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는 편식이 심해서 고생했지만, 커 가면서 여러 종류의 음식을 별로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을 만큼은 되었으며, 사실 대개의 음식은 먹으려고 생각하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 음식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센다가야의 '호프겐'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우리 집 근처이기 때문에 거의 매일 지나다녔다) 기분이 나빠진다. 요코하마의 중국인 거리는 도저히 걸어 다닐 수가 없고, 중국인 거리는커녕 슈마이 냄새를 맡는 것이 싫어 요코하마 역에서 내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알레르기다.
태어나서부터 라면 같은 것은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다. 그런 얘기를 하면 모두들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이건 진짜로 사실이다. 예전에 우연히 중국 음식점에 초대를 받아 가서, 전혀 젓가락을 대지 못한 일도 몇 번인가 있었다.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이유는 잘 모른다. 아마 어릴 때 겪었던 뭔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도대체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생각해 낼 수가 없다. 어쩌면 히치콕 감독의 <백색 공포>와 같은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먹어 보지도 않고 까닭 없이 싫어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 증거로, 아내는 전혀 중국 음식으로 보이지 않도록 중국 음식을 만들어서 몇 번씩이나 나에게 먹이려고 했지만, 나는 언제나 한 입에 그것을 간파해 버렸다. 어떤 희미한 냄새나 향기가 귓가에서 쾅쾅 하고 징 같은 것을 두들겨대면서 나에게 "이것은 우연히 중국 음식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 뿐, 어엿한 중국 음식이다"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이런저런 일로 인해. '중국 음식 알레르기'를 치료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끈질긴 성격의 소유자인 아내조차도 어쩔 수 없이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리고 자기가 중국 음식을 먹고 싶을 때는 누군가 다른 사람을 데리고 먹으러 가게 되었다.
얼마 전에 아내는 라면이 먹고 싶어져서 점심 때 혼자서 라면 가게에 들어가 라면을 먹고 있었다. 그러자 앞 테이블에 앉아 있던 젊은 아가씨가 일행에게 들으라는 듯이. "나이가 들어서도 혼자 라면을 먹으러 오는 여자만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아내는 "그런 말을 듣는 것은 모두 당신이 라면을 먹지 못하는 탓이라구요!" 하고 마구마구 화를 냈다.
그러니까 혼자서 묵묵히 라면을 먹고 있는 40대 여성을 어딘가에서 보더라도 너무 흉보지 말아 주길 바란다. 인간에게는 각자 여러 가지로 개인적인 사정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분풀이는 반드시 나에게 오니깐 말이다.
"하지만 라면을 먹지 못하다니, 정말 인생의 커다란 불행이네요. 정말 맛있으니까요"하고 아내는 말한다. 분명히 그렇지도 모른다. 나도 할 수만 있다면 눈앞에 놓인 음식은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고 싶다. 그렇게 되면 이 세계는 좀 더 단순하고 행복한 장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중국애나무' 그림이나 용의 무늬가 그려진 그릇이라든가 그런 걸 보기만 해도 나의 용기는 장마 때의 폭죽처럼 푹 꺼져 버리고 만다.
고생이나 고통이라는 건, 그게 타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한. 인간으로서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특히 일반적인 종류의 노력이나 고통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심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