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나이를 먹어 운전면허를 땄는데, 그때 나는 로마에 살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초보 운전자로 운전의 매너나 테크닉을 거의 로마 거리에서 익힌 셈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장님은 뱀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속담처럼 끔찍하고 위험한 일이었는데, 정작 그때는 ‘뭐 이런 건가 보다’ 하고 흐르는 대로 거침없이 운전하였다. 아차 싶을 때도 몇 번 있었지만 다행히 사고는 일으키지 않았다.
일본의 운전자 중에는 ‘로마에서만은 운전대를 잡고 싶지 않다’는 분이 많은데, 나는 로마 사람들이 그렇듯 무지막지하게 운전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언뜻 보면 그들의 운전행태가 엉망진창 카오스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 나름대로의 룰이 있고, 모두들 그 룰을 기본적으로 존중하고 있다. 그러니 그 룰을 따르기만 하면 딱히 겁날 일은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말 그대로이다.
그런 로마 사람들의 룰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역시 ‘표정’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어떻게 하지, 괜찮을까’ 하고 망설여질 때는, 슬쩍 상대방 운전자의 얼굴을 본다. 그 눈을 보면 내가 앞으로 나가야 할지 나가지 말아야 할지, 대개 파악할 수 있다. 상대방의 눈이 보이지 않을 때는 자동차의 제스처를 본다. 그러면 대충 알 수 있다. 콧부리가 부릉부릉 떨고 있으면 ‘노오오오!’고, ‘……시’면 좋다는 뜻이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한동안 운전을 하다 보면 자연히 터득하게 된다.
그러다 도쿄로 돌아와 운전을 하자니 여간 거북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일본의 운전자나 자동차에는 그런 표정이란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주위에 있는 차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런 현상에 나는 몹시 놀랐고, 공포감을 느끼기까지 하였다. 그러다 점점 이 사회에 익숙해지면서, 나 역시 도쿄 거리를 꽉 메우고 있는 무표정한 운전자의 한 사람으로 변하고 말았다. 좀 안타까운 기분이다. 애써 이탈리아 운전자들의 귀중한 룰을 터득하였는데 말이다.
이전에 ≪먼 북소리≫란 책에도 쓴 적이 있는데, 로마에서 란치아 델타 1600GT란 차를 샀다. 순전히 스타일만 보고 샀다. 델타는 인테그라레라는 초 스포츠 버전이 유명하여 일본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데, 스타일 자체는 오버 펜더가 없는 평범한 쪽이 단연 아름답다. 지우자로의 군더더기 없는 말끔한 디자인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성능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할까, 솔직히 털어놓으면 좀 문제가 있다. 시속 120킬로미터를 넘으면 핸들이 부들부들 덜컹덜컹 흔들리고, 핸들에서 잠시 손을 떼면 바퀴가 끼익 끼익 왼쪽으로 호를 그리며 돌아간다(이 호에 딱 맞는 긴 커브길이 도메 고속도로상에 있어 사람들한테 자랑하곤 했었다). 그리고 에어컨은 하얀 서리만 뿜어낼 뿐 거의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파워 스티어링이 없는데다 핸들이 유난히 무겁다. 그런 형편이니 횡렬 주차시에는 아놀드 슈워제네거한테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다. 차내에서는 머리가 핑핑 돌 정도로 플라스틱 냄새가 나고, 소음도 엄청나다. 기어는 매끄럽지 못하고, 더구나 쉬 고장이 난다.
그러나 정말 재미있는 차였다. 나는 그 차를 내 인생 최고의 차로 여기고 있고, 그 차를 산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큰 행운이었다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차에는 표정이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기 쉽게 말하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손에 잡힐 듯 알 수 있는’ 차였다. 그런 차가 쉽게 있는 줄 아십니까. 세상에는 좋은 차들이 아주 많다. 그러나 생기발랄한 표정이 있는 차는 그렇게 많지 않다.
뭐 속도는 그리 자랑할 만한 게 못 됐다. 하지만 메르세데스를 타고 시큰둥하게 120킬로미터를 내기보다는, 이 차로 80킬로미터를 내는 편이 훨씬 박력이 있었다. 엑셀을 밟으면 속도계의 바늘이 핑- 튀어 오른다. 엔진이 ‘우이이이잉’ 하고 쾌락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다. 바람을 가르는 화려한 소리. 마치 레이서라도 된 기분이 든다. 오오오오……, 그러나 속도계를 보면 고작 80킬로미터다. 요컨대 입으로 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런 굼뜨긴. 그러나 이 정도가 되면 정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너무 정이 들어 귀국할 때 일본까지 끌고 왔지만,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일본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느 무지무지하게 더운 날 오후, 가이엔 거리의 시로가네 근처에서 방향 전환을 하려는데 엔진이 뚝 꺼지면서 먹통이 되었다(낡은 이탈리아제 차를 갖고 계신 분이라면 이런 기분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는 사람한테 팔아버렸다. 그때 두 번 다시 이탈리아제 차를 사나 봐라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샀다니까요, 글쎄. 얼마 전 마누라한테 “당신, 어디가 좀 모자라는 거 아냐”라고 핀잔을 들으면서도 이탈리아제 차를 사고 말았다. ‘우이이이이이잉’ 은 역시 즐겁다.
소문의 심장
비치 보이스의 CD를 노르웨이어판과 일본어판으로 번갈아 들으니, 여름이 뒤틀려 보여 재미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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