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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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그래피티

1 인간이란 크게 나누어 대충 두 가지 타입으로 갈라진다. 즉 이사를 좋아하는 타입과 싫어하는 타입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전자가 행동적이고 진취적인 성품에 좀 덜렁거리는 타입이고, 후자가 그 반대라는 뜻은 아니고, 그저 이사를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 하는 아주 단순한 차원의 얘기다. 얘기가 좀 빗나갔지만, 단순한 차원의 얘기를 새삼스레 심각하게 궁리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령 장미를 좋아하는 사람은 정열적이라든가,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성격이 밝다든가, 그런 사고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냥 장미를 좋아하고, 개를 좋아하는 것일 뿐이다. 참 나 그렇잖아요. 히틀러는 개를 좋아했지만,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히틀러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는 할 수 없죠. 나는 이사를 무척 좋아한다. 짐을 ..

고쿠분지 이야기

언제까지고 하염없이 빌붙어 살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마누라의 친정집에서 나와 고쿠분지(國分寺)로 이사를 했다. 왜 하필이면 고쿠분지냐 하면, 거기에서 재즈 찻집을 시작해 보리라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취직을 해도 괜찮겠다 싶어 좀 연줄이 닿는 TV 방송국 같은 델 몇 군데 다녀봤지만, 일의 내용이 기가 찰 정도로 한심스러워 그만두기로 했다. 그런 일을 할 바에는 자그마한 가게라도 좋으니 나 혼자서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싶었다. 자신의 손으로 재료를 골라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고, 내 손으로 그것을 손님한테 제공할 수 있는 일 말이다. 그러나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재즈 찻집 정도에 불과했다. 좌우지간 재즈가 좋았고, 조금이라도 재즈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사업 자금은 나와 마누라 둘이..

보수에 관하여

나는 이십 대 초반부터 8년 정도 재즈 찻집을 경영했는데, 그 사이 제법 많은 아르바이트생을 썼다. 대개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시작할 무렵에는 나랑 거의 나이 차가 없다가, 찻집을 그만둘 무렵에는 열두어 살 차가 생기게 되었다. 내가 하던 찻집은 아르바이트생의 정착률이 꽤 높은 편이었던 터라, 한 사람 한 사람을 비교적 잘 기억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내 경험으로 봐서 절대로 고용해서는 안 되는 타입이 몇 가지 있다. '급료는 안주셔도 좋으니까 일하게 해 주십시오'하는 타입도 그 중 하나다.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은가 하고 생각하시겠죠? 하지만 실제로 있다고요, 그런 사람이. 예를 들어 '앞으로 가게를 하고 싶어서 그러니까 그냥 일 좀 하게 해 달라'든가, '꼭 여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성 발렌타인 데이의 무말랭이

좀 오래전 얘기인데, 2월 14일 저녁나절에 무말랭이를 조렸다. 세이유(西友) 앞을 걷다가 농가의 아주머니가 길바닥에서 비닐 주머니에 담긴 무말랭이를 팔고 있기에, 갑자기 먹고 싶어 져 사고 말았다. 한 주머니에 오십 엔이었다. 그리고 동네에 있는 두부 가게에서 살짝 튀긴 두툼한 두부와 맨두부도 샀다. 이 두부 가게집 딸은 털이 좀 많긴 하지만, 비교적 친절하고 귀염성이 있다. 집으로 돌아와 무말랭이를 한 시간 정도 물에 불렸다가, 참기름으로 볶고, 거기에다 여덟 조각으로 썬 튀긴 두부를 넣고, 다시와 간장과 미림으로 양념을 한 후, 중간 불에다 부글부글 조린다. 그 사이에 카세트테이프를 틀어 놓고 B·B 킹의 노래를 들으며, 홍당무와 무채 초무침과 무우청과 유부를 넣은 된장국을 만든다. 그러고 나서 맨..

팬톤 트렌드 컬러(Pantone Trend Color) 2022년

미국의 색채 전문기업 팬톤(Pantone)에서 2022년 트렌드 컬러로 베리 페리(Very Peri)를 선정하였다. 베리 페리는 바이올렛 레드(Violet Red)를 베이스로 한 페리윙클 블루(Periwinkle Blue)라고 한다. 제비꽃에 가까운 밝은 청자색으로 충실함과 불변을 상징하는 블루와 흥분과 에너지를 상징하는 레드가 혼합된 컬러라고 한다. 베리 페리(Very Peri) 17-3938 팬톤 컬러 연구소의 총괄 디렉터이자 색채연구소장 리트리스 아이즈먼(Leatrice Eiseman)은 올해의 팬톤 컬러는 우리의 글로벌 문화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반영하며, 사람들이 그 컬러를 찾고 있는 것에 대해 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팬톤은 올해의 컬러 선정 사상 최초로 기존 컬러시스템에..

