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410

단 하루에 싹 바뀌는 일도 있다

무슨 일에 대한 견해가, 어떤 한 사건을 계기로 단 하루 만에 싹 바뀌는 일이 가끔 있다. 그렇게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자주 있었다가는 피곤해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잊을 만하면 불쑥 생긴다.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도 있고, 부정적으로 변화하는 것도 있다.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그야 물론 긍정적으로 변하는 편이 바람직하기는 한데……. 디나 워싱턴이 그 옛날 '단 하루에 이 얼마나 큰 변화인가(What a Difference a Day Makes)'라는 노래를 부른 일이 있는데, 물론 사랑을 말하는 것이지요. 사랑을 함으로써 주변의 세계가 크게 바뀌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흔히 몸소 체험하는 일이다. 사랑하는 이성과 마음을 나눔으로써, 반짝거리는 태양과 바람의 감촉이 어제와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빵가게 습격

아무튼 우리는 배가 고팠다. 아니, 배가 고픈 정도가 아니라 마치 우주의 공허를 그대로 삼켜 버린 것같이 속이 텅 비어 있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엔 도넛 구멍처럼 작은 공백이었던 것이, 날이 감에 따라 우리 몸 안에서 자꾸자꾸 커져서 마침내는 바닥 모를 허무가 되었다. 공복이라는 장중한 BGM이 달린 금자탑인 것이다. 공복감은 왜 생기는가? 물론 그것은 식료품의 부족에서 온다. 왜 식료품은 부족한가? 적당한 등가 교환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등가 교환물을 갖고 있지 못한가? 어쩌면 우리에게 상상력이 부족한 까닭일 것이다. 그렇다, 공복감은 상상력의 부족에 기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러면 어때. 신도, 마르크스도, 존 레논도 죽었다. 아무튼 우리는 배가 고팠고 그 결과 악으로 달리려 했..

서른 두살의 데이트리퍼

내가 서른둘이고 그녀는 열여덟이고...... 이렇게 하면 아무래도 지루한 표현이 될수 밖에 없다. 나는 아직 서른둘이고, 그녀는 벌써 열여덟......좋아, 이거다. 우리는 그저 그런 친구 사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에겐 아내가 있고 그녀에겐 남자 친구가 여섯이나 있다. 그녀는 주말마다 여섯 명의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한 달에 한번씩 일요일에 나하고 데이트를 한다. 그 이외의 일요일에는 텔레비젼을 본다. 텔레비젼을 볼 때의 그녀는 해마처럼 귀엽다. 그녀는 1963년에 태어났는데, 그해에는 케네디 대통령이 총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그 해에, 나는 처음으로 여자아이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유행하던 곡은 클리프 리처드의 '서머 홀리데이'였던가? 뭐, 그런 거는 아무러면 어때. 아무튼..

상실의 시대

NORWEGIAN WOOD – written by John Lennon 노르웨이의 숲 - 존 레논 작사 예전에 나는 한 여자를 소유했었지, 아니 그녀가 나를 소유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 그녀는 내게 자기 방을 보여 줬어. 멋지지 않아? 노르웨이의 숲에서 그녀는 나에게 머물다 가길 권했고 어디 좀 앉으라고 말했어.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의자 하나 없었지. 양탄자 위에 앉아 시계를 흘끔거리며 와인을 홀짝이며 우리는 밤 두 시까지 이야기했어. 이윽고 그녀가 이러는 거야 "잠잘 시간이잖아." 그녀는 아침이면 흥분한다고 말했어. 그러곤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지. 나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곤 목욕탕으로 들어가 잠들어 버렸어. 눈을 떴을 때, 난 혼자였어, 그 새는 날아가 버린 거야, 난 벽난로 불을 지폈어. 멋..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어려서부터 애지중지 길러진 아름다운 소녀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응석받이가 되었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데 천재적인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젊었기 때문에 - 21살이나 22살 이었다 - 그녀의 악취미를 몹시 불쾌하게 여겼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녀는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힘으로써 자기 자신도 똑같이 상처를 받았음에 틀림없다. 워낙 오냐오냐 하고 길러졌기 때문에 기분 내키는 대로 표현하는 것 이외에는 자신을 통제하는 방법을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녀보다 훨씬 강한 누군가가 그녀의 몸 어딘가를 요령 있게 갈라서 그 에고를 내좇았다면 그녀도 훨씬 편안했을 것이다. 그녀도 역시 구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주위에는 그녀보다 강한 사람이 한 명..

