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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다카야마 노리코 양과 나의 성욕

chocohuh 2022. 10. 2. 10:37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나는 제법 많은 여성들과 나란히 걸어보았지만, 다카야마 노리코(25) 상만큼 빨리 걷는 여성은 보지 못했다. 그녀는 마치 '방금 기름을 쳤지'라고 말하듯 양팔을 기분 좋게 앞뒤로 흔들며, 큼직한 보폭으로 아주 즐거운 듯이 거리를 걷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면, 걷고 있는 그녀 모습은 마치 투명한 날개라도 달린 물맴이 같다. 민첩하고, 매끄럽고, 비가 그친 직후의 햇살처럼 행복해 보인다.

 

처음 그녀와 단둘이 나란히 걸었을 때 우리는 센다가야 초등학교 앞에서부터 아오야마 1가까지 동행했다. 나는 그녀의 빠른 걸음걸이에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은 나와 같이 있는 것이 싫어서 조금이라도 빨리 걷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빨리 걸음으로써 내 성욕을 얼마간이라도 감퇴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긴 나는 다카야마 노리코 상에게 성욕을 느낀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유효했는지 어떤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녀의 빠른 걸음걸이에 다른 뜻은 없었다. 그녀가 날듯이 걷는 것은 단지 그렇게 걷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초겨울의 요쓰야 역 앞에서 나는 혼잡한 사람들 속을 혼자 걷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그때도 그녀는 역시 뭔가 비정상적이라고 할 만큼 굉장한 속도로, 편의상 도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이 지표 위를 어딘가에서 또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숄더백의 끈을 꽉 잡고 트렌치코트 자락을 바람에 펄럭이면서 등을 곧게 편 채 걷고 있었다.

 

내가 대여섯 발자국 그쪽으로 다가가서 말을 걸려고 했을 때는 이미 그녀는 훨씬 더 저쪽 편에 있었고 나는 <여정>의 라스트 신의 로사노 브라치 같은 멋쩍은 모습으로 혼자 요쓰야 역 앞에 남겨졌다. 그렇지만 다카야마 노리코 상이 내 성욕에 대해서 오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나는 무척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