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싫어하는 전국의 여러분, 죄송하지만 또 고양이 이야깁니다. 게다가 좀 으스스한 이야기니까, '그런 얘기는 읽고 싶지 않다'는 분은 이 부분을 건너뛰도록 해주세요. 다음 페이지에 과연 무슨 이야기가 씌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스물한 살을 넘기고도 아직 살아 있는 뮤즈(암컷, 샴 고양이)는 정말이지 수수께끼에 찬 고양이다. 내가 지금까지 기른 고양이 중에서 가장 에피소드가 많다. 예를 들면 뮤즈는 잘 때 잠꼬대를 한다.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류의 고양이는 꿈을 꾸고 잠꼬대도 한다. 악몽에 시달리는 일도 있다. 그러니까 잠꼬대를 하는 것 자체는 별로 신기할 게 못된다. 그런데 이 고양이는 때로 인간의 말(비슷한)로 잠꼬대를 한다. 이 이야기는 15년 전에 어느 에세이에서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것을 읽은 분도 혹 계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 신기하고 이상한 데다 나 스스로도 납득하기가 어려워서 이렇게 또 쓰고 있다.
어느 날 나는 고양이와 함께 잠을 자고 있었다. 낮잠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때 아내는 집에 없었고, 나 혼자 고양이랑 베개를 나란히 하고 잠을 잤다. 말장난이 아니라 정말 베개를 나란히 놓고 잤다. 뮤즈는 인간처럼 베개를 베고 자는 버릇이 있다. 내 쪽으로 향한 채 코고는 소리에 콧김까지 뿜어내 시끄러워서 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다.
잠을 자려고 멍하니 눈을 감고 있는데, "참 내, 말은 그렇게 하지만……"이란 조그만 소리가 바로 귀밑에서 들렸다. 나는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누가 있을 리가 없다. 옆에서 고양이가 곯아떨어져 있을 뿐이다. 고양이는 가끔씩 몸을 쭉 펴고는 '음냐음냐' 하고 잠꼬대 비슷한 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그때 내 바로 가까이서 "참 내, 말은 그렇게 하지만……"이라고 말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틀림없이 들렸었다.
고양이가 잠꼬대를 하면서 낸 의미 없는 소리가 우연히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말은 문맥도 분명하고 억양도 있는 인간의 목소리였다. 나는 잠을 자고 있던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꿈도 아니다. 나는 영문을 몰라 뮤즈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고양이는 "음냐음냐, 뭐야, 귀찮게끔"하고, 마치 마누라나 뭐라도 된 것처럼 짜증을 부리며 일어났다.
"그런데 너, 혹시 무슨 말했니?"라고 나는 진짜로 고양이한테 물어보았다.
고양이는 눈을 뜨고 내 얼굴을 힐끔 보더니, 내 물음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입을 쫙 벌린 채 하품을 하고는 몸을 쫙 펴고서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란 식으로 이불속에서 나와 고개를 저으며 어디론가 가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때 '이 고양이는 분명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자신의 소중한 비밀이 인간한테 발각되어, 그것을 어떻게든 얼버무리고 시치미를 떼려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뮤즈가 사실은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데, 그런 게 알려지면 성가신 일이 벌어질 테니 그 능력을 교묘히 감추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고 심각하게 생각했을 정도였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이후 나는 뮤즈 앞에서는 엉뚱한 말 따윈 하지 않기로 하였다. 고양이란 참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당초에 그 속내를 알 수가 있어야지.
그리고 이 고양이는 새한테 최면을 걸어 사로잡기도 하였다. 뮤즈는 우리가 보지 않을 때-라고 그녀는 생각한다-혼자서 은밀히 사냥을 즐겼다. 하지만 우리 마누라가 그 현장을 우연히 목격한 것이다. 마누라는 뮤즈가 지붕 위에서 전깃줄에 앉아 있는 참새 두 마리를 아주 기묘한 소리로 불러대는 것을 발견하고(뭐라 형용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고 한다), 너무 이상해서 고양이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커튼 뒤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았다. 뮤즈가 기묘한 소리로 불러대자, 참새는 마치 뭐에게 흘리기라도 한 듯 고양이 옆으로 폴짝폴짝 다가왔다는 것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굉장한 재주다. 그때도 나는 어쩌다 저렇게 묘한 고양이를 기르게 되었는지 하고 새삼 생각하였다. 만약 고양이의 내면에 샤먼적 요소가 있다면, 뮤즈는 그런 종류의 능력을 몇 가지 지니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 고양이가 기분 나쁘다든가 불길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뮤즈는 함께 살기에 더없이 이상적인 고양이였다. 예쁘고 머리도 좋고 건강하고 수많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우리와 고양이 사이에는 항상 가벼운 긴장감 같은 것이 감돌고 있어, 그 기분 또한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 인간에게 그런 기분을 선사하는 고양이는 그다지 흔치 않다. 그런 뜻에서 뮤즈는 몇 백 마리에 한 마리 정도 있을까 말까 한 귀중한 고양이고, 그런 고양이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소중한 행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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