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좋아하여 태어나서 지금까지 꽤 많은 고양이를 길렀는데, 20년 이상 산 고양이는 딱 한 마리밖에 없다. 이 고양이는 올 2월에 드디어 스물한 살이 되어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중인데, 현재 내가 직접 기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9년 전 일본을 떠날 때, 당분간 고양이를 키울 수 없을 것 같아 당시 고단샤의 출판 부장이었던 도쿠시마 씨네 집에 맡기기로 하였다. 아니 실은 "전작 장편을 한 편 써 드릴 테니, 제발 이 고양이 좀 맡아 길러 주십시오."라면서 억지로 떠맡기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그때 '고양이와 교환'하여 쓴 장편이, 결과적으로 내게는 최대의 베스트셀러가 된 <노르웨이의 숲>이었으니, 이 고양이를 '복고양이'라 불러도 지장이 없지 않을까 싶다. 도쿠시마 씨는 현재 상무이사라는 높은 직책을 맡고 있다. 그리고 마쓰도에 있는 자택에서 1주일에 사흘만 중역용 제트 헬리콥터를 타고 오토와에 있는 고단샤로 통근하고 있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지금도 매일 아침 만원 전철을 타고 통근한다고 한다. 힘내세요.
이 고양이의 이름은 '뮤즈'다. 우리 마누라가 그 당시, 즉 지금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21년 전에 와타나베 마사코의 <유리의 성>이란 소녀만화에 빠져 있어서 그 등장인물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런 유치한 이름 난 싫어"라면서 꽤나 저항했지만, 중과부적으로(그래 봐야 일대 일인데, 훌쩍훌쩍) 밀려 결국 '뮤즈'로 정착하고 말았다. 과연 <유리의 성>에 등장하는 뮤즈처럼 예쁘장하고 스마트한 생후 반년 된 샴종 암고양이었지만, 그래도 그렇죠.…… 나는 21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이름을 불만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 문제로 <유리의 성>이란 만화, 재미있더군요. <아라베스크>도 좋았지만.
각설하고.
나는 그 뮤즈를 만나기 위하여 가끔 도쿠시마씨 댁을 찾는다. 스물한 살이라, 인간으로 치면 백 살 이상이니 몸이 노쇠할 대로 노쇠하였다. 체중도 팍 줄어들고 말았다. 옛날의 절반 정도나 될까 의문스럽다. 팔다리도 옛날처럼 성치 않다. 지금은 정원으로 나가는 일도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데 털은 깜짝 놀랄 만큼 아직도 윤기가 졸졸 흐르고, 눈도 이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무사하고 식욕도 있었다. 가지고 간 양갱을 주었더니 달려들어 날름 먹어치워 버렸다. 하지만 단 음식을 먹게 된 것은 도쿠시마씨네로 와서부터의 일이다. 구운 김은 아주 좋아했지만.
나는 이 고양이를 고쿠분지에 살 때 기르게 되었다. 그 무렵 조그만 가게를 경영하고 있었다. 나는 이십 대 중반이었고, 일하는 틈틈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다. 내가 혼자 책을 읽고 있으면, 고양이가 다가와 방해하곤 한 기억이 난다. 뮤즈는 좀 색다른 고양이였다. 나와 함께 산책하기를 아주 좋아하였다. 내가 산책하러 나가면, 마치 개처럼 뒤를 졸졸 따라왔다.
한 번은 히토쓰바시대학 운동장에 데리고 가 4백 미터 트랙을 같이 달린 적도 있다. 2백 미터 정도 뒤를 쫓아오더니 그 이상은 힘이 들었는지, 그 자리에 웅크리고 분풀이로 똥을 누었다. 아주 자존심이 센 데다 성격도 강한 고양이라, 화가 나면 심술궂게 똥을 누는 버릇이 있었다(너무하죠). 그러니까 21년 전 히토쓰바시대학의 운동장 한가운데 똑 떨어져 있었던 똥은 우리 고양이의 똥이다. 죄송합니다.
그 이후 나는 센다가야로 가게를 옮기고, 거기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일이 끝난 다음 한밤에 고양이를 무릎에 앉혀 놓고, 맥주를 찔끔찔끔 마시면서 첫 소설을 썼을 때의 일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고양이는 내가 소설을 쓰는 게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툭하면 책상 위로 올라가 원고지를 유린하였다. 만약 그때 내가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소설가가 되지 않았다면 8년 가까이나 외국에 나가 생활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 내내 일본에서 가게를 꾸려 나가면서 뮤즈와 함께 느긋하고 한가롭게 살지 않았을까. 지금의 나로서는 그런 가설을 세우기가 어렵지만, 뭐 그랬다면 그 나름으로 나는 지금이나 거의 다름없이 마이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적당히 살았을 것이란 기분이 든다. 주변의 이런저런 일이랑 어찌 되었든, 내 자신은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늙은 뮤즈를 안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였다.
어째 먼 옛날, 사연이 있어 헤어진 여자와 우연히 만난 듯한 묘한 기분이 드는 평화로운 2월의 오후였다. 물론 고양이가 거기까지 알 리는 없겠지만, 주인의 얼굴 따위는 금방 잊어버리는 것이 고양이란 동물이며, 그것이 또한 고양이의 좋은 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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