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410

남자는 돈을 지불하고 운반만 하는 '캐쉬 앤 캐리'인가

대다수의 남자들이 아마 그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애인과 데이트를 하거나, 아내와 거리를 걷거나 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옷 사는 데 따라가는 일일 것이다. 그것도 한 집이나 두 집이라면 또 모를까, 여섯 집이나 일곱 집씩 따라다닌 끝에, "안 되겠어요. 제일 처음에 갔던 집에 다시 가봐야겠어요"하는 식의 말을 듣게 되면, 온몸에서 힘이 쑥 빠져 버린다. 여자는 남자가 레코드 가게나 장난감 가게 같은 곳에서 열중하고 있을 때 동행해 주었으니까, 하는 생각도 있을 테지만, 그녀들이 옷을 고르는 데 쏟는 집념에는 남자의 온갖 취미의 영역을 하나로 합쳐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의 파워와 위협이 있어서, 그 에너지가 이따금 우리 남자들을 압도하고 놀라게 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나는 어제..

트레이닝 셔츠에 얽힌 이 생각 저 생각

1960년대의 미국 영화를 보고 있으면, 컷 오프 트레이닝 셔츠가 자주 나온다. 긴소매 트레이닝 셔츠를 가위로 싹둑 잘라서 7부 소매 정도로 만든 것이다. '거칠다, 입는 옷 같은 것에는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라고 하는 느낌이 잘 드러나 있어서, 나는 비교적 그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웨스트코트와 같은, 계절에 의한 기온차가 그다지 심하지 않은 곳에서나 적당한 것이지, 일본에서는 그다지 적합하지가 않다. 여름에 티셔츠 대신으로 입기에는 옷감이 너무 두껍고, 겨울에는 소매가 없어서 너무 춥다. 나는 언젠가 흉내를 내서 트레이닝 셔츠의 소매를 싹둑 잘랐다가 크게 후회한 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컷 오프 트레이닝 셔츠를 입기에 알맞은 기간이 상당히 짧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이 원고를 ..

낡은 혼의 흔들림 같은 여름의 어둠

오랜 옛날에 내가 아직 학생이고, 틈만 있으면 슬리핑백을 둘러메고 혼자 여행을 하며 돌아다니던 무렵, 여행지에서 그 고장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즐거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기묘한 이야기를 말이다. 어느 것이나 다 그 고장의 역사와 지형이나 기후와 밀접하게 결부된 이야기였다. 자신의 다리로 마을이나 부락을 일일이 돌아다니다 보면, 하나하나의 장소에 사람들의 추억이 미세한 비늘처럼 달라붙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것은 비행기나 신칸센이나 자동차를 이용하는 바쁜 여행자의 눈에는 거의 띄지 않는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땀에 흠뻑 젖어서 바보처럼 며칠씩이고 뚜벅뚜벅 걷고 있노라면 조금씩 보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산속에서 한 노인이 '죽은 이의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

해변의 카프카

::: 그리고 물론 너는 실제로 그놈으로부터 빠져나가게 될 거야. 그 맹렬한 폭풍으로부터, 형이상학적이고 상징적인 모래 폭풍을 뚫고 나가야 하는 거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놈은 천 개의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네 생살을 찢게 될 거야. 몇몇 사람들이 그래서 피를 흘리고, 너 자신도 별수 없이 피를 흘리게 될 거야. 뜨겁고 새빨간 피를 너는 두 손으로 받게 될 거야. 그것은 네 피이고 다른 사람들의 피이기도 하지. 그리고 그 모래 폭풍이 그쳤을 때, 어떻게 자기가 무사히 빠져나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너는 잘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아니, 정말로 모래폭풍이 사라져 버렸는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게 되어 있어. 그러나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해. 그 폭풍을 빠져나온 너는 폭풍 속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네가 ..

내 첫 직장 첫 사업장 재즈 카페

언제까지나 더부살이를 할 수도 없고 해서 처갓집에서 나와 고쿠분지로 이사를 했다. 어째서 고쿠분지로 이사를 갔느냐 하면 그곳에서 재즈카페를 개업하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취직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서, 연줄이 있는 텔레비전 방송국 같은 데를 몇 군데 돌아다녀보았으나 일의 내용이 하도 바보스러운 거라 그만두었다. 그런 일을 할 바엔 차라리 조그만 가게라도 좋으니까 나 혼자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싶었다. 내 손으로 재료를 고르고, 내 손으로 물건을 만들어, 내 손으로 그것을 손님에게 제공할 수 있는 일 말이다. 그러나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재즈카페 정도에 불과했다. 아무튼 재즈를 좋아했고, 재즈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자금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와 아내가 둘..

