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자네는 나이는 그렇게 먹어 가지고, 매주 매주 쓰잘데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으니 원,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좀 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얘길 쓸 수 없어'란 질책을 받는다. 참으로 옳은 말씀이다.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이것도 쓰고 싶고 저것도 쓰고 싶어 언제든 열심히 쓰다 보면, 결국 쓰잘데 없는 이야기가 되어 버린단 말이에요. 그게 글쎄.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리하여 이번 주에도 또 세상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다. 각오하고 읽어 주세요.
요 얼마 전, 원고를 쓰기 위해 출판사에 부탁하여 도내 모 호텔(이름은 굳이 밝히지 않겠다)에 방을 잡았다. 나는 호텔에 처박혀 원고 쓰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한참 이사 준비를 하던 때라 집에서는 차분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호텔 방에 놓여 있는 책상이 너무 작아 일을 하기가 불편한지라,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좀 더 큰 책상을 구해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하였다. 한참 후에 보이 두 명이 어디선가 커다란 사무용 책상을 영차영차 운반해 왔다. '좋아 좋아, 이거면 됐어' 하고 한동안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하다가 일단락 짓고 한숨 돌리던 차에, 별생각 없이 서랍을 열어 보니 안에 잡지가 꽉 들어차 있었다. 무슨 잡지일까 싶어 꺼내 보니, 아니 상당히 노골적인 에로 사진잡지였다. '여고생이 이렇게 저렇게 했다', '아이, 안 돼, 그건…… 아아…… 황홀해' 하는 유였던 것이다. 그런 잡지가 전부 스무 권 정도는 들어 있었다.
나는 뭐 그런 유의 잡지를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구태여 돈을 들여서까지 사서 보는 인간은 아니지만, 결국은 고뇌하는 개에 불과하니 눈에 보이면 그야 보게 되지요.
'야아, 굉장한데. 이런 사진을 잘도 찍었군. 우우웅, 컹컹' 하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독파하다 보니, 그날은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호텔 측이 나의 근로의욕을 감퇴시키기 위해 일부러 책상 서랍을 누드 사진으로 채웠을 리는 없는데, 덕분에 리듬이 깨진 것만은 사실이다. 혹은 '일하다가 피곤하시면, 이런 거라도 보면서 한숨 돌리세요'란 심심풀이 땅콩적 배려였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만약 그렇다면 본의와는 달리 역효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런 게 서랍 속에 들어 있으면 어디 성실하게 일할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이는 비단 나뿐만 아니라 모리 오가이도, 무샤노코지 사네아쓰도, 다야마 가타이도, 우에다 빈도 전부 마찬가지가 아닐까. 근대 일본문학을 비방할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저녁나절 고단샤의 기노시타 요코씨(가명)가 찾아와 "어때요, 무라카미씨. 일 잘돼요?"라고 물었다. "실은 이런저런 일로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아요."라고 나는 정직하게 고백하였다. 그러나 "지금 무슨 농담하고 있는 거예요, 기가 막혀서. 일해 달라고 비싼 호텔료 지불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그런 잡지 따위 당장 갖다 버려요"라며 호되게 야단을 쳤다. 이 사람은 종종 나를 성질 나쁜 원숭이처럼 취급한다. 뭐 상관은 없지만. 하나 그렇게 야단을 친다고 남의 물건을 마음대로 내다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잡지를 껴안고 프런트에 가서(엘리베이터 타기도 창피했다고요) "실은 빌려 주신 책상 서랍 속에 이런 잡지가 들어 있어서요. 솔직히 말해 일이 안돼요. 미안하지만 좀 어떻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프런트 담당 역시 그런 잡지를 느닷없이 갖다 안기면 놀라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과연 노련한 프런트 담당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알겠습니다. 저희가 맡고 있죠."라며 잡지 더미를 받아 들었다.
어떤 경위로 그 책상 서랍이 강력한 에로잡지로 꽉 차게 되었는지, 그 수수께끼는 아직 해명되지 않았다. 호텔이란 수수께끼가 많은 곳인 모양이다. 반듯하고 깨끗하게 정비된 표면 너머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문외한이 알 수 없는 구석이 많다.
이런 이야기를 하였더니, 미즈마루씨 왈 "글쎄 나도 말이야, 얼마 전에 누가 내 책상 서랍에다 <SM 스나이퍼>를 넣어 두었더라니까"란다. 미즈마루씨는 사무실로 옮겨 놓으려고 아파트 복도에다 사무용 책상을 한동안 내놓았는데, 어쩌다 생각이 나서 서랍을 열어 보았더니 전술한 잡지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지나가는 길에 집어넣어 둔 모양이었다. "남의 책상 서랍에다 그런 것을 넣어두면 되겠어. 그런 게 있으면 어디 일이 손에 잡혀야지. 있으면 보게 되니 말이야."
아아, 다행이다. 나만이 아니었다. 미즈마루씨도 역시 나처럼 고뇌하는 개였던 것이다……라고 생각해도, 조금도 마음의 위안이 되지 않는 것이 이 사람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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