양을 쫓는 모험

☆☆☆ 제1장 ☆☆☆ 1970.11.25 "있잖아, 나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었어?" "너를? 뭣 때문에 내가 널 죽여야만 하는 거지?" "그저, 내가 깊이 잠들었을 때 누군가가 날 죽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을 뿐이야. 나는 스물다섯 살까지 살 거야. 그리고 죽을 거야." 수요일 오후의 피크닉 신문을 보고 우연히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된 친구가 전화로 나에게 그 소식을 알려 주었다. 그가 천천히 읽어 준 조간신문의 일단 기사는 꽤 평범한 내용이었다. 대학을 갓 나온 풋내기 기자가 연습 삼아 쓴 것 같은 서툰 문장이었다. 몇 월 며칠, 어딘가의 길모퉁이에서 누군가가 운전하는 트럭에 사람이 치였다. 그 사고를 낸 누군가는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로 조사 중이다. 그 친구가 읽어 준 ..

1973년의 핀볼

1963-1973 낯선 고장의 이야기 듣기를 병적으로 좋아했다. 한때, 10년도 전의 얘기지만, 닥치는 대로 주위의 사람들을 붙들고는 태어난 고장이며 자라난 지역 얘기를 들으며 돌아다닌 적이 있다. 남의 얘기를 솔선해서 듣는다는 유형의 사람이 극단적으로 부족했던 시대였는지, 누구나가 친절하게 그리고 열심히 얘기해 주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어딘가에서 내 얘기를 듣고는 일부러 오기도 했다. 그들은 마치 말라 버린 우물에 돌이라도 던져 넣듯이 나를 향해서 실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면 한결같이 만족하며 돌아갔다. 어떤 이는 기분 좋은 듯이 얘기하고, 어떤 이는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 정말로 요령 좋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이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 「완벽한 문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대학시절 우연히 알게 된 어느 작가는 내게 그렇게 말하였다. 내가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을 일종의 위안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었다. 완벽한 문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뭔가를 쓰게 되고 보면 언제나 절망적인 기분에 사로잡히게 되고 만다. 내게, 쓸 수 있는 영역이란 너무나도 제한된 것들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코끼리에 대하여 뭔가를 쓸 수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코끼리를 부리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쓸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식이다. 8년간 나는 이러한 딜레마를 계속 써왔다. ― 8년. 긴 세월이다. 물론 세..

저자집필목록

무라카미 하루키 / 村上春樹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風の歌を聴け (1979) 1973년의 핀볼 / 1973年のピンボール (1980) 양을 쫓는 모험 / 羊をめぐる冒険 (1982) 중국행 슬로보트 / 中国行きのスロウ・ボート (1983)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 象工場のハッビ-エンド (1983)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 世界の終りとハードボイルド・ワンダーランド (1985) 빵가게 재습격 / パン屋再襲撃 (1986) 상실의 시대 / 노르웨이의 숲 / ノルウェイの森 (1987) 댄스댄스댄스 / ダンス・ダンス・ダンス (1988) TV피플 / TVピープル (1990) 먼 북소리 / 遠い太鼓 (1990)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 国境の南、太陽の西 (1992) 태엽감는 새 연대기/ ねじまき鳥クロニクル ..

국내발행목록

01. 1973년의 핀볼 (구담사문고,문학사상사) 02. 1Q84 1 – 4월~6월 (문학동네) 03. 1Q84 2 – 7월~9월 (문학동네) 04. 1Q84 3 – 10월~12월 (문학동네) 05.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문학사상) 06. 개똥벌레 (창해) 07. 고독한 자유 (백암) 08.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비채) 09.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구담사문고,모음사,문학사상사,열림원,한양출판) 10. 그녀는 레몬빛 사랑을 아직도 기억하는 걸까? (정민) 11. 그때 그 여자는 나를 원했던 걸까? (정민) 12.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문학사상사) 13. 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문학동네) 14. 기사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