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애지중지 길러진 아름다운 소녀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응석받이가 되었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데 천재적인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젊었기 때문에 - 21살이나 22살 이었다 - 그녀의 악취미를 몹시 불쾌하게 여겼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녀는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힘으로써 자기 자신도 똑같이 상처를 받았음에 틀림없다. 워낙 오냐오냐 하고 길러졌기 때문에 기분 내키는 대로 표현하는 것 이외에는 자신을 통제하는 방법을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녀보다 훨씬 강한 누군가가 그녀의 몸 어딘가를 요령 있게 갈라서 그 에고를 내좇았다면 그녀도 훨씬 편안했을 것이다. 그녀도 역시 구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주위에는 그녀보다 강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나 역시 그 때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단지 불쾌할 뿐이었다.
그녀가 어떤 이유로 - 이유라고는 전혀 없었던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겠다고 결심하면 천만대군을 이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녀는 불쌍한 희생자를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능수능란하게 막다른 골목까지 몰고 가서 냅다 벽에 몰아 부치고, 마치 잘 익은 감자를 주걱으로 으깨는 것처럼 무지막지하게 상대를 난도질했다. 얼마나 솜씨가 좋은지 나중에는 얇은 종이 정도의 잔해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것은 대단한 재능이었다.
그녀는 결코 논리적이지 않았지만, 상대의 감정적인 약점을 순간적으로 포착했다. 그리고 마치 야생동물처럼 몸을 숨기고 좋은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타이밍을 포착해서 상대의 연약한 숨통을 나꿔채 갈기갈기 찢었다. 대부분의 경우 그녀가 말하는 것은 제멋대로의 억지였고, 요령 있는 속임수였다.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 후 숨을 돌리고 천천히 생각해 보면 당한 사람이나 주위에서 보고 있던 우리도 어째서 그렇게 맥없이 승부가 정해져 버렸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한마디로 그 당시는 그녀에게 약점을 꽉 잡혀 꼼짝달싹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복싱에서 흔히 말하는 '발이 묶였다'와 같은 상태이다. 결국에는 매트에 쓰러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나는 그녀의 표적이 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그런 광경을 수없이 목격했다. 그것은 논쟁도 아니고, 말다툼도 아니고, 싸움도 아니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피비린내 나는 정신적 학살이었다.
나는 그녀의 못된 성미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었지만, 그녀 주위의 남자들 대부분은 그 같은 이유로 그녀를 높이 평가했다. '그 애는 머리가 좋고, 재능이 있으니까.' 그것이 그녀의 못된 성미, 고약한 성질을 부채질했다. 이른바 악순환인 셈이다. 출구가 없다.
같은 써클에 있는 다른 여자들은 그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했는지는 유감스럽게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써클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했기 때문에 여자들의 속마음을 끌어 낼 정도로 친한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3개 대학의 스키 동호회였는데, 각 대학 스키 써클 회원 가운데 원하는 사람만 가입한 조직이었다. 그들은 겨울 방학에는 장기 스키 합숙을 하고, 그 이외의 시즌에는 트레이닝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해수욕장으로 수영을 하러 가곤 했다. 인원수는 전부 12,3명이었는데, 모두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깔끔해서 느낌이 좋았으며, 친절했다. 하지만 지금은 특별히 생각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머릿속에서 마치 녹은 초콜릿처럼 서로 뒤섞여 있어 하나의 이미지로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따로 떠올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물론 그녀만은 예외지만.
나는 스키에 전혀 흥미가 없었지만 고등학교 친구가 그 그룹에 속해 있었고, 내가 어떤 사정에 의해서 그 친구의 아파트에서 한 달 정도 살면서 자연스럽게 그룹 멤버를 알게 되었다. 내가 마작 점수를 계산할 수 있었다는 것도 그들이 나를 받아들인 이유 중 하나였다. 어쨌든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그들은 나에게 매우 친절했고, 스키 여행을 떠날 때는 나를 불러 줄 정도였다. 나는 팔굽혀펴기 이외에는 흥미가 없다며 그 제의를 거절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나 싶다. 그들은 정말로 순수하고 친절했다. 실제로 스키보다 팔굽혀펴기를 좋아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와 같이 살던 친구는 그녀에게 홀딱 빠져 있었다. 확실히 그녀는 많은 남자가 빠질 만한 여자였다. 열을 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은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다. 세 가지로 압축하면 그녀의 특징을 분명하게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1) 총명하다, (2) 활동적이다, (3) 요염하다.
