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410

알몸으로 집안일을 하는 주부는 정당한가?

미국 신문에도 일본 신문처럼 인생 상담 코너가 있는데, 나는 그 코너의 제법 열렬한 독자였다. 덕분에 미국에서 4년 반을 지내는 동안 일반적인 미국 사람들이 껴안고 있는 고민거리에 대해 통달한 기분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는 무수한 고민거리로 넘쳐나는데, 그러나 미국 사람과 일본 사람들의 고민 내용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사람들의 고민거리라는 것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라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다. '같은 고민이라도 나라가 다르니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깊이 생각에 잠기는 쪽이 훨씬 더 많았다. 고민의 내용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카운슬러와 미국의 카운슬러는 그 대답하는 양식 또한 상당히 다르다. 일본의 경우는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정서적인 대답이나, 혹은..

그야 뭐 난 맥주를 좋아하지만

지금까지 서너 번 맥주 광고에 나와 줄 수 없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항상 맥주 광고란 말인가? 래비트 지우개라든가 꼼므 데 갸르송이라든가 도영 지하철, 이시마루 전기, 아사히 신문사, 다카라 싱크대, 도요타 포크 리프트, 일본대학 이공학부, 매킨토시 컴퓨터 등등, 세상에는 무수한 제품을 만드는 무수한 회사가 그야말로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데 말이다. 그런데도 어찌 된 셈인지 나한테는 맥주 광고 의뢰 밖에 들어오지 않는다. 거기에는 필경 무슨, 나란 인간의 근원에 직결된 필연적인 원인이 전설의 거대한 뱀장어처럼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우둔한 머리로 추측하는데, 대체 어떤 것인지 짐작이 안 간다. 알고 있는 분이 계시면 가르쳐 주세요.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모든 의뢰를 거절하였..

인문계와 이공계

세상 사람들은 대충 인문계 인간과 이공계 인간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나는 원래가 수학이나 물리·화학 등 이과계통에 압도적으로 약한 전형적인 인문계 인간이다. 그래서 인생의 진로를 택함에 있어서도 망설임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설령 되고 싶다 바란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외과 의사나 물리학자는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법률가나 경제학자도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문학부에 가는 수밖에 없지 뭐' 하고, 싫고 좋고 할 것도 없이 문학부로 진학하였다. 요컨대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부모님이 양쪽 다 국문학(일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니 가정환경이 '인문계적'이라는 이유도 물론 있었을 것이다. 집안에는 문학관계 책이 수두룩했고, 부모님은 당연히 책 읽기를 장려하였다. 시계를 분해하거나 전기배선에..

문학전집이란 대체 무엇일까

재작년 여름, 요시유키 준노스케씨가 운명하였을 때 그 고별식에 참석하였었다. 무지하게 더운 오후였다. 나는 세상 사람들의 관혼상제에 즐겨 얼굴을 내미는 편도 아니고, 요시유키씨와는 생전에 몇 번 만나기는 하였지만 개인적으로 절친하다고 할 수 있는 사이도 아니었기에 '무라카미씨가 어떻게?'라고 몇몇 편집자들은 의아해하였다. 그래서 나는 '신인상하고 다니자키상 때 심사 위원이었고, 여러 가지로 신세를 많이 졌기 때문에'라고 설명하였는데-실제로 그렇다. 그런데 사실은 요시유키씨에 관해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한 가지 있어,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 얼굴이나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당히 오래전 외국에 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오랜만에 잠시 귀국을 하였더니 어떤 출판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 우리 출판사에서 ..

체벌에 관하여

중학교 때, 툭하면 선생님한테 얻어맞았다. 초등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한테 얻어맞은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중학교 때만은 수도 없이 얻어맞았다. 그것도 담배를 피웠다든가 물건을 훔쳤다든가 술을 마셨다든가, 그런 심각한 나쁜 짓을 저지른 결과로 얻어맞은 것이 아니다. 숙제를 잊어버리거나 선생님의 기분을 거스르는 무슨 말을 하는 정도의 아주 사소한 일 때문에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선생님은 손바닥으로 뺨을 찰싹찰싹 때리기도 하고, 자 같은 것으로 머리를 때리기도 하였다. 선생님한테 맞는 것은 우리한테는(적어도 나한테는) 일상생활의 일부분이었다. 대개 남학생이 얻어맞았지만, 여학생이 맞는 일도 없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가 유난히 건방져서 쉬 얻어맞았는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당시의 ..

