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하라 메이가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온 것은 새벽 네 시 반이었고, 당연히 나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벨벳처럼 푹신푹신하고 따뜻한 잠의 늪 속에, 장어나 고무장화와 함께 푹 잠겨서, 일시적이나마 그런대로 유효한 행복의 과실을 탐식하고 있었다. 그런 참에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따르릉따르릉.
맨 먼저 과일이 사라지고, 그리고 장어와 고무장화가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늪이 사라지고, 결국 나만이 남았다. 서른일곱 살의, 술주정뱅이에다, 남한테 별로 호감을 주지 못하는 나만이 남겨졌다. 도대체 어느 누가 나한테서 장어와 고무장화를 빼앗을 권리가 있단 말인가?
따르릉따르릉, 따르릉따르릉.
"여보세요?" 가사하라 메이가 말했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내가 대답했다.
"아, 나 가사하라 메이야. 밤늦게 미안해. 또 개미가 나왔거든. 부엌 옆에 있는 기둥에 둥지를 틀었어. 내가 목욕탕에서 쫓아낸 녀석들이 오늘 밤 이쪽으로 둥지를 옮겼나 봐. 그래, 몽땅 옮겼다니까. 통통한 하얀 새끼 같은 것까지 운반했다고. 정말 못살겠어. 그러니깐 말이야. 또 그 스프레이 좀 갖고 와줄래? 밤늦게 미안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난 정말이지 개미가 싫거든. 응? 이해하지?"
난 암흑 속에서 격렬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가사하라 메이가 누구야? 내 머리에서 장어를 빼앗아 간 가사하라 메이라는 인간이 도대체 누구냔 말이야? 나는 가사하라 메이에게 그 질문을 던졌다.
"어머나, 미안해요. 전화를 잘못 걸었나 봐요." 가사하라 메이는 몹시 미안한 듯이 말했다.
"난 개미 때문에 지금 굉장히 혼란스럽거든요, 개미가 몽땅 둥지를 옮겨서 말이에요. 미안해요."
가사하라 메이가 먼저 전화를 끊었고, 내가 그 뒤에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개미가 둥지를 옮겼고, 가사하아 메이가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고, 다시 잠의 늪 속에서 그 우호적인 장어들의 모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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