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무라카미한테도 힘든 일이 있다

chocohuh 2021. 10. 12. 12:47

얼마 전 펜네임에 관한 이런저런 불편함에 대해서 썼는데, 이번에는 '말을 거는 일'에 대한 고통을 쓰겠다.

 

나는 정처 없이 어슬렁어슬렁 거리를 산책하고, 전철을 타고 이동하고,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장어덮밥(보통)을 먹고……하는 아주 평범하고 마음 편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사생활에 있어서는 무명으로 지내고 싶고, 그런 기본 방침 하에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도 출연하지 않고, 웬만한 일이 아니면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다. 드물게 잡지에 얼굴 사진이 실리는 정도다. 노출도가 아주 낮은 편이다.

 

그런데도 거리를 걷다 보면 "실례지만 무라카미씨 아닌가요?"라고 누군가가 말을 거는 일이 가끔 있다. 대충 한 달에 한 번꼴이다.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말을 걸면 긴장하여 음식 맛도 모르게 된다. 특과 보통의 구별도 없어지고 만다.

 

그러니까 묵묵히 밥을 먹고 있는 무라카미는 가능한 한 그냥 내버려 두어 주세요.

 

"제 얼굴을 용케 알아보셨군요?"라고 말을 건 사람한테 물어보는 일도 있는데, 대개는 "그럼요, 다 알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당연한 일 아니냐는 식으로. 으음, 내 얼굴이 그렇게 특징 있는 얼굴인가?

 

"미즈마루씨가 그린 얼굴 그림하고 똑같은 걸요 뭐"라고 킥킥 웃으면서 대답하는 젊은 여자도 몇 명 있었다. 닮았나?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전 이 연재물에서 미즈마루씨가 더플코트를 입고 있는 나를 그린 이후에는, 더플코트를 입을 때마다 꽤나 긴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더플코트 외에는 별로 입을 것이 없으니 그런 그림을 그린 미즈마루씨가 나쁘다.

 

오자키에 있는 운전학원에 다닐 때의 일이다. 매일 아침 야마노테선을 타고 다녔는데, 어느 날 아침 만원 전철 속에서 옆에 있는 사람이 "무라카미씨죠. 늘 읽고 있어요."라고 말을 걸었다. 그때가 제일 난감했다. 전철 안은 몸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붐볐다. 나와 그 청년은 코와 코를 거의 맞대고 있는 지경이었다. 어디로 숨으려 해도 숨을 곳이 없었다. "그래요, 그거 고마운 말씀이로군요.……"라고만 대답하고 대화는 끊어졌다. 주위 사람들은 힐긋힐긋 보지, 긴장도 되고 창피하기도 하여 땀은 줄줄 흐르지, 할 수 없어서 나는 내릴 역도 아닌 고탄다에서 내리고 말았다. 덕분에 도로 주행 연습시간에 지각을 하였다. 그러니까 만일 만원 전철 속에서 무라카미 비슷한 인간을 보더라도, 어여삐 여기시고 제발 말을 걸지 마세요. 부탁입니다.

 

그 외에도 전철 속에서 누가 말을 건 적이 있다. 그때는 밤이었고 전철은 텅 비어 있었다. 제법 귀여운 아가씨가 타박타박 내 쪽으로 걸어오더니 "무라카미 하루키 씨죠. 저 오래 전부터 팬이에요"라고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나도 "아 예, 고맙습니다."라고 대꾸했다. "저는 무라카미씨의 첫 소설을 제일 좋아해요"라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흐음, 그렇습니까?"라고 나는 말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왠지 점점 한심해지고 있더군요."라고 그녀는 명랑하게 말했다.

 

그야 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좀.

 

어떤 동업자는 거리에서 "○○○씨죠"라고 낯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아니요, 아닙니다. 사람을 잘못 보셨어요."라고 가차 없이 대답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냉정하게 대처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 면전에다 대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서투르다(소설 속에서도 거짓말만 쓰고 있지만).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모른 척해야지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도, 막상 "무라카미 씨죠?"라고 대뜸 물으면 우물쭈물 ", , 그렇습니다."라고 성실하게 대답하고 만다. 지금까지 딱 두 번 "아닙니다."라고 거짓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스스로 말하기도 뭣하지만, 개인적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해 봐야 별로 재미있는 사람이 못 된다. 무슨 흥미로운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재치 있는 말을 좍 늘어놓는 것도 아니다. 머리도 좋지 않다. 열어 보이고 싶을 정도다.

 

내가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 않는 까닭은, 많은 사람들이 ', 별거 아니잖아' 라고 실망하면서 돌아서는 모습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로 인하여 누군가가 실망한다면, 그건 일에 관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할 테지만, 그 이외에는 가능하면 세상 사람들을 쓸데없이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게다가 나는 유난히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얼굴이 금방 풀을 먹인 것처럼 뻣뻣하게 굳고 만다. 좀 더 긴장하면 상대방에게 달려들어 깨물기도 하고……는 농담이지만(그렇다고 순진한 농담도 아니지만) 말 걸어 봐야 좋은 일 하나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정말 부탁합니다. -우르릉, 컹컹.

 

 

소문의 심장

 

얼마 전에 어디에 갔는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잘 읽었습니다."라고 누가 그러더군요, 죄송합니다. 그건 무라카미가 쓴 책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