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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이번 글은 분위기를 바꾸어서 라이브로 나갑니다. 얼마 전 이가라시가 편집장한테 엎드려 절까지 하면서 사정사정하여(잔소리는 실컷 들었지만) 특별히 4페이지를 덜 할애받은 덕분에 공간적 시간적 여유는 충분합니다.
이가라시: 정말 황당했어요. 원고 매수를 늘리면, 그래봐야 쓸데없는 소리밖에 더하겠느냐고 그러질 않나…….
하루키: 좋아 좋아, 수고했네. 실은 이번 라이브는 '크레센트'의 특별실에서 프랑스 요리를 먹으면서 우아하게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경비관계도 있고 해서 아오야마에 있는 미즈마루 씨의 사무실에서 보내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눈치 빠른 이가라시가 맥주하고 안주거리를 사 왔으니, 정말 대단하군요.
이가라시: 이 치즈는 키노쿠니야에서 샀는데 굉장히 비싸더라고요. 경비에서 빼낼 수 있을지 원. 그리고 이 방울토마토는 청정 하우스에서…….
하루키: 알았어, 알았어, 고맙네. 그런데 미즈마루 씨는 올여름 악질적인 구강염으로 고생하셨다죠.
미즈마루: 음, 그랬지. 입 안에 커다랗게 두툴두툴이 생겨서, 그걸 태워서 잘라냈다니까. 얼마나 아팠던지, 덕분에 살은 꽤 빠졌지만, 이제 괜찮아요. 이렇게 술도 마실 수 있고. 꿀꺽꿀꺽.
하루키: 무사히 회복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그건 그렇고 독자 여러분한테서 편지하고 전자 메일을 잔뜩 받았는데, 일단 분야별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기묘한 맨션 · 러브호텔 이름' 부문에 상당한 반응을 보여 주셔서, 이번에는 그 부문만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정해 놓고 보니, 일본 전역에 이상한 이름이 붙어 있는 맨션 · 러브호텔이 상당수로군요. 하나하나 검토해 보고, 가장 멋들어진 이름의 맨션 또는 러브호텔에는 무라카미 아사히도에서 '일본 맨션 · 러브호텔명 대상'을 드립니다. 대상이라 해봐야 경비 문제로 상품이나 상패는 없습니다만, 없지?
이가라시: (단호하게) 없습니다.
하루키: 먼저 고베 시에 거주하시는 여성이 '마더스 움(Mother's Womb)'이란 맨션이 있다고 편지로 알려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자궁'이란 뜻이죠. 음(멋지다) 이거, 굉장한데. 대체 어떤 감각을 지닌 사람이 맨션에다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혹시 온수풀이라도 딸려 있는 것 아닐까' 하고 편지를 주신 여자 분은 추측하고 있다는데, 그렇게 되면 정경 적으로 영화 《얼터드 스테이츠》의 세계로군요. 아이치 현에 사시는 구리하라 씨(여성 32세)의 회사 근처에 '레종 데트르 6번'이란 맨션이 있답니다. '존재 이유 6번'이라. 철학적이로군요(웃음).
미즈마루: 그런 거, 이름을 붙이는 쪽이나 들어와 사는 쪽이나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겠죠.
하루키: 그렇겠죠. 그런 걸 일일이 생각했다가는 어떻게 살겠습니까. 코가네이에도 '보누르 하케노미치'란 이름의 맨션이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보누르라니 대체 무슨 뜻일까요? 하케노미치라니, 의미를 아시는 분은 꼭 연락 바랍니다. 그 밖에도 뜻을 알 수 없는 예가 몇 가지 있는데, 교토에 '코핀 미크마크'라는 맨션이 있다고 합니다. 미즈타니 씨(여성 25세) 후배가 살고 있어서 한번 가봤는데, 학생들이 주로 많이 사는 평범한 연립 아파트라고 하는군요. 창피해서 편지에 주소를 쓸 수 없었다고 하는데, 그 기분 알만합니다. 그런데 '코핀'이라니 대체 무슨 뜻일까요? 호텔 '미쓰코시'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이
하루키: 주소는 모르겠으나, '라베르비'라는 맨션에 사시는 분도 전자 메일을 보내 주셨습니다. 프랑스어로 '즐거운 우리 집'이란 뜻이라고 하는데(정말일까),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고, 구청에 가면 접수처에서 주소가 이상하다고 뭐라 그러고. 덕분에 하루하루가 골치 아프다는군요. 이름에 너무 집착하면, 그것도 죄로군요.
나는 옛날에 센다가야에서 '프린스 빌라'라는 2층짜리 목조 아파트에 산 적이 있는데, 그 사연인즉 지금의 천황이 결혼한 해에 지어진 건물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좁기는 해도 제법 분위기가 있는 귀여운 아파트였어요. 그처럼 이름을 붙인 사연이 분명하면 그나마 괜찮겠는데.
