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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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붙이기를 좋아하는 나

나는 물건에 이름 붙이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새로 개점하는 가게라든가, 새로 발간하는 잡지라든가, 그러한 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친구들 사이에서, "야, 어때? 괜찮지?"라든가, "그런 이름을 어떻게 붙이냐? 촌스럽게!" 하면서 떠들어대는 게 좋다는 거지, 아주 진지하게 "무라카미 씨, 우리 가게의 이름을 좀 붙여 주십시오." 하는 부탁을 받게 된다면 그건 사양하고 싶다. 나는 옛날에 소설가가 되기 전에 술집 비슷한 것을 경영했었는데, 그때는 단순하게 예전에 기르던 고양이의 이름을 붙였었다. 이런 것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주위를 빙 둘러보고 난 뒤에 우연히 눈에 띄는 것을 얼른 붙여 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이름을 붙이면 손님 쪽..

백화점의 사계절

여자들은 대개 백화점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나도 백화점을 끔찍이 좋아한다. 그처럼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는 동물원을 빼놓고는 달리 찾아볼 수가 없고, 더군다나 입장료도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거리에는 놀랍게도 백화점이 다섯 군데나 있다. 물론 교외 도시라서 도심의 백화점처럼 규모가 크거나 물건을 많이 갖추어 좋지는 않았지만, 집에서 10분쯤 걸어간 곳에 백화점이 다섯 군데나 있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만 있으면(대개 매일 시간이 있지만) 역 앞까지 걸어가 백화점 안을 돌아다닌다. 백화점을 돌아다니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대는 뭐니뭐니해도 평일 오전 중이다. 붐비지 않고, 공기도 깨끗하고, 모든 것이 손을 대지 않은 느낌으로 빽빽이..

생두부 네 모를 단숨에 먹어치운 맛

이 수필은 계속 안자이 미즈마루씨가 삽화를 그려주고 있는데, 나로서는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안자이씨에게 엄청나게 어려운 테마로 그림을 그리게 해 보려고 내 나름대로 상당히 오랫동안 시도를 해왔다. 그러나 완성된 삽화를 보면 전혀 고생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고생한 흔적을 보이지 않는 것이 프로라 하더라도 조금은 '난처하거나 어려운' 곤경에 빠뜨려 즐겨보려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식당차에서 비프커틀릿을 먹는 롬멜 장군' 이라는 테마로 문장을 써 보았지만, 비프커틀릿을 먹고 있는 롬멜 장군의 삽화가 제대로 붙어왔다. 그래서 생각한 건데, 결국은 어려운 테마를 내놓으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영원히 안자이씨를 골탕먹일 수가 없었던 거다. 예를 들면 '낙지와 거대한 지네의 결투'라든가, '수염..

슬픈 여름의 끝

마침내 여름도 끝나가고 있다. 나는 여름을 끔찍이 좋아하는 소년 아저씨(라는 표현을 요즘 들어 비교적 자조적인 의미로 사용한다)이기 때문에, 여름이 끝날 때가 되면 꽤 슬퍼진다. 여름이란 다시 내년에도 찾아오지 않느냐고 나 자신에게 타일러 봐도, 바닷가에 있던 별장이 폐쇄되거나, 잠자리가 하늘을 높이 날아다니거나, 해안에 잠수용 고무옷차림의 서퍼들이 늘어나거나 하는 것을 눈으로 보면, 좋은 일은 이미 모두 끝나버렸다는 느낌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런 감정은 발상으로서는 어린애와 거의 다를 바가 없다. 얼마 전에 모 광고회사에 다니는 근처의 친지 집에 놀러 갔더니, 부인이 나와서 "미안합니다. 여름휴가가 끝나서 오늘부터 출근했어요."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까 '그렇구나, 여름이 끝나서 ..

핏 투 핏(Fit to Fit) 적응형 운동화 콜렉션

스포츠웨어 브랜드 리복(Reebok)이 신고 벗기 쉬운 적응형 운동화 콜렉션(Adaptive Footwear Collection)을 핏 투 핏(Fit to Fit)이라는 이름으로 공개하였다. 장애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하기 쉬운 제품을 제공하는 데 한발 다가서려는 노력의 시작이었다. 콜렉션은 두 가지의 다른 실루엣, 세 가지 색상의 운동화로 총 여섯 켤레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녀 공용 사이즈이다. 현재는 시중에서 한 켤레 단위로만 구매가 가능하지만, 한쪽 다리만 있는 사람을 위해 신발 한 짝만 판매하는 옵션도 조만간 도입될 예정이다. 클럽 맨트 파라핏(Club MEMT Parafit, 65달러) 운동화는 클래식한 디자인에 편안함을 강조한 데일리슈즈다. 가죽과 메쉬 어퍼로 통풍이 잘되고 지지력이 향상..

