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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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랄

호랑이 문신을 한 불량배와 유지매미 귀걸이를 한 은행 여직원이 파출소 앞에서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스트립 걸 분장을 한 경찰은 허리에 찬 경찰봉을 빼내들었지만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는지 궁금해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얘기는 아버지나 어머니, 이 둘 중에 누가 더 소중한가 하는 주제였다. "어머니와 아버지 이들 둘 다 소중한 사람들이라 생각해요." 스트립 걸 모습을 한 경찰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런 말을 하는 남자는 틀림없이 아내를 학대하는 사람들이에요." 은행원이 거칠게 말했다. "바람피우기는 쉬울 거야." 불량배도 말했다. "한번 정도라면 상관없잖은가." 경찰은 어린애들처럼 입을 빼물고 말했다. "절대 안 돼요." 은행원이 화난 듯 말했다. "한 번 정도는 괜찮아 - ." 불량배도 열 ..

아르바이트에 관하여

내가 학생이었던 시절, 벌써 십 년 이상이나 오래 전 일이지만, 아르바이트의 시간당 급료는 보통 찻집의 커피 한 잔 값과 얼추 비슷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960년대가 끝날 무렵에 백오십 엔 정도였다. 하이라이트가 팔십 엔, 소년 매거진이 한 백 엔쯤이었다고 기억한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는 레코드만 열심히 사들였으므로, 하루하고 반나절 일하면 LP를 한 장 살 수 있지, 하는 일념으로 일했다. 지금은 커피가 삼백 엔인데 비해 아르바이트의 시간당 급료가 오백 엔대이니까, 시세가 좀 변한 것 같다. LP만 해도 하루 일하면 두 장 정도 살 수 있다. 숫자로만 살펴보면, 요 십 년 사이에 우리의 생활이 좀 편해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생활 감각으로 따져 보면 그렇게 편해진 것만은 아니라는..

건강에 대하여

'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이 나의 좌우명이다. 조만간 안자이 미즈마루 화백에게 그렇게 써 달라고 하여 족자를 만들어 도코노마에 걸어 두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이다. 글자 밑에 쇠로 된 아령 그림 같은 게 들어 있다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한다. 어째서 '첫째가 건강'이고 '둘째가 재능'인가하면, 단순하게 생각해서 건강이 재능을 환기시키는 일은 있어도, 재능이 건강을 환기시킬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건강하기만 하면 재능이 졸졸 따라온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노력이나 집중력을 최고의 상태로 유지시키려고 하면 아무래도 체력이 필요하고, 노력이나 집중력을 유지함으로써 재능을 증식시켜 나가는 일은 불가능한 게 아니다. 그래서 '첫째가 건강'이고, '둘째는 재능'인 것이다. 하기야 이런 ..

보스턴 마라톤에는 뭔가 특별한 멋이 있다

마라톤에 참가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상당히 불가사의한 체험이다. 이를 경험하는 것과 경험하지 않는 것과는 인생 그 자체의 색깔도 조금은 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종교적인 체험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거기에는 뭔가 인간 존재에 깊숙이 와 닿는 것이 있다. 42킬로미터를 실제로 달리고 있을 때는, '도대체 내가 왜 일부러 이런 지독한 꼴을 자처하는 거지? 이래 봤자 좋은 일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몸에 해로울 뿐이지(발톱이 벗겨지고, 물집도 생긴다. 그 다음날에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힘이 든다)' 하고 상당히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캐묻는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결승점에 뛰어 들어가 한숨 돌린 다음 건네어진 차가운 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뜨거운 욕조에..

나의 여행법

나의 여행법: 여행하면서 쓰고, 쓰면서 여행한다. 나는 여행지에서는 쓰기를 잊어버리려고 한다. 카메라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내 눈으로 여러 가지를 정확히 보고 머릿속에 정경이나 분위기, 소리 같은 것을 생생하게 새겨 넣는 일에 집중한다. 나 자신이 그 자리에서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오늘날은 여행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여행에 대해서 글을 쓰고, 나아가 여행에 관한 한 권의 책을 쓴다는 것은 참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이다. 정말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에는 해외여행이란 것이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다 마코토가 를 썼던 시대와는 다른 것이다. 가려고 생각만 하면, 즉 그럴 마음이 있고, 거기 드는 비용만 준비되기만 하면 대충 세계 어느 나라에라도 ..

