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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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와타나베 노보루가 나한테 문어 그림이 그려진 엽서를 보내왔다. 문어 그림 밑에는 그 특유의 비뚤비뚤한 글씨로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지난번에는 제 딸이 지하철에서 당신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지요. 감사합니다. 언제 가까운 시일 내에 문어라도 먹으러 갑시다." 나는 엽서를 읽고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한동안 여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두 달 동안은 지하철 같은 것은 타지도 않았으며 지하철 속에서 와타나베 노보루의 딸을 도와준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아마 다른 누군가와 나를 혼동하고 있는 거겠지. 그렇지만 문어를 먹는다는 얘기는 나쁘지 않다. 나는 와타나베 노보루한테 편지를 썼다. 엽서에 개똥지빠귀 그림을 그리고 그 아래에, "지난번 엽서는 ..

공부하기 싫어했던 나는

나는 학생 때부터 공부하기를 싫어해서 성적이 그다지 신통치 않았던 편이지만, 그래도 '영문 일역' 참고서를 읽는 것만은 예외적으로 좋아했다. '영문 일역' 참고서의 어떤 점이 그렇게 재미있느냐 하면 거기에는 예문이 잔뜩 실려 있기 때문이다. 이 예문을 하나씩 하나씩 읽거나 외우거나 하기만 해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고, 그런 일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 틈엔가 극히 자연스럽게 영어 원서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학교의 영어교육의 문제점이 있다고 트집을 잡는 것은 아니지만, 전치사라든가 동사변화 같은 것을 아무리 정확히 암기한다 해도 원서는 읽을 수가 없다. 나는 그 무렵에 외운 예문을 지금도 몇 가지 기억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서머셋 몸의 '어느 면도사에게나 철학은 있다"라고 하는 말도 그 가운데 하나다. ..

부엌 식탁에서 첫 소설 쓰던 도쿄로 5년 만에 다시 이사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후지사와에 있는 집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다시 도쿄로 이사했다. 4개월가량 도심에서 맨션 생활을 하게 됐는데, 어찌 된 셈인지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집 근처로 오게 되어 "좋은 기회니까 둘이서 여러 가지 나쁜 짓 좀 해봅시다." 하고 미즈마루 씨는 유혹을 하는 것이었다. 또한 의 미야다 편집장은 "여러 가지로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후후후!" 하고 꼬시는 등, 참 여러 가지로 힘들다. 이런 식으로 4개월이 지나면 아마 내 인격이 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후지사와에서 갑자기 도심으로 돌아오니까 모든 것이 '악마궁전의 전설' 같은 느낌이 든다. 생각해보면 도쿄에서 살게 된 것은 그럭저럭 5년 만이다. 이전에 도쿄에 살았을 때는 카페를 경영하면서 , 이라는 두 권의 소설을 썼는데 그 ..

나는 이런 신조로 글을 쓴다

이것은 구태여 말해둘 필요도 없는 말이지만 어떤 직업에도 그 직업 고유의 룰이 있다. 예를 들면 은행원은 돈 계산을 틀리면 안 되고, 변호사는 술집에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하면 안 되며, 매춘 관계의 종업원은 손님의 페니스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면 안 된다는 것 등이다.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한 생선 초밥집 주방장이 있다면 곤란하고, 소설가보다 훨씬 문장을 잘 쓰는 편집자 역시 곤란하다. 그러나 그러한 기본적인 룰과는 별도로 그 직업에 임하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개별적으로 품는 신조라는 것이 있다. 그러한 신조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으며, 거의 갖고 있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는 인간을 관찰하는 것을 비교적 좋아하기 때문에 여러 각도로 보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정말로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고 생각..

개미

가사하라 메이가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온 것은 새벽 네 시 반이었고, 당연히 나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벨벳처럼 푹신푹신하고 따뜻한 잠의 늪 속에, 장어나 고무장화와 함께 푹 잠겨서, 일시적이나마 그런대로 유효한 행복의 과실을 탐식하고 있었다. 그런 참에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따르릉따르릉. 맨 먼저 과일이 사라지고, 그리고 장어와 고무장화가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늪이 사라지고, 결국 나만이 남았다. 서른일곱 살의, 술주정뱅이에다, 남한테 별로 호감을 주지 못하는 나만이 남겨졌다. 도대체 어느 누가 나한테서 장어와 고무장화를 빼앗을 권리가 있단 말인가? 따르릉따르릉, 따르릉따르릉. "여보세요?" 가사하라 메이가 말했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내가 대답했다. "아, 나 가사하라 메이야. 밤..

