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410

한낮의 암흑 회전 초밥

별로 그럴 기회가 없어서 실제로 회전 초밥 집에 들어가는 일은 1년에 몇 번 정도밖에 안되지만, 개인적으로 회전 초밥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다. 우선은 아무와도 말을 하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어 나로서는 바람직하다. 나는 원래부터 말수가 많은 인간이 아니며, 식사를 할 때는 특히 그 경향이 강화된다. 그리고 메뉴나 음식이 나오기를 일일이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좋다. 잠자코 카운터 자리에 앉기만 하면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초밥 접시를 기분 내키는 대로, 그리고 먹고 싶은 대로 들어내어 먹기만 하면 된다. 복잡한 룰도 없고 벌칙도 없다. 오래전, 오차노미즈에 있는 '산 위의 호텔'에서 일을 하다가 너무 바빠서 점심을 먹지 못했다. 어째 배가 좀 고픈 걸 하고 생각했을 ..

동시 상영이 좋아요

나는 새 영화를 보고 싶을 때는 전철을 타고 극장에 가서 내 돈으로 티켓을 사서 본다. 시사회에 가는 일은 전혀 없다. 이전 어떤 잡지에서 영화평 같은 것을 쓴 일이 있는데, 그때는 가끔씩 시사회에도 발길을 하였다. 그러나 10여 년 전, 모 영화 배급회사에 얽힌 별로 기분 좋지 않은 사건이 있었고, 그때 다시는 시사회에 가지 않겠노라고 결심하였다. 나는 성격적으로 참을성이 많은 편이라서 화를 잘 내지 않지만, 일단 화가 난 일은 좀처럼 잊지 않는다. 그리고 한 번 마음먹은 일은 신경쇠약에 걸린 등대지기처럼 철저하게 지킨다. 그런 사연으로 나는 지금까지 시사회와는 인연이 없다. 돌이켜 생각하면 또 기분이 나빠질 것 같아 자세한 얘기는 쓰지 않지만. 시사회에 걸음을 하였던 시절, 시사회장에서 다나카 코미마..

하이네켄 맥주의 우월성에 대하여

일본에서 주유소에 들어가면 무슨 까닭인지 유별나게 기세 등등한 종업원이 설쳐 댄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퉁명스러운 것보다야 나을지 모르겠으나, 고함을 치듯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면서 90도로 허리를 굽힐 때면 솔직히 눈살이 찌푸려진다. 고교 야구를 하는 것도 아니니 기름 정도 좀 조용히 넣을 수 없을까 싶다. 처음으로 일본에서 기름을 넣는 외국인들은 종업원이 갑자기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질겁하지 않을까. 어째 '전장의 크리스마스' 같은 풍경 아닙니까. 요 얼마 전에도 운전을 하다 보니, '일본에서 최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하는 주유소'라는 광고 플래카드가 보였다. 물론 내가 그런 데 들어갈 리는 없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다들. 일본에서 최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고 해서, 그래서 어쨌다..

공중부유는 아주 신난다

평소 꿈이란 걸 별로 꾸지 않는다. 학자들의 설에 의하면 세상에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하니, 실제로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꿈을 꾸는 것이리라.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내 머릿속에는 꿈의 기억이 거의 머물러 있지 않다. 자랑거리는 못 되지만 나는 아주 잠을 잘 자서, REM 수면의 늪 속에서 뱀장어처럼 아침까지 쿨쿨 자고 나면, 설령 꿈을 꾸었다 해도 그 기억은 마치 사막에 물뿌리개로 물을 뿌리듯 허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양이다. 꿈으로서도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힘들여 가며 컬러풀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경시켜 주었는데, '아침이 되면 전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라니 체면이 말이 아닐 거란 기분이 든다. 나도 소설가 나부랭이쯤 되니 그 기분은 잘 안다.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기억나지 ..

이탈리아제 자동차는 즐겁다

비교적 나이를 먹어 운전면허를 땄는데, 그때 나는 로마에 살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초보 운전자로 운전의 매너나 테크닉을 거의 로마 거리에서 익힌 셈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장님은 뱀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속담처럼 끔찍하고 위험한 일이었는데, 정작 그때는 ‘뭐 이런 건가 보다’ 하고 흐르는 대로 거침없이 운전하였다. 아차 싶을 때도 몇 번 있었지만 다행히 사고는 일으키지 않았다. 일본의 운전자 중에는 ‘로마에서만은 운전대를 잡고 싶지 않다’는 분이 많은데, 나는 로마 사람들이 그렇듯 무지막지하게 운전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언뜻 보면 그들의 운전행태가 엉망진창 카오스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 나름대로의 룰이 있고, 모두들 그 룰을 기본적으로 존중하고 있다. 그러니 그 룰을 따르기만 하..