그녀는 작고 말랐지만 균형 잡힌 몸매를 갖고 있었고, 온 몸에 생동감이 흘러넘쳤다. 눈은 항상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입술은 일직선으로 다물어져 있어서 고집이 세게 보였다. 그리고 언제나 조금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가끔 살포시 미소를 지으면 그녀 주위의 공기는 마치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부드럽게 물결쳤다.
나는 그녀의 인격에 대해서는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그녀의 미소만은 좋아했다. 굉장히 가슴 설레는 미소였다. 아주 오래 전 고등학교 때 영어교과서에서 '봄에 붙들려'(arrested in spring time)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녀의 미소가 그랬다. 도대체 누가 따스한 봄날의 양지를 비판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애인이 없었기 때문에 써클 멤버 가운데 세 명의 남자가 - 내 친구도 당연히 그 중 한 사람이었지만 - 그녀에게 열을 올렸다. 그녀는 특별히 마음에 두는 상대는 없었지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솜씨 좋게 세 명의 남자를 다루고 있었다. 세 사람은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면서 꽤 즐겁게 지냈다. 나는 그런 모습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지만 결국 그것은 타인의 문제로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내가 일일이 참견할 일이 아니다.
나는 처음부터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버릇없는 사람에 대해 민감했기 때문에 그녀가 어느 정도 응석받이로 자랐는지 손바닥을 들여다보듯이 훤히 알 수 있었다. 응석을 부리고, 칭찬만 듣고, 선물을 한 아름 받는 그녀는 어른들의 각별한 보호 아래 성장했음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응석을 받아주거나 용돈을 주는 정도는 아이가 응석받이로 자라는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를 지킬 책임을 누가 떠맡는가 하는 데 있다. 그 책임을 외면하거나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도 나무라기는커녕 마냥 감싸주기만 하면, 그 아이는 확실히 제멋대로 된다. 마치 여름 오후의 모래사장에서 옷을 벗고 강한 자외선을 쬐는 것처럼 그들의 연약하고 갓 태어난 에고는 돌이킬 수 없이 손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응석을 받아주거나 용돈을 풍족하게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정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와 두, 세 마디 말을 해보고, 또 그녀의 행동을 보고 나서 솔직히 나는 아주 질려 버렸다. 그 원인이 그녀 이외의 누군가에게 있다 하더라도 그녀는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간의 에고는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는 기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녀는 뭔가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 그녀를 피하지는 않았지만, 필요 이상 그녀에게 가까이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그녀는 이시가와현 근처에서 에도시대부터 내려온 유서 깊은 유명한 고급 여관집 딸이라는 것이다. 오빠가 있었지만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서 외동딸처럼 귀하게 길러졌다. 성적도 최상위였고, 게다가 예뻤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항상 선생님에게 귀여움을 독차지 했고, 친구들한테는 좀 특별난 존재였던 것 같다. 그녀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 나는 딱 한 번 그녀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 적이 있다. 그다지 음악에 정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주의 감정적인 깊이 같은 것은 판단하기 어려웠지만, 음의 터치는 놀랄 만큼 예민했고, 적어도 음표는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당연히 그녀가 음악 대학에 들어가서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쉽게 피아노를 버리고 미술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패션 디자인과 염색 공부를 시작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미지의 분야였지만 어릴 때부터 옛날 옷에 둘러싸여 자란 환경 덕에 경험적인 감각을 발휘해 눈에 띌 정도로 재능을 펼쳤다.