착한디자인 2021.12.22

문장을 쓰는 법

장래 글을 써서 연명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젊은이들로부터 종종 '문장 공부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나 같은 사람한테 물어본들 별 뾰족한 수가 없을 텐데 하고 생각하는데, 뭐 좌우지간 그런 일이 있다. 문장을 쓰는 비결은 문장을 쓰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테지만, 요컨대 '지나치게 쓰지 말라'는 뜻이다. 문장이란 것은 '자, 이제 쓰자'고 해서 마음대로 써지는 게 아니다. 우선 '무엇을 쓸 것인가'하는 내용이 필요하고, '어떤 식으로 쓸 것인가'하는 스타일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젊은 시절부터 자신에게 어울리는 내용이나 스타일이 발견되는가 하면, 그것은 천재가 아닌 한 힘든 일이다. 그래서 어디엔가 이미 있는 내용이나 스타일을 빌려와, 적당히 헤쳐 나..

지쿠라에 관하여

나는 고베에서 자랐기 때문에 쇠고기와 바다를 무척 좋아한다.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기라도 하면 아주 행복하다. 동경에는 바다가 없고(있기는 하지만 있는 축에 끼지도 못한다), 쇠고기도 비싸다. 유감천만이다. 이따금 바다가 그리워지면 쇼난(湘南)이나 요코하마(橫濱)로 가는데, 뭔가 좀 마음에 딱 차지 않는다. '일부러 바다를 보러 왔습니다.'하는 느낌이 앞서기 때문이다. 바다 쪽에도 '여, 이것 참 잘 오셨습니다.'하는 느낌이 든다. 바다란 역시 가까이에 살면서 밤낮으로 그 냄새를 맡으며 지내지 않으면, 그 정수를 알 수 없는 게 아닐까? 쇼난이나 요코하마의 바다는 지나치게 소피스티케이트화 되어 그런 '생활 감각으로서의 바다'가 타향에서 온 방문객한테는 전해지지 않는 부족함이 있다. 최근..

이혼에 대하여

요즈음은 어떻게 된 일인지 이혼한 사람들을 연달아 만난다. 이런 일에는 처신하기가 상당히 곤란하다. 즉 상대방이 오래간만에 만나는 사람이라면 얘기 거리가 별로 없으니까 '하는 일은 좀 어때?'라든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지?'라는 등 하는 얘기부터 시작해서, 대개는 '부인은 안녕하신가?' 하는 데까지 얘기가 진전돼 버린다. 그것은 뭐 딱히 마누라의 동향을 알고 싶어서 묻는 게 아니라-다른 사람의 마누라인데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람-그저 세상사는 이야기랄까, 계절에 따른 인사 정도의 것이다. 그러니까 묻는 쪽도 '아아, 뭐, 여전하지' 하는 대답을 기대한다. 그럴 때에 '실은 말이야, 이혼을 해서' 같은 소리를 하면, 말하는 쪽도 난처하지만, 듣는 쪽도 황망한 것이다. 나는 이혼을 증오한다거나 하는 감..

메밀국수집의 맥주

1981년 여름 도심에서 교외로 이사를 하고서 가장 난처했던 일은, 대낮부터 길거리에서 어슬렁거리는 인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대부분은 샐러리맨으로, 그런 사람들은 아침 일찍이 집을 나가 저녁나절이나 돼야 돌아온다.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한낮의 거리에는 주부밖에 없다. 나는 원칙상 아침과 밤에만 일을 하기 때문에, 결국 오후에는 집 근방을 기웃기웃하며 어슬렁거리게 된다. 그럴 때면 왠지 형용할 수 없이 묘한 기분이다.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아주 수상쩍다는 눈초리로 힐끔거려대니까, 스스로도 무슨 나쁜 짓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빠지고 만다. 동네 사람들 대개가 아무래도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 산책을 하고 있으려니 어느 집 아줌마가 '청년, 하숙집 구하려고 그래..

나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를 비교적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내가 교훈적인 성격의 인간이라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교훈이라는 것의 성립 방법을 비교적 좋아한다는 것뿐이다. 나의 처형은 학생 시절에 호리 다쓰오의 [바람이 불지 않는다]를 읽고, '건강이라는 건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는 독서 감상문을 써서 선생님을 크게 웃게 만들었다고 하는데-그 말을 듣고, 나 역시 그만 웃고 말았지만-그건 웃는 쪽이 잘못이다. 만일 그녀가 [바람이 불지 않는다]를 읽고 건강의 중요성을 통감했다고 한다면, 그건 틀림없이 문학의 힘이라고 볼 만하다. 웃으면 안 된다. 그러한 입장에서 다시 한 번 [바람이 불지 않는다]를 읽어보면, 반드시 "음, 그렇구나!"하고 감탄할만한 대목이 몇 군데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