호텔명 추구편

지난여름 중간 호에서 기묘한 러브호텔(및 맨션)의 이름에 관한 특집을 꾸몄는데, 그 후에도 추가 정보가 상당량 들어왔기에 다시 한번 집요하게 추구해 보겠다. 그런데 그 인터넷의 정보수집 교환능력은 정말 굉장하더군요. 눈 깜짝할 사이에 산더미처럼 모여든다니까요. 이런 기능을 좀 더 의미 있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하고 생각하면, 우린 말이죠.…… 뭐랄까……. 오사카의 국도 1호선 도로가에 '멘델의 법칙'이라는 러브호텔이 있다. 그 완두콩 꽃의 색이 유전을 하느니 안하느니 하는 멘델 말이다. 어이 이봐, 이런 때 그런 얘길 꺼내면 어떻게 해 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또 같은 사람이 보내 준 정보에 의하면, 오사카 환상선 쿄바시 역에서 보면 '왕'이란 간판을 내건 호텔이 있다. 이 이름 또한 오사..

일본의 러브 호텔명 대상이 정해졌습니다

쨘 하루키: 이번 글은 분위기를 바꾸어서 라이브로 나갑니다. 얼마 전 이가라시가 편집장한테 엎드려 절까지 하면서 사정사정하여(잔소리는 실컷 들었지만) 특별히 4페이지를 덜 할애받은 덕분에 공간적 시간적 여유는 충분합니다. 이가라시: 정말 황당했어요. 원고 매수를 늘리면, 그래봐야 쓸데없는 소리밖에 더하겠느냐고 그러질 않나……. 하루키: 좋아 좋아, 수고했네. 실은 이번 라이브는 '크레센트'의 특별실에서 프랑스 요리를 먹으면서 우아하게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경비관계도 있고 해서 아오야마에 있는 미즈마루 씨의 사무실에서 보내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눈치 빠른 이가라시가 맥주하고 안주거리를 사 왔으니, 정말 대단하군요. 이가라시: 이 치즈는 키노쿠니야에서 샀는데 굉장히 비싸더라고요. 경비에서 빼낼 수 ..

무라카미한테도 힘든 일이 있다

얼마 전 펜네임에 관한 이런저런 불편함에 대해서 썼는데, 이번에는 '말을 거는 일'에 대한 고통을 쓰겠다. 나는 정처 없이 어슬렁어슬렁 거리를 산책하고, 전철을 타고 이동하고,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장어덮밥(보통)을 먹고……하는 아주 평범하고 마음 편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사생활에 있어서는 무명으로 지내고 싶고, 그런 기본 방침 하에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도 출연하지 않고, 웬만한 일이 아니면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다. 드물게 잡지에 얼굴 사진이 실리는 정도다. 노출도가 아주 낮은 편이다. 그런데도 거리를 걷다 보면 "실례지만 무라카미씨 아닌가요?"라고 누군가가 말을 거는 일이 가끔 있다. 대충 한 달에 한 번꼴이다.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말을 걸면 긴장하..

탈의실에서는 남의 험담을 하지 말아 주세요

얼마 전에 어떤 여성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그녀가 남편과 함께 가끔 가는 스포츠 센터의 여자 탈의실에 이런 내용의 종이가 붙어 있다고 한다. '탈의실에서는 가능한 한 다른 손님의 험담을 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런 걸 일부러 붙일 정도니, 남의 욕을 하는 사람이 꽤나 많은 모양이지요."라고 그녀는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모르면 몰라도 험담이 사물함 너머 당사자의 귀에까지 들려 (모모 씨 수영하는 폼 숭어 같지 않아?라든가) 머리를 쥐어뜯고 피를 보는 싸움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스포츠 센터 측에서도 넌더리가 나 그런 글귀를 써 붙였을 것이다. 있을 수 있는 일이나. 행인지 불행인지 여자 탈의실에는 들어가 본 일이 없어서 상세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 나온 김에 남편한테 그 이야기를 했더니, ..

보내지 못한 투서

이런 편지를 쓰느라 아침의 귀중한 시간을 소비하는, 나로서는 솔직히 말해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생각하는 바가 있어 본의 아니게 이렇게 책상머리에 앉아 펜을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나는 그렇게 자주 귀점을 찾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는 주로 경제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손님을 초대하고 싶을 때나, 개인적으로 축하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봐 둔 음식점'으로 귀점을 선택하여 아내나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항상 테이블을 둘러싸고 맛있는 요리에 만족하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풍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음식점을 한 군데쯤 알고 있으면 생활에 한결 윤기가 흐르겠죠. 물론 내가 즐겨 찾는 레스토랑에 비하면 결코 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요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