그녀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평균치 이상으로 해치우는 타입이었다. 스키나 요트나 수영이나 무엇을 해도 그녀는 능숙했다. 그래서 누구도 그녀의 결점을 지적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녀의 관용적이지 못한 면은 예술가적인 기질로 인정되었고, 히스테릭한 성향은 보통 사람과 다른 예민한 감수성으로 받아 들여졌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여왕이 되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세금 대책의 일환으로 갖고 있는 아담한 맨션에 살며 기분이 내키면 피아노를 쳤고, 옷장에는 새 옷이 가득 걸려 있었다. 그녀가 손을 내밀기만 하면 -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 어떤 일이든 대개 친절한 남자 친구들이 매듭지어 주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장래에 전문 분야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당시 그녀의 걸음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1970년인가 71년인가 하여튼 그 무렵의 일이다.
나는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딱 한 번 그녀를 안았던 적이 있다. 안았다고는 해도 섹스를 했던 것은 아니고 단지 물리적으로 안았을 뿐이다. 몹시 취해 여럿이 뒤엉켜 잠을 잤는데, 눈을 떠보니 우연히 그녀가 내 옆에 있었던 것이다.
뭐, 흔한 일이지만.
하지만 나는 그 때의 일을 지금도 신기할 정도로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내가 잠을 깬 것은 밤 3시로 얼핏 옆을 보니까 그녀는 나와 같은 담요를 덮고 기분 좋게 새근거리며 자고 있었다. 여럿이 뒤섞여 자기에 좋은 6월 초순이었지만, 이불도 깔지 않고 맨 바닥에서 쪼그리고 잤기 때문에 온 몸이 쑤셨다. 게다가 그녀는 내 왼팔을 베개 대신 베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목이 미칠 정도로 말랐지만 머리를 치울 수도 없었고, 가만히 머리를 들어 올려 팔을 뺄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잠을 깨면 이상한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결국 잠시 생각하고 나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잠깐 동안 상황 변화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 사이에 그녀가 몸을 뒤척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면 나는 재빠르게 팔을 빼고 물을 마시러 가면 된다. 하지만 그녀는 놀랍게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규칙적인 호흡을 반복할 뿐이었다. 내 샤쓰의 소매는 그녀의 숨결 때문에 따뜻하게 젖었고, 간지러우면서도 묘한 느낌이 들었다.
15분이나 20분 정도 그대로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물을 마시는 것은 단념했다. 갈증은 견딜 수 없었지만 지금 물을 마시지 않는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다. 나는 왼팔이 움직이지 않게 주의하면서 고개를 돌려 머리맡에 굴러다니는 누군가의 담배와 라이터를 찾아내서 오른손을 뻗어 끌어당겼다. 담배를 피우면 더욱 목이 마르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한 가치 빼어 물었다.
하지만 실제로 담배를 다 피우고 그 꽁초를 손 가까이에 있는 빈 맥주병에 집어넣고 나자 이상하게 갈증은 담배를 피우기 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그래서 나는 한숨을 쉬고 눈을 감고 다시 한 번 잠을 자려고 노력했다.
아파트 근처에 고속도로가 있어서 심야 트럭의 짓눌리는 듯 한 편편한 타이어 소리가 얇은 유리창 저쪽에서 방 안의 공기를 희미하게 흔들어 놓고, 몇몇 남녀의 숨소리와 가볍게 코고는 소리가 거기에 뒤섞였다. 그리고 한밤중에 다른 사람의 방에서 잠을 깬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나도 <도대체 이런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자관계가 묘하게 꼬여 하숙집에서 쫓겨나 친구 아파트에 굴러 들어오게 되었고, 스키도 타지 않는 주제에 스키 동료 써클에 끼여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에게 팔베개를 해 주게 되고, 생각할수록 우울해졌다. 이렇게 허송세월할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런 전망이 없었다.
자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눈을 떠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가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녀는 내 왼팔을 해방시켜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가슴으로 파고들듯이 내게 몸을 밀착시켰다. 그녀의 귀가 내 코앞에 닿았다. 엷은 향수와 희미한 땀 냄새가 났다.