미즈마루: 내 옛날 사무실은 '아오야마 몽다쥴'이란 건물에 있었는데, 프랑스어로 '푸른 산'이란 뜻이에요. 즉 아오야마(靑山)에 있는 푸른 산이란 말이죠.
하루키: 좀 집요한 것 같지만 말은 되는군요(웃음). 그런데 맨션 이름 중에는, 이런 이름을 붙이느니 차라리 이름 따윈 없는 편이 좋겠다 싶은 이름도 상당히 많더군요. 주인님들의 일고를 독려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예를 들면 '시에스타 떡갈나무 숲'이란 이름도 문젭니다. 오후가 되면 쿨쿨 잠들고 말 것 같아요. 이런 유의 이름은 아직도 한참 많은데 일일이 거론하자면 끝이 없으니, 이제 러브호텔로 옮길까요. 러브호텔에 관한 편지는 한층 래디컬 합니다. 옛날 홋카이도에 '동가바쵸'라는 러브호텔이 있었다는군요. 간판 보고 어디 웃음이 나서 들어갈 수 있겠어요(웃음). 어감 상으로는 역시 섹시하지만.
미즈마루: 그러고 보니 센다가야에 '마쓰코시'라는 러브호텔이 있었지(웃음). 고등학교 때 그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때마침 어떤 여자와 함께 나오는 고등학교 선생님과 눈길이 마주친 일이 있었어요.
하루키: 센다가야는 옛날에는 여관 가였으니 말이죠. 오늘날에는 J리그 일색으로 시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지만, 그래서 어떻게 됐죠?
미즈마루: 학생은 이런 데서 얼쩡거리면 안 된다고 도리어 화를 내더라니 까요(웃음).
하루키: 그거 큰 재난을 당하셨군요. 그런데 도치기 현 아다치 시에는 '인간관계'라는 호텔이 있다고 합니다. 간판만 보고도 생각에 잠기겠어요.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미즈마루: 인간관계라…….
하루키: 미즈마루씨,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거 없어요. 아무 염려 없으니까. 그리고 교토에 '그리하여'란 이름의 러브호텔이 있다는 정보를 전부 7명이 보내 주셨습니다. 눈길을 끄는 만큼 꽤 좋은 이름이군요. 드라마적인 맛이 있어요. 좀 작위적인 느낌도 들지만. 이시카와 현에도 같은 이름의 호텔이 두 군데 있다고 하는데, 교토의 호텔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바라키 현에는 '시간 죽이기'라는 호텔이 있다는군요.
미즈마루: 그거 굉장하군(웃음).
이가라시: 시간을 죽이기 위한 섹스.
하루키: '오후의 정사' 같군. 그러나 인생, 어차피 사는 거라면 조금 더 목적의식이 확실한 것도 좋지 않을까. 여기에는 권태기에 접어든 커플이 모여들어 아주 나른한 분위기를 연출할 것 같은데요. 반대로 나른하지 않은 이름으로는, 제3게이힌 주변에 '코시엔'이란 호텔이 있다는군요. 이게 니시노미야에 있으면 별 문제가 아닌데, 제3게이힌에 있으니 소름이 끼치는군요(웃음).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이 흐를 것 같아요. 시간이 되면 사이렌이나 뭐 그런 것이 울리고.
이가라시: 시간 연장할 거냐고 프런트에서 전화가 걸려온다든지. 원주율과 각도까지 있는 수수께끼의 이름
미즈마루: 옛날에 코시엔에서 경기를 한 적 있는 사람이 경영하는 호텔 아닐까.
하루키: 과거 코시엔의 선수, 오늘날의 호텔 오너라. 인간에게는 역사가 있으니. 그럴싸하군요. 하지만 아사히신문에서는 절대로 다루지 않을 거예요. 쇼난에는 '수국'이라는 호텔이 있는데, 이걸 '아지사이'라 읽지 않고 '시요-까(할까)'라고 읽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칫부 근처에는 '거시기'라는 호텔도 있다는군요.
일동: 우하하하하(하고 힘없는 웃음소리).
하루키: 쇼난도 제법 와일드한 곳이죠. 후지사와의 동진 하이스쿨이라는 학원 근처에는 '45˚'라는 이름의 러브호텔이 있다고 합니다. 각도를 뜻하는 것이겠죠. 나도 옛날에 후지사와에 산 적이 있지만, 대체 무슨 생각인지 원. 하지만 정보에 의하면 밤늦게까지 학원생들이 부근에 모여 있기 때문에, 실제로 들어가는 사람은 별로 볼 수 없다는군요. 그야, 안 그렇겠어요. 학원 아이들이 힐끗힐끗 보는데, 어떻게. 완전히 자리를 잘못 잡았죠.