착한디자인 2022.09.13

울리법스(Woolybubs)의 녹는 아기신발

미국의 유아용 신발 업체 울리법스는 뜨거운 물에 녹아 없어지는 아기 신발을 개발하였다. 울리법스의 공동 설립자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인 제스 밀리켄(Jesse Milliken)은 끓는 물이 담긴 냄비에 40분 이상 담가 놓으면 설탕이 물에 녹듯 제품이 액체 입자 상태로 분해된다고 한다. 제스 밀리켄은 태어나서 부터 12개월까지 신을 수 있는 이 신발은 아기가 자라서 신발이 작아질 때를 대비해 이 같은 방법을 고안함으로써 쓰레기를 없애고자 하였다. 일반적인 신발이 매립지에서 분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50년에서 최대 1,000년까지라고 한다. 신발의 소재는 수용성 합성수지의 일종인 폴리비닐 알코올(Polyvinyl Alcohol, PVOH)과 수성 잉크이다. 현재 세탁용 캡슐 세제에 이와 동일한 재료가..

착한디자인 2022.09.06

집사람이 UFO를 유포라고 읽을 때

얼마 전에 집사람과 비행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보아크'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모르는 단어였다. 그게 도대체 뭘까? 하고 궁금해서 물어보니까, 놀랍게도 영국의 국영항공사 'BOAC'를 말하는 것이었다. 당초의 'BOAC'라는 회사는 이미 없어졌고, 지금은 '브리티시 에어웨이'로 바뀐 지 오래다. 그러자 어쨌든 간에 'BOAC(비 오 에이 씨)'를 '보아크'라고 읽는 게 엉터리냐 하면, 그건 얼른 설명할 수가 없다. 아무튼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다. 'BOAC'는 어디까지나 '비 오 에이 씨'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니까 집사람은 "당신처럼 자질구레한 일을 가지고 잔소리만 해대면, 나이를 먹어서 모두한테 따돌림을 당한다구요"하고 말했다. 분명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UFO'를..

오해가 불러일으킨 소동

며칠 전 영자신문을 읽다가 광고란에 개가 목을 매달고 있는 사진이 실린 걸 보았다. 대체 어찌된 일인가 싶어서 읽어보니, 이것은 애견가 협회의 메시지로 "한국에서는 개를 잡아먹는 관습이 있는데 이것은 야만스러운 일이므로 저지하자"라는 내용이었다. 그 후 한 달쯤 뒤에 호놀룰루에서 신문을 읽다 보니 "중국인은 들개사냥을 하는 데다 그 일부를 먹기까지 하는데, 이건 너무나도 야만스러운 행위다. 이제부터 중국제품을 보이콧하자"는 내용의 투서가 실려 있었다. 북경에서 대규모의 개사냥이 행해져 6주일 동안 약 20만 마리의 개가 처분된 사건이 있었는데(굉장하죠!), 그것은 거기에 대한 한 호놀룰루 시민의 반응이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조선과 영국간의 개 소동은 100년쯤 전에도 한 번 있었다. 그때 빅토리아 여..

도심에서는 맛볼 수 없는 여유로움

1981년 여름에 도심에서 교외로 이사를 와서 가장 난처했던 것은 대낮부터 어슬렁거리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는 거였다. 인구의 태반이 샐러리맨이라서 그런 사람들은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때 집에 돌아온다.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대낮의 거리에는 주부들밖에 없다. 나는 원칙적으로 아침과 저녁때밖에 글을 쓰지 않으니까, 오후에는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게 된다. 왠지 아주 묘한 기분이 든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몹시 의심에 찬 눈으로 나를 힐끔거려대니까, 나 스스로도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나를 아무래도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산책을 하고 있는데 어느 아주머니가 "이봐요, 하숙집 구해요?" 하고 말을 걸어왔고, 택시 운전사는 "공부하기 힘들지요?" 하..

언폴드 디자인(Unfold Design) 생물막 접기 기법

네덜란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재 연구 기업 스튜디오 리오네 반 듀어센(Studio Lionne van Deursen)은 세균성 섬유소(Bacterial Cellulose)로 이루어진 생물막(Biofilm)을 활용해 복잡한 형태의 입체적 디자인을 실험하고, 그 결과물을 밀라노 디자인 위크(Milan Design Week)에 소개하였다. 세균성 섬유소는 미생물과 효모의 공생관계에서 생성된 발효 물질로서 마르면 고체 상태가 된다. 스튜디오 리오네 반 듀어센은 생물막을 이용하여 단순한 형태의 조명 콜렉션 임퍼펙트 퍼펙션(Imperfect Perfection)을 소개한 적이 있다. 이번에 발표한 언폴드 디자인의 경우에는 생물막에 단순한 접기 기법을 도입했는데, 이 시트를 구부리면 줄거나 펴지는 역동적인 구조를 보..

착한디자인 2022.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