식당칸과 맥주

설령 메뉴에 비프 커틀릿이 들어 있지 않다 해도, 열차의 식당칸은 꽤 멋지다. 뭐랄까, 옛날 식당 같은 고아한 분위기가 좋다. 먹기 시작하기 전과 다 먹은 후에 서로 다른 장소에 있다는 것도 느낌이 신선하다. 그리고 덜커덩 덜커덩하는 그 흔들림도 기분이 좋다. 식당칸에는 왠지 '잠시 동안의 제도'라고나 해야 할 독특한 분위기가 떠다닌다. 즉 식당칸에서는 먹는 식사는 '쑤셔넣기' 위한 식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맛을 음미하기' 위한 식사도 아니다. 우리는 그 중간쯤에 위치하는 불분명하고 잠정적인 식욕을 품고 식당칸을 찾는 것이다. 그리하여 식사를 하면서, 어디론가 확실하게 옮겨져 간다. 그러면서 애달픈 감상에 젖기도 한다. 식당칸의 그 '잠시 동안의 제도' 중에서 유난스레 내 마음을 끄는 것은, 아침부터 ..

중국 음식 알레르기

나는 어렸을 때는 편식이 심해서 고생했지만, 커 가면서 여러 종류의 음식을 별로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을 만큼은 되었으며, 사실 대개의 음식은 먹으려고 생각하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 음식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센다가야의 '호프겐'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우리 집 근처이기 때문에 거의 매일 지나다녔다) 기분이 나빠진다. 요코하마의 중국인 거리는 도저히 걸어 다닐 수가 없고, 중국인 거리는커녕 슈마이 냄새를 맡는 것이 싫어 요코하마 역에서 내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알레르기다. 태어나서부터 라면 같은 것은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다. 그런 얘기를 하면 모두들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이건 진짜로 사실이다. 예전에 우연히 중국 음식점에 초대를 받아 ..

어찌하여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게 되었는가?

최근에는 옛날에 비하면 현저하게 책방엘 들락거리지 않게 된 듯한 기분이다. 어째서 책방에 안 가게 되었는가 하면, 그 이유는 자신이 글쟁이가 된 데 있다. 자기 책이 책방에 진열돼 있다는 게 어쩐지 부끄럽고, 진열돼 있지 않으면 그건 또 그것대로 난감한 일이다-등등의 이유로, 책방으로부터 싹 발길이 멀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집 안에 책이 너무 많이 쌓여 있는 탓도 있다. 아직 채 읽지도 못한 책이 몇 백 권이나 저장돼 있는데, 그 위에다 부질없이 더 올려 쌓는 것도 왠지 바보스러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 쌓여 있는 책더미를 죄다 정리하고 나면 책방에 가서 또 읽고 싶은 책을 끌어 모아야지, 하고 생각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한 권도 줄지는 않고, 오히려 날로 늘어나기만 하는 실정이다. 는 아니..

설날은 즐거워

1 옛날부터 설날이란 날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고, 납득이 안 갔다. 어째서 1월 1일이 설날이고, 어째서 설날이 새해의 시작인지, 그런 것들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필연성이 전혀 없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치로 따지면 동짓날이 지난 그 다음 날부터 신년이 시작된다고 하는 편이 그나마 타당성이 있을 듯하다. 어째서 1월 1일이 한해의 시작이 아니면 안 되는 걸까? 그렇긴 해도 거기엔 물론 무슨 필연성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데 인류가 몇 천 년이나 아무런 불평없이 그런 습관을 꼬박꼬박 지켜왔을 리가 없다. 그 점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조사해 봐야지, 조사해 봐야지' 하면서도, 아직껏 조사하지 못하고 있다. 머잖아 틀림없이 조사해 봐야지. 그런 까닭으로 나는 설날에 대해 좀 회의적이다. 대학생..

이상한 하루

며칠 전 갑자기 딕킨스의 가 읽고 싶어져서 모 대형서점에 가서 찾아보았는데, 이게 도대체 눈에 띄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안내데스크에 있는 젊은 여점원에게 "미안합니다만, 딕킨스의 를 찾고 있는데요." 라고 했더니, "그게 어떤 분야의 책인데요?" 라고 되묻는 것이었다. 엉겁결에 "엣?" 라고 했더니, 상대방도 역시 "엣?" 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 딕킨스의 인데요" "그러니까 그게 도대체 어떤 종류의 책이냐니까요?" "에, 그러니까, 소설인데요." 이런 식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 결국 그것에 관해서는 소설 카운터에다 문의해 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순간 "소위 서점의 안내라면서 딕킨스를 모른다니"라며 아연했지만, 요즘의 젊은 사람들은 딕킨스 같은 건 우선 읽기조차 않으니까,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