이가라시: 그러니까 그 자격상 45˚가 아니면 역시 안 되는 걸까요? 들여보내지 않는다던가…….
하루키: 글쎄, 과연 어떨지. 궁금하면 호텔에 전화를 걸어 알아보든지. 그리고 그냥 보기만 해도 이상한 것으로는 'π=3.14……'란 이름의 호텔이 메신 고속도로 이치노미야 인터체인지 부근에 있는 모양입니다. 이것은 각도가 아니라 원주율이죠. 혹 직경이라도 재려는 것인지. 수수께끼입니다. '샤르망 69'라는 이름도 어떤 사연으로 붙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상 좀 노골적이로군요.
미즈마루: 요컨대 러브호텔의 이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러브호텔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이름이 아니면 곤란하다는 거겠지. 눈길을 끌지 않으면 안 되니, 그래서 다소 기이한 편이 좋다는 거겠고. 연예인은 연예인다운 차림을 하고, 건달은 건달다운 차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하루키: 그럴듯하군요. 그러니 어떤 이름이든 가능하단 말이죠. 하지만 눈에 띄면 그만이라는 속내가 너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도 그렇잖아요. 조금은 은근한 멋이 있어야지. 귀여운 이름의 따끈따끈한 러브호텔 노선도 없지 않아요. 그 예를 몇 가지 들어보죠. '낮잠 자는 해달'(후쿠오카. 자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노란 고래', '핑크 코끼리'(교토. 여러분 건강에는 조심합시다), '요정이 잊은 초록색 시간'(우우우우웅……), '우리 집'(이바라기. 갑자기 그런 말 하면), '3학년 2반'(이시카와. 소도구 같은 것도 마련되어 있으려나), '공부방'(후쿠오카. 인생이란 과연 배울 것이 많다).
그리고 또 유별난 이름으로는 '초밥집 옆'(나라 현. 알기 쉬지만 초밥집이 없어지면 어쩔 셈인지), '늘 가던 곳'(이시카와. 약속 장소로 편리하겠군요).
코타루시에는 '농협'이란 호텔도 있다고 합니다. 농민 할인 같은 게 있는 걸까요. 이시카와 현에는 '무'라는 호텔이 있는데, 무를 대각선으로 교차시켜 놓은 간판이 도로변에 서 있다는군요. 그 뜻이 참으로 깊군요.
미에 현에는 '멋쟁이 공화국'과 '하이칼라 공화국'이란 쌍둥이 호텔이 있다고 하는군요. 간판 두 개가 서 있는데, 이쪽이 '멋쟁이'고 저쪽이 '하이칼라'라니. 간판 앞에 서서, 자 어느 쪽으로 들어가지 하고 고민하게 생겼어요(웃음).
미즈마루: 그거 참 어느 쪽으로 들어가야 좋을지,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고민하는 타입이라서요. 으음, 멋쟁이 공화국 쪽이 조금 낫겠지 뭐.
하루키: 그럼 나는 이쪽의 하이칼라 공화국으로 들어가죠. 그럼 미즈마루씨, 열심히 분발해 보세요, 그럼 나중에……, 이런 쓸데없는 농담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죠.
이가라시: 난 아직도 45˚가 마음에 걸리는데……
하루키: 계속하겠습니다. 효고 현의 어느 호텔에 '덕쟁이 고양이'란 네온사인 간판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덕쟁이 고양이? 그런데 이분(오사카시 회사원, 익명 희망)이 무슨 소린가 싶어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변덕쟁이 고양이'에서 '변'자가 지워져 있더라는 겁니다. 헷갈리니까 좀 고쳐 주었으면 좋겠군요. 이런 경우는(웃음). '덕쟁이 고양이'라고 하니까, 미야자와 겐지의 세계로 들어간 것처럼 아주 재미있고 좋지 않나요. 일이 다 끝나고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아아, 오늘도 또 덕쟁이 고양이 놀이를 하였군.'이라고 문득 중얼거리면 가슴에 찡하게 와닿는 것이 있을 것 같아요. '변덕쟁이 고양이'보다는 훨씬 좋은 이름인 듯합니다.
그렇게 하여 이번 '무라카미 아사히도, 일본의 맨션 · 러브호텔명 대상'은 이 '덕쟁이 고양이' 씨에게 드릴까 합니다. 비록 우연의 산물이라고는 하나, 그 오묘하고 부조리한 울림이 일품입니다. 멋져요. 영예로운 수상을 기념하여 《주간 아사히》 이번 주 호를 들고 오시는 분에게는 '덕쟁이 고양이'의 평일 휴게 요금을 3할 할인해 드린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덕쟁이 고양이' 씨, 축하합니다. 안타깝게도 어디에 있는 호텔인지 장소는 불명입니다. 아무튼 독자 여러분 앞으로도 '덕쟁이 고양이'에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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