장수 고양이의 비밀. 잠꼬대편

고양이를 싫어하는 전국의 여러분, 죄송하지만 또 고양이 이야깁니다. 게다가 좀 으스스한 이야기니까, '그런 얘기는 읽고 싶지 않다'는 분은 이 부분을 건너뛰도록 해주세요. 다음 페이지에 과연 무슨 이야기가 씌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스물한 살을 넘기고도 아직 살아 있는 뮤즈(암컷, 샴 고양이)는 정말이지 수수께끼에 찬 고양이다. 내가 지금까지 기른 고양이 중에서 가장 에피소드가 많다. 예를 들면 뮤즈는 잘 때 잠꼬대를 한다.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류의 고양이는 꿈을 꾸고 잠꼬대도 한다. 악몽에 시달리는 일도 있다. 그러니까 잠꼬대를 하는 것 자체는 별로 신기할 게 못된다. 그런데 이 고양이는 때로 인간의 말(비슷한)로 잠꼬대를 한다. 이 이야기는 15년 전에 어느 에세이에서 한번 언급한 적이 ..

장수 고양이의 비밀. 출산편

지난번에 스물한 살이 된 장수 고양이 뮤즈에 대해서 썼는데, 이 고양이는 기묘한 에피소드를 잔뜩 지니고 있어(책 한 권 정도는 족히 쓸 수 있는 분량이다) 내용을 조금 더 첨가하기로 하겠다. '고양이를 보면 무서워서 몸이 움츠러든다.'는 미즈마루씨가, 또 이 칼럼에 고양이 그림을 그려 넣지 않을 수 없게 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사과드리는 바이지만. 뮤즈는 암고양이라서 몇 번인가 새끼를 낳았다. 이 고양이는 순수한 샴 고양이지만 뭐 딱히 혈통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어서, 처음부터 밖에서 기르면서 제멋대로 나다니게 놔두었다. 그래서 새끼들은 하나같이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잡종이지만, 다들 생김도 귀엽고 영리하여 서로들 가져가겠다고 앞을 다투었다. 그런데 뮤즈가 일고여덟 살이 되었을 무렵, 아는 수..

장수 고양이의 비밀

고양이를 좋아하여 태어나서 지금까지 꽤 많은 고양이를 길렀는데, 20년 이상 산 고양이는 딱 한 마리밖에 없다. 이 고양이는 올 2월에 드디어 스물한 살이 되어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중인데, 현재 내가 직접 기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9년 전 일본을 떠날 때, 당분간 고양이를 키울 수 없을 것 같아 당시 고단샤의 출판 부장이었던 도쿠시마 씨네 집에 맡기기로 하였다. 아니 실은 "전작 장편을 한 편 써 드릴 테니, 제발 이 고양이 좀 맡아 길러 주십시오."라면서 억지로 떠맡기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그때 '고양이와 교환'하여 쓴 장편이, 결과적으로 내게는 최대의 베스트셀러가 된 이었으니, 이 고양이를 '복고양이'라 불러도 지장이 없지 않을까 싶다. 도쿠시마 씨는 현재 상무이사라는 높은 직책..

취미로 하는 번역

요즈음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글쎄, 번역이라고 할 수 있을 지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행여 선을 보는 자리에서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상대방이 석연치 않아하여 성사될 일도 성사되지 않을는지 모르겠다. "글쎄 취미가 번역이라는 둥 그러잖아요. 이번에는 아무래도 좀……." "음, 그럴 만도 하군요. 그랬어요, 번역이 취미라……." 이런 대화가 어디에선가 오가고 있을 듯한 기분이 든다. 별일도 없는데 일요일마다 스카이라인 GTR을 몰고 하코네에 가서는, 고갯길에서 단란한 남의 가족을 뒤쫓는 것보다는 훨씬 정상적인 취미 같은데, 뭐 그건 그렇고.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번역이 취미라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까지 꽤 많은 번역서를 출판하였고(그 대부분이 미국의 현대소설이다),..

서랍 속의 고뇌하는 개

가끔씩 '자네는 나이는 그렇게 먹어 가지고, 매주 매주 쓰잘데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으니 원,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좀 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얘길 쓸 수 없어'란 질책을 받는다. 참으로 옳은 말씀이다.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것도 쓰고 싶고 저것도 쓰고 싶어 언제든 열심히 쓰다 보면, 결국 쓰잘데 없는 이야기가 되어 버린단 말이에요. 그게 글쎄.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리하여 이번 주에도 또 세상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다. 각오하고 읽어 주세요. 요 얼마 전, 원고를 쓰기 위해 출판사에 부탁하여 도내 모 호텔(이름은 굳이 밝히지 않겠다)에 방을 잡았다. 나는 호텔에 처박혀 원고 쓰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한참 이사 준비를 하던 때라 집에서는 차분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