서핑을 하는 데 따른 마음의 짐

"지금은 상당히 상황이 호전되었지만, 내가 대학원을 나온 1960년대에는 서퍼 같은 친구들은 모두 무뢰한이라고 여겨졌었다"라고 얘기한 사람은 하와이 대학에서 해양학을 연구하고 있는 리처드 그리그 박사다. 그리그 박사는 한때 와이미어 베이의 톱 서퍼였고 마흔여덟 인 지금도 가장 우수한 서퍼 중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무렵은 정말 형편없었다. 어쨌든 내가 서핑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도 나의 연구를 인정해 주려고 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두 배의 노력을 해서 무엇인가를 발견해도, 저 녀석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말만 들었다. 제대로 대접을 받게 될 때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공화당 의원인 프레드 헤밍스 쥬니어는 서핑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치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상당한 핸디캡을 짊어지..

달리면서 듣는 음악

우리 집 근처에는 육상 트랙이 있어서 그곳을 자주 달리는데, 트랙을 서른 번 정도 혼자 돌다보면 역시 지루해진다. 처음 얼마동안은 재미삼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거나 혼잣말을 하는데, 그러는 사이에 생각할 것도 바닥나 그냥 묵묵히 발을 앞으로 내딛는 일만 되풀이하게 된다. 그래서 얼마 전에 스포츠용품점에 가서 서포터(역주: 운동선수 등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대거나 차는 보호대)를 사가지고 와서, 거기에 워크맨의 베이스를 고정시켜 음악을 들으면서 달릴 수 있도록 머리를 썼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며칠 동안 계속하는 사이에 매우 쾌적하게 달릴 수 있게 되었다. 1킬로미터를 5분 내에 달리 때는 적당하지가 않지만 느긋하게 달리 때는 최고다. 사실 테이프에 집어넣는 음악이 문제인데 그 선택이 상당히 까다롭..

아주 오래전 고쿠분지에 있었던 재즈 카페를 위한 광고

처음부터 흥을 깨는 것 같습니다만, 여기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무나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오시라는 그런 종류의 가게가 아닙니다. 특히 여름에는 약간 문제가 있습니다. 냉방장치가 별로 신통치 않습니다. 전혀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나오는 입구 근처는 꽤 시원합니다만 조금만 떨어지면 여간해서는 찬바람이 와닿지 않습니다. 어쩌면 기계에 뭔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새것으로 바꾸면 좋겠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바꿀 수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이 가게에서는 음악을 틀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재즈 팬이 아니라면 이 음량은 상당히 불쾌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당신이 열렬한 재즈 팬이라면 이 음량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당신이 어느 쪽에 속한다 하더라도 제발 가게 주인을 ..

내가 세 번이나 본 스타워즈

나는 스타워즈를 세 번이나 보았다. 한가하다면 한가하다고 할 수 있고, 유별나다면 유별나다고 할 수 있다. 그때 나의 아내도 함께 영화관에 갔었는데, 그때까지 이 사람은 스타워즈 시리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으로 세 번째 작품을 보고 아니나 다를까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다. 그 뒤로 아내는 스타워즈 1과 스타워즈 2를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보고 싶다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그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은 지금 상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애당초 무리한 이야기였다. 사정이 그러니까 당신이 단념하라고 설득하는 사이에 나도 점점 첫 작품이 너무나 보고 싶어 져서 마침내 레이저 디스크 플레이어와 27인치 모니터 텔레비전과 스타워즈의 디스트를 사버렸다. 70밀리미터 극장 ..

두 손으로 피아노 치는 아빠의 모습

내가 처음으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전집을 산 것은 열여섯 살 때로 피아니스트는 박하우스도, 캠프도, 제르킨도 아닌 레온 프라이셔라고 하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젊은 피아니스트였다. 지휘는 조지 셀이었다. 프라이셔를 선택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값이 쌌기 때문이다. 네 장이 한 세트로 바겐세일해서 단돈 3,000엔이었다. 가난한 고등학생으로서는 반할만한 가격이었다. 연주로서는 품격이라든가 예리함은 결여되어 있었어도, 그 나름대로 느낌이 좋은 레코드였다. 그런데 며칠 전에 라이프지를 읽다보니 이 레온 프라이셔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최근에 프라이셔에 관해 듣지 못한 것 같아서 읽어 보니, 프라이셔는 오른손의 건소염으로 계속 연주가로서의 활동을 중단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건소염이라는 것은 피아니스트에게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