방콕 서프라이즈

"여보세요. 5721-1251인가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습니다. 5721-1251입니다." "죄송합니다. 사실 저는 5721-1252에 전화를 걸고 있었는데요." "네에." 내가 대답했다. "아침부터 벌써 서른 번 정도 계속 전화를 걸어도 안 받아요. 아마 여행이라도 갔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요?" 내가 물었다. "그래서 말이죠, 말하자면 이웃사촌 같아서, 문득 5721-1251에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한 거예요……." "네." 여자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저는, 어젯밤에 방콕에서 돌아왔어요. 방콕에서 굉-장-한 일이 있었어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굉-장-한 일이요. 원래는 일주일 있을 예정이었는데, 그 일 때문에 3일 만에 돌아왔죠. 그래서 그 얘기를 하려고 계속 1252번에 ..

신문

지하철 긴자 선에서 난동을 부린다는 큰 원숭이 이야기를 들은 지 이미 몇 개월이 된다. 나는 친구들한테서 여러 번 그들의 체험담을 들었고, 직접 내 눈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처럼 큰 원숭이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데도, 신문에서 그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없고, 경찰이 조사를 한 흔적도 없다. 신문이나 경찰이 큰 원숭이의 저주를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면, 나는 그들에게 크게 반성하라고 말하고 싶다. 큰 원숭이들의 활동 범위는 현재로서는 지하철 긴자 선 차량에 한정되어 있지만, 이것이 마루노우치 선이나 한조몬 선으로 확대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만약 일이 그렇게 되고 나서야 뭔가 조치를 취하려 한다면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내가 목격한 것은 비교적 해가 되지 않는 수준의 '큰 ..

부부간의 불화

지의 8월 5일 호를 읽다 보니 존 어빙의 대걸작이며 동시에 베스트셀러인 영화광고가 눈에 띄었다. 주연은 로빈 윌리엄스이고 감독은 를 찍은 최루성 영화의 대천재 조지 로이힐로 7월 23일 미국전역에서 일제히 개봉되었는데 워너브라더스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봐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피플지 7월 12일호의 가십난(잡지 전부가 가십 난 같긴 하지만)을 읽고 있었는데 우연히 존 어빙의 별거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존의 갑작스런 성공은 우리의 결혼 생활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했어요."하고 부인인 샤일러(39세)는 이야기하고 있다. 존은 40세이고 결혼한 지 18년이 되었으며 매우 사이가 좋은 부부로 알려져 있었다. 샤일러는 프로 사진작가이다. "별거하는 데는 그다지 문제가 없었어요..

팬톤 트렌드 컬러(Pantone Trend Color) 2023년

미국의 색채 전문기업 팬톤(Pantone)에서 2023년 트렌드 컬러로 비바 마젠타(Viva Magenta)를 선정하였다. 비바 마젠타는 레드 계열에서 유래한 컬러로 천염염료 계열에 속하는 가장 귀중한 염료 중 하나이자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밝은 컬러의 하나인 코치닐 레드(Cochineal Red)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비바 마젠타(Viva Magenta) 18-1750 팬톤 컬러 연구소의 총괄 디렉터이자 색채연구소장 리트리스 아이즈먼(Leatrice Eiseman)은 올해의 팬톤 컬러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코로나 시국에 좀 더 활기차고 용감해지는 과감한 컬러이며, 우리의 정신을 자극하여 우리의 내적 힘을 기르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그 선정이유를 밝혔다. 팬톤은 1963년 미국에서 ..

착한디자인 2022.12.09

일본 잡지에 대담 기사가 많은 이유

일본의 잡지에는 참으로 대담이 많다. 나는 외국 잡지로는 , , , 같은 것을 대충 훑어보고 있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이런 잡지에 대담이 실린 것은 본 적이 없다. 한 번쯤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전혀 인상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니까 없었던 거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미국에서는 대담이라는 형식이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 않는데 일본에서는 폭발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상상이지만 미국에서는 대담이라는 장르가 없는 것은 그만큼 미국인이 대화에 대해서 신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의 경우처럼 상대방이 말하고 있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네,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하는 투로 어물어물 그 자리를 넘기지 않고 좀 더 깊이 파고들어가, "당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