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꿈이란 걸 별로 꾸지 않는다. 학자들의 설에 의하면 세상에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하니, 실제로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꿈을 꾸는 것이리라.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내 머릿속에는 꿈의 기억이 거의 머물러 있지 않다. 자랑거리는 못 되지만 나는 아주 잠을 잘 자서, REM 수면의 늪 속에서 뱀장어처럼 아침까지 쿨쿨 자고 나면, 설령 꿈을 꾸었다 해도 그 기억은 마치 사막에 물뿌리개로 물을 뿌리듯 허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양이다. 꿈으로서도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힘들여 가며 컬러풀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경시켜 주었는데, '아침이 되면 전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라니 체면이 말이 아닐 거란 기분이 든다. 나도 소설가 나부랭이쯤 되니 그 기분은 잘 안다.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죠.
아주 드물게, 무슨 바람인지 한밤중에 눈을 뜨는 일이 있다.
그런 때면 그때 꾸고 있던 꿈의 내용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눈을 떴다가 금방 또 잠들어 버리므로, 아침이 되면 꿈에 관해서는 역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생각나는 것은 자신이 순간적이기는 하나 꿈의 내용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는, 허망하고 애달픈 사실뿐이다.
이는 잘 알고 있는 노래의 멜로디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을 때의 무력감과 비슷하다.
그런데 공중 부유 꿈만은 예외다. 나는 옛날부터 공중을 부유하는 꿈을 꾸었고, 그 꿈만은 신기할 정도로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꿈속에서는 공중에서 떠다니는 것이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폴짝 뛰어 그대로 공중에 머물러 있으면 된다.
특별한 근육을 사용하지도 않고, 정신을 집중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전혀 피곤해지지도 않고 오래오래 떠 있을 수 있다. 좀 더 위로 올라가 볼까 생각하면 위로 올라갈 수도 있고, 지상으로 내려오고 싶으면 내려올 수도 있다. 왜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못하는지, 나는 이상해서 견딜 수가 없다. 안 그렇겠는가, 해보면 아주 간단한 일이니까. '이것 봐, 간단해. 요령만 터득하면 누구든지 할 수 있다고'라고 나는 모두에게 말한다. 하지만 너무 간단해서 도리어 타인에게는 그 요령을 설명할 수가 없다.
공중에 떠 있는다고 해서 아주 높이까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기껏 올라가 봐야 지상에서 1미터 정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더 높이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는다. 지상 50센티미터 정도에서 더 이상 욕심부리지 않고 떠 있는 것이 가장 타당한 공중 부유의 양식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런 패턴의 꿈을 옛날부터 정기적으로 꾸고 있는 모양이다-15년 전에도 이런 꿈에 관한 에세이를 모 신문에 쓴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도 '나는 옛날부터 공중에 떠 있는 꿈을 자주 꾼다.'라고 썼다. 그렇다면 나는 일일이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같은 패턴의 공중 부유 꿈을 계속해서 꾸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꿈에 불과한데도 그 부유 감각은 내 몸에 친근하게 배어 있다. 그래서 옴 진리교의 아사하라 교주가 공중 부유인지 부양인지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믿고 안 믿고 보다는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야?'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게 공중에 떠 있다는 것은 전혀 신기하거나 기이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것쯤 나도 할 수 있다. 물론 꿈속에서지만.
공중에 떠 있는 꿈을 정기적으로 꾸는 것이 정신분석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모른다, 딱히 알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이 꿈에 관한 분석적인 의미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면 좀 위험할지도 모르겠지만, 공중 부유 꿈은 순전히 계시적인 종류의 꿈이 아닌가 하고도 생각한다. 혹 언젠가 내가 정말 공중에 뜨는 것은 아닐까.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왜냐하면 꿈속에서,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이 공중에 둥실 떠 있는 그 기분이 뭐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좋기 때문이다. 자기도 모르게 입이 헤벌어지고 만다. 그런 일을 하고 싶을 때 마음껏 할 수 있다면 인생은 천국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기분과 아주 유사한 '기분 좋음'을 실생활 속에서 맛보았다. 올여름 2천 미터 이상을 쉬지 않고 수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도 어느 날 아침 돌연히, 아주 손쉽게 물살을 가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때까지 자유형으로 기껏해야 5백 미터 정도밖에 수영하지 못했고, 그것도 숨을 헐떡거리기가 예사였는데, 지금은 1시간 정도 수영을 해도 전혀 지치지 않는다. 숨도 차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러나 뭐가 어찌 되었든 결과가 좋으면 만사가 좋은 것이니, 수영장을 혼자 묵묵히 왕복하면서 너무 신이 나서 싱글벙글하곤 한다.
이리하여 철인경기 출전을 위한 준비로 자전거만 남았다고 나잇값도 못하고 들떠 있는 요즈음의 무라카미입니다. 그런데 이 자전거가 만만치 않다니까요, 정말.
소문의 심장
안자이 미즈마루 씨는 '딸이 결혼하겠다는 말을 꺼내면, 삐져서 밥상을 엎어 버리고 가출할 것'이라고 호언하는 모양인데, 참 귀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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