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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나는 이런 신조로 글을 쓴다

chocohuh 2023. 1. 6. 14:22

이것은 구태여 말해둘 필요도 없는 말이지만 어떤 직업에도 그 직업 고유의 룰이 있다. 예를 들면 은행원은 돈 계산을 틀리면 안 되고, 변호사는 술집에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하면 안 되며, 매춘 관계의 종업원은 손님의 페니스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면 안 된다는 것 등이다.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한 생선 초밥집 주방장이 있다면 곤란하고, 소설가보다 훨씬 문장을 잘 쓰는 편집자 역시 곤란하다.

 

그러나 그러한 기본적인 룰과는 별도로 그 직업에 임하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개별적으로 품는 신조라는 것이 있다. 그러한 신조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으며, 거의 갖고 있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는 인간을 관찰하는 것을 비교적 좋아하기 때문에 여러 각도로 보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정말로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신조에 고집스럽게 매달려 있는 사람도 있고, 매우 엉성한 방식으로 적당히 업무를 처리해 버리고-그건 그런대로 좋지만-잘 안 되면 타인을 원망하는 사람도 있고, 신조가 적은 대신에 자기 선전에 능한 타입의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인간 각자의 재량에 맡겨야 할 종류의 일이니까,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쁘다고는 간단히 말할 수 없다.

 

나도 물론 문장을 쓰는 데 있어서는 몇 가지 개인적인 신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특별히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극히 자연스럽게 처음 단계에서 몸에 배게 된 것이다. 나는 문장을 쓰기 시작한 나이가 비교적 늦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경험한 여러 가지 직업에서 몸에 익은 노하우를 그대로 몽땅 문필업에 응용한 셈이다. 처음에는 임시변통 정도로 생각하고 썼지만, 나 자신에게 너무 잘 맞는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한 나의 개인적 신조를 하나하나 써나가기 시작하면 굉장히 길어질 것이고 그다지 의미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읽을거리로서도 재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다. 그것은 '작가는 비평을 비평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개별적인 비평이나 비평가를 비평하면 안 된다. 그런 일을 하면 무의미하고 무익한 트러블에 말려들어갈 뿐이며 자신만 천박해질 뿐이다.

 

나는 줄곧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살아왔고, 그 때문에 스스로를 마모시킬 기회를 상당히 교묘하게 피해올 수가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세상에 다양한 종류의 내적인 지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데, 작가가 비평이나 비평가를 비평한다고 하는 상황도 그 지옥 가운데 하나일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작가는 소설을 쓴다-그것이 일이다-비평가는 그것에 대해서 비평을 쓴다-그것도 일이다-그리고 하루가 끝난다. 여러 가지 입장에 있는 인간이 각자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식사를 하고(혹은 혼자 식사를 하고) 그리고 잠을 잔다. 그것이 세계라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세계의 과정을 신뢰하고 있다고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전제 조건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적어도 트집 잡아보았자 별 볼일이 없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트집을 잡기보다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발 닦고 식사를 끝내고 이불속으로 기어 들어가서 자려고 노력한다. 스칼렛 오하라는 아니지만 밤이 밝으면 내일이 시작되고, 내일에는 내일의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우선 나 자신에 대하여 비평한 글을 읽지 않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문득 마음이 달라져서 읽거나 하면 '이건 잘못됐잖아?' 하고 생각하는 일이 간혹 있다. 사실을 오해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명백히 헛다리를 짚은 것도 있고, 노골적인 개인 공격을 한 것도 있으며,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 썼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비평도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모든 사정을 다 감안하더라도, 작가가 비평을 비평하거나 그것에 대해서 어떤 변명 비슷한 것을 하거나 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나쁜 비평이라는 것은 말똥이 가득 차 있는 거대한 헛간과 비슷하다. 만일 우리들이 길을 걷고 있을 때 그런 헛간을 본다면 서둘러 지나쳐 가버리는 것이 최선의 대응법이다. '어째서 이렇게 고약한 냄새가 날까?' 하는 식의 의문을 가지면 안 된다. 말똥이라는 것은 본래 구린내가 나는 법이고 헛간의 창문을 열면 더욱 고약한 냄새가 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지난번에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나에 대한 비평을 오려 놓은 옛날 스크랩이 한 상자 가득 나왔다. 대개가 5~6년 전 내가 데뷔할 당시의 것으로 아내가 부지런히 오려내어 보관해 놓은 것이다. 잘도 모아놓았군, 하고 감탄하면서 조금씩 읽기 시작했는데 꽤 재미가 있어서 결국에는 전부 다 읽고 말았다.

 

칭찬하거나 깎아내리는 것에 관계없이 개중에는 지금도 '정말 그렇구나!' 하고 납득이 가는 비평도 있었다. 그러나 5~6년 전의 옛날 것으로 생생함이 모두 소멸되어 있으므로, 오히려 마음 훈훈한 기분으로 비평을 읽을 수가 있다. 이런 식으로 비평과 관계하는 것도 상당히 즐거운 것이다.

 

지금 나의 소설에 대해서 어떤 비평이 나와 있는가는 5년쯤 뒤에 다시 천천히 숙독하면서 음미해보려고 한다. 그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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