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은 대충 인문계 인간과 이공계 인간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나는 원래가 수학이나 물리·화학 등 이과계통에 압도적으로 약한 전형적인 인문계 인간이다. 그래서 인생의 진로를 택함에 있어서도 망설임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설령 되고 싶다 바란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외과 의사나 물리학자는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법률가나 경제학자도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문학부에 가는 수밖에 없지 뭐' 하고, 싫고 좋고 할 것도 없이 문학부로 진학하였다. 요컨대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부모님이 양쪽 다 국문학(일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니 가정환경이 '인문계적'이라는 이유도 물론 있었을 것이다. 집안에는 문학관계 책이 수두룩했고, 부모님은 당연히 책 읽기를 장려하였다. 시계를 분해하거나 전기배선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어디 먼 세계에서 일어난 남의 일처럼 인식되었다. 그래서 나 역시 자연스럽게 인문계를 선택하였다. 그 선택이 유전자에 의한 선천적 결정이었는지, 아니면 가정환경에 의한 후천적 결정이었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유전이 3할에 환경이 7할 정도가 아닐까 하는 기분은 들지만.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해보니, 아내는 나보다 한술 더 뜨는 인문계라 우리 집에서 발생하는 '이공계적 사항'을 나는 싫어도 억지로 떠맡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거리가 되었다. 해결하지 못하면 "겨우 그것도 못하면서, 그래도 남자라고, 흥"이라며 아내는 험상궂은 말을 해댔다.
얼마 전 미국 소설을 읽고 있자니 '어쩌다 남자용 생식기를 한 세트 붙이고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왜 자동차의 트랜스미션을 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간주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냐'라고 투덜거리는 남편님이 등장하였다. 정말 동감이다. 세상살이는 어느 나라에 가나 비슷한 모양이라고 절실하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그런 불합리함을 꽤나 견뎌왔다.
자동차 엔진 오일은 가끔씩 점검하여 새로운 것으로 갈아 넣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고문을 당하는 기분으로 두툼한 해설서를 읽었고, 아침잠에서 깨어날 무렵 빵이 구워져 있도록 제빵기를 예약해 두는 방법도 익혔다. 지금은 광케이블을 사용하여 CD에서 미니디스크로 음악을 녹음하면서, 동시에 레이저 디스크로 《카비리아의 밤》을 볼 수도 있다. 디지털시계를 자명종 시계나 타이머로 사용하면서 4백 미터 트랙의 랩타임을 잴 수도 있다. 전화로 미국 은행의 예금 잔고를 조회할 수도 있다. 옛날 일을 생각하면, 나로서는 현저하게 진보한 것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정말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표창장이라도 주고 싶다.
하지만 세계는 한없이 잔혹한 장치다. 그것은 이래도 큰소리 칠 거냐는 식으로 끝없이 새로운 허들을 내 앞에 내민다. 그렇다. 나는 지금 그 빌어먹을 컴퓨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지금 전부 네 대의 매킨토시 컴퓨터가 있다. 내가 데스크 탑과 랩 탑을 사용하고 있고, 나머지는 아내와 어시스턴트가 사용한다. 각기 조금씩 다른 소프트웨어가 들어 있다. 그리고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늘 그 네 대 가운데 한 대는 반드시 어디가 좀 이상하다. 예를 들면 지금은 프린터가 의식을 잃고 김칫돌처럼 죽어 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내가 책상을 향하여 의식을 집중하고 '그래서 나미코는 삽살개의 배꼽을 날름 핥아 주었다. 그러자 삽살개는 벌떡 일어나 모자를 벗어던지고……'란 소설을 열심히 쓰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나더니 "당신, 여기 좀 와 봐요, 뭐가 좀 이상해진 것 같은데"라며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마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 빌고 싶다.
세계의 어느 끝에 있을 인문계 나라의 인문계 도시나 동네에 가서, 거기서 남자용 생식기를 단 채로 차분하고 조용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의 조촐한 꿈이다.
작가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무라카미 아사히도는 그 후에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점점 전자두뇌화 하게 된다. 원리는 잘 몰라도 쓰면 그런대로 편리한 것이 인터넷의 장점이며 기분 나쁜 점이다. 다만 나는 앞으로 세계는 1) 타인이 프로그램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이용하면서 일을 하거나 노는 사람과 2) 그 프로그램을 강제적으로 열심히 사용해야 하는 사람, 이 두 종류로 분류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좀 암울한 근 미래상이기는 하지만.
소문의 심장
무라카미는 옛날에 타이 사람한테 "당신 타이인이죠. 암만 안 그런 척해도 다 안다고요."라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난 아니라니까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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