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두 손으로 피아노 치는 아빠의 모습

chocohuh 2023. 5. 17. 09:35

내가 처음으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전집을 산 것은 열여섯 살 때로 피아니스트는 박하우스도, 캠프도, 제르킨도 아닌 레온 프라이셔라고 하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젊은 피아니스트였다. 지휘는 조지 셀이었다. 프라이셔를 선택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값이 쌌기 때문이다. 네 장이 한 세트로 바겐세일해서 단돈 3,000엔이었다. 가난한 고등학생으로서는 반할만한 가격이었다.

 

연주로서는 품격이라든가 예리함은 결여되어 있었어도, 그 나름대로 느낌이 좋은 레코드였다. 그런데 며칠 전에 라이프지를 읽다보니 이 레온 프라이셔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최근에 프라이셔에 관해 듣지 못한 것 같아서 읽어 보니, 프라이셔는 오른손의 건소염으로 계속 연주가로서의 활동을 중단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건소염이라는 것은 피아니스트에게 있어서는 직업병과 같은 것이어서, 옛날에 로베르트 슈만도 이 병에 걸려서 피아노를 단념하고 작곡가로 전업했던 것이다. 우선 새끼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게 되고, 다음에는 약지가 말을 듣지 않게 되며, 결국에는 손 자체가 마비되어 버린다. 여기까지 오면 거의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 잔혹한 병이다.

 

레온 프라이셔는 그래도 버텨 내면서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유일한 레퍼토리로 피아니스트 활동을 계속해 나갔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곡만을 치면서 살아 나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근육 치료 전문인 아래서 피나는 투병생활을 했다. 그는 10년 넘게 훈련을 한 끝에 가까스로 정상적인 피아니스트로 재기한 것이다. 이러한 기사를 읽고 있노라면 정말로 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프라이셔는 첫 번째 재기 콘서트에서 프랑크의 <교향 협주곡>을 연주했다. 리허설에는 프라이셔의 아이들도 참석했다. 그들은 두 손으로 피아노를 치는 아빠 모습을 처음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도 프라이셔는 심각해지지 않고, 갑자기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쳐서 모든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리게 만들었다. 유태인의 유머는 일본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터프함을 지니고 있다.

 

이 원고를 쓰면서 프라이셔가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듣고 있는데, 그리움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