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어떤 여성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그녀가 남편과 함께 가끔 가는 스포츠 센터의 여자 탈의실에 이런 내용의 종이가 붙어 있다고 한다.
'탈의실에서는 가능한 한 다른 손님의 험담을 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런 걸 일부러 붙일 정도니, 남의 욕을 하는 사람이 꽤나 많은 모양이지요."라고 그녀는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모르면 몰라도 험담이 사물함 너머 당사자의 귀에까지 들려 (모모 씨 수영하는 폼 숭어 같지 않아?라든가) 머리를 쥐어뜯고 피를 보는 싸움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스포츠 센터 측에서도 넌더리가 나 그런 글귀를 써 붙였을 것이다. 있을 수 있는 일이나. 행인지 불행인지 여자 탈의실에는 들어가 본 일이 없어서 상세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 나온 김에 남편한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래, 남자 탈의실에는 그런 거 안 붙어 있는데"라고 하더란다. 흐음. 나도 스포츠 센터에 가는데, 과연 남자 탈의실에서 다른 사람의 험담은 들어 본 기억이 없군요.
나는 될 수 있으면 세상(또는 특정한) 여자들의 화를 사지 않도록, 그 점만은 주의하면서 조심조심 새앙쥐처럼 사는 인간이라서 '그러니까 여자가 남자보다 남의 욕을 자주 하는 것 같다'는 안이하고 차별적인 결론은 죽어도 입에 담지 않는다. 남자도 사람에 따라서는 곧잘 남의 험담을 늘어놓는다. 그렇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남자의 경우는 '험담' 보다는 '불평' 쪽이 많은 듯하다. 그에 비하면 여자의 경우는 총괄적으로…… 아니 아니 역시 일반론은 피하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의 뇌리에 문득 떠오른 것은, 만약 문단(혹은 문예 저널리즘 관련업계)에 칭찬할 만한 점이 있다면 '거기에서는 남녀 구별 없이 모두 험담을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거기에는 성차별 따위는 없다. 평등하다. 위대하다. 대단하다-고 할까. 요컨대 그 전체가 여자 탈의실 같은 인상일 뿐이지만.
내가 옛날에 경영하였던 술집에는 어찌 된 사연인지 문학 관계 인사들이 많이 들락날락하였다. 작가, 편집자, 평론가 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왔다, 그때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참 잘도 남의 욕을 하는구나.'였다. 이 업계에 종사하기 때문에 험담을 하게 되는 건지, 아니면 원래 험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업계에 들어가는 건지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 달걀과 병아리의 관계다.
아무튼 열심히들 험담을 주고받는다. 그것도 주로 거기에 없는 사람의 험담을 한다. 술을 마시러 오는 손님의 대부분은 카운터 안에 있는 사람 따위는 거의 안중에도 없다. 그러니 인간의 생생한 모습을 안팎으로 관찰하기에 그만큼 좋은 환경도 없었다.
A와 B가 둘이서 술을 마시고 있으면, A와 B는 서로를 칭찬하고, 거기에 없는 C의 욕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막상 C가 오면, 이번에는 A와 B와 C 셋이서 D의 험담을 늘어놓는다, 마침내 B가 자리를 뜨면, 이번에는 A와 C와 둘이서 서로의 칭찬을 하다가 B의 욕을 하기 시작한다. 방금 전까지 거기에 있던 사람에 대해, 손바닥을 뒤집듯 '그 자식 말이야, 한심할 정도로 재능이 없다니까. 그저. 처세술만 살아서' 라느니 '제대로 된 작품 하나 못 쓰면서 정부까지 거느리고'하고 통렬하게 매도한다. 그런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처음에는 '대체 뭐하는 것들이야?' 하고 기가 막혔는데, 결국은 '일종의 인사말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일이 신경을 쓰면 도무지 장사를 할 수가 없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좋은 것은 좋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누구 앞에서든 단호하게 말하는 사람도 적지만 있기는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존재고(게다가 그런 사람들은 그 사람 나름의 다른 문제를 갖고 있었다), 대부분은 상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발언 내용을 바꾸었다. 그리고 또 신랄하고 구체적이며 집요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니 소위 문단 바라고 하는 곳에는 밤이 깊어져도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집으로 가버리면 그 후에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그때 '이거 참 대단한 세계로군' 하고 절실하게 느꼈다. 장래에 자신이 그런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인지 나는 그 후 소설을 쓰게 되었고, 드디어 가게 문을 닫고 전업 작가로 나셨다. 그로부터 벌써 15년 정도가 지났는데, 지금 생각하면 카운터 안에서 세계를 바라보았던 7년의 체험이 작가로서의 나한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재산이 된 것 같다. 나는 거기에서 많은 경험을 몸으로 쌓고 교훈도 몸으로 배웠다. '어설피 칭찬을 받기보다는 비난을 받는 편이 그저 적당하다'란 것도 그때 얻은 교훈의 하나다. 비판을 당하거나 험담을 들으면 물론 기분은 씁쓸하다. 하지만 적어도 속는 것은 아니다.
소문의 심장
그건 그렇고 소설이나 시집 위에 실려 있는 '주고받기 식' 해설, 요즈음 좀 말이 많다 싶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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