄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안내데스크에 있는 젊은 여점원에게 "미안합니다만, 딕킨스의 를 찾고 있는데요." 라고 했더니, "그게 어떤 분야의 책인데요?" 라고 되묻는 것이었다. 엉겁결에 "엣?" 라고 했더니, 상대방도 역시 "엣?" 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 딕킨스의 인데요" "그러니까 그게 도대체 어떤 종류의 책이냐니까요?" "에, 그러니까, 소설인데요." 이런 식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 결국 그것에 관해서는 소설 카운터에다 문의해 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순간 "소위 서점의 안내라면서 딕킨스를 모른다니"라며 아연했지만, 요즘의 젊은 사람들은 딕킨스 같은 건 우선 읽기조차 않으니까,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징크스

검은 고양이기 앞길을 가로막아도 이건 아무 일도 아니다. 나는 검은 고양이를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노벨상에 낙선되는 날에는 뭔가 나쁜 일이 벌어진다. 작년에 공중전화부스에서 전화를 걸고 있었는데 전화는 안 되고 돈만 먹었다. 자동차 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다친 일도 있었다. 핫도그의 비엔나소시지를 통째로 떨어뜨린 일도 있었다. 비 오는 날엔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방금 사온 우산을 찢겨버린 것처럼. 밤에 강도가 침입해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 아직 버리지 않은 쓰레기를 잃어버린 것처럼. 교실에 들어가 미인 여학생들이 앞자리에 앉아도 그건 아무 일도 아니다. 즐겁기도 하지만 신경이 무디어진다. 그러나 역시 목숨 잃는 경우가 최악이다. 며칠 전 그 날이 복권 파는 날인 것처럼.

여고생의 지각에 대하여

나는 대충 시간에는 꼼꼼한 편이라서, 여간한 일이 없는 한 약속한 시간에 늦지 않는다. 그러나 옛날부터 쭉 그래왔던 게 아니고, 학생시절에는 지각 상습범이었고, 사람을 기다리게 해놓고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뻔뻔스런 인간이었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하고 장사를 시작하여 타인에게 '절대로 지각을 하지 않도록.' 이라고 명령하는 입장이 되고 부터는 내 자신의 지각벽도 깨끗이 나아 버렸다. 지각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시킨 당사자가 지각을 해서야 누가 그 인간의 말을 듣겠는가.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학생 시절에는 지각쯤 해도 별 상관이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학교에 가는 시간이 좀 늦어진다고 해서, 별 재미도 없는 수업의 앞대가리 부분을 좀 못 듣는다고 해서, 그런 것을 손실..

미케네의 소혹성 호텔

그리스에 미케네란 이름의 동네가 있다. 슈리만이 아가멤논의 묘를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유명하다 해도 미케네는 정말 조그만 마을로, 규모는 다케시타 거리 정도이다. 관광버스가 오면 사람들로 웅성웅성 붐비지만, 버스가 떠나면 소음 하나 없는 조용한 마을로 되돌아간다. 지리적으로는 아테네에서 당일 코스에 들어가니까 구태여 이곳에 머무는 손님도 없다. 나는 이 미케네 마을을 제법 좋아한다. 미케네에서 가장 좋은 호텔은 '르 푸치 플라넷' 소혹성이란 이름의 호텔이다. 하기야 우리의 감각으로는 호텔이라기 보단 펜션이나 산장에 가깝다. 설비도 그리스에 있는 호텔의 95퍼센트가 그렇듯 대충대충이고, 방도 딱히 깨끗하다고 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호텔은 아담하여 차분하게 기분을 가라앉힐 수 있다. '르 푸치 플..

책 이야기

1. 버릴 책과 간수할 책 우리 집에 책이 너무 많아져서 며칠 전 책장을 새로 사들였다. 직업상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책이란 점점 늘어나기 마련인 그런 것이다. 짜증이 나서 1/3 정도는 팔아 치우자고 아침부터 선별 작업에 착수했는데, 막상 처분을 하려고 하니 '이건 이미 절판된 책이고', '또 언제 읽을지도 모르니까', '팔아 봤자 싸구려인데'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전혀 숫자가 줄지 않는다. 제일 화가 나는 것은 신간 하드커버 원서를 사 두었는데 읽지도 않은 사이에 번역본이 잽싸게 나와 버린 예로, 번역본이 있는데 힘들게 영어로 책 읽을 기분도 나지 않고, 영어책 따위 팔아봐야 돈도 안 되고, 이런 경우엔 정말 울고 싶어 진다. 그리고 보존해 두어서 도움이 될지 안 될지 잘 분간이 안 가는 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