가볍게 접혀진 그녀의 다리가 내 허벅지 위에 걸쳐졌다. 숨소리는 아까처럼 평화롭고 규칙적이었다. 따스한 숨결이 내 목에 닿았고, 옆구리 근처에서 그녀의 부드러운 젖가슴이 숨결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모직으로 만든 꽉 끼는 셔츠에 플레어스커트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몸매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묘한 상황이었다. 그것이 다른 경우였다면, 즉 상대가 다른 여자였다면 나도 그런 상황을 충분히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그녀였기 때문에 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난감하지 그지없었다. 아무리 해도 내가 처해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탈출할 방법이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게다가 더욱 낮 뜨거운 것은 나의 페니스가 그녀의 다리에 착 달라붙은 채로 딱딱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같은 자세로 자고 있었지만, 내 페니스의 형태 변화를 확실히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조금 뒤에, 무의식을 가장해 살짝 팔을 뻗어 내 등을 휘감고 몸의 방향을 조금 바꾸었다. 덕분에 그녀의 젖가슴은 더욱 내 가슴에 밀착되었고, 내 페니스는 그녀의 부드러운 하복부에 눌려졌다. 상황은 훨씬 나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그런 상황에 내몰리게 된 것에 대해 그녀에게 화가 났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여자를 안았다는 행위 속에서 어떤 종류의 삶의 뿌듯함이 느껴졌고, 그러한 감정이 내 몸을 완전히 에워쌌다. 나는 이미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 그녀도 나의 그러한 상태를 분명히 느끼고 있고, 나는 그 때문에 또 화가 났지만, 팽창한 페니스라는 묘한 불균형 앞에서 화를 낸다고 해도 이미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나는 단념하고 오른팔을 그녀의 등에 돌려 감쌌다. 그래서 우리는 꼭 껴안은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둘 다 잠든 흉내를 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젖가슴을 가슴으로 느끼고, 그녀는 나의 딱딱한 페니스의 감촉을 배꼽 아래에서 느끼면서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녀의 작은 귀와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바라보고, 그녀는 나의 목을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잠든 척 하면서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스커트 속에 손을 집어넣는 것을 생각하고, 그녀는 내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 따뜻하고 매끈매끈한 페니스를 만지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서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너무나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매우 기묘한 감각이었다. 그녀는 나의 페니스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나의 페니스는 마치 나의 페니스가 아닌 누군가 다른 남자의 페니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쨌든 나의 페니스였다.
나는 그녀의 스커트 속에 감춰진 조그만 팬티와 그 안에 둘러싸인 따뜻한 질을 생각했다. 그녀도 내가 생각하는 그녀의 질에 대해서 내가 나의 페니스에 대해 느낀 것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여자는 질에 대해서 우리가 페니스에 대해서 느끼는 것처럼 아주 다른 느낌을 가질지도 모른다.
몹시 망설인 끝에 나는 그녀의 스커트 속에 손을 집어넣지 않고, 그녀 또한 내 바지의 지퍼를 내리지 않았다. 그것을 억제하는 것이 그때는 매우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지만, 결국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 이상으로 상황을 밀고 나갔다면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감정의 미로에 빠지게 됐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을 분명히 그녀도 느꼈음이 틀림없다.
우리는 같은 자세로 30분 정도 서로 껴안고 있다가, 아침 햇살이 방 구석구석까지 또렷이 비출 무렵 몸을 떼고 잠을 잤다. 몸을 떼고도 내 주위에는 그녀의 살내음이 아련히 감돌고 있었다.
그 이후 나는 한 번도 그녀를 만난 적이 없다. 나는 교외에 있는 아파트를 찾아 이사했고, 그 묘한 써클과도 멀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묘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그들은 한 번도 자신들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내가 이상하게 비쳐졌을 것이다.
나를 잠시 동안 식객으로 받아준 친절한 고등학교 친구와는 그 후 몇 번 만났고, 그 때는 당연히 그녀의 이야기도 꺼냈을 텐데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변함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 친구가 관서 지방으로 돌아가 버려 더 이상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2, 13년이 지났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도 나이를 먹었다.
나이를 먹는 좋은 점 중의 하나는 호기심을 갖는 대상의 범위가 한정된다는 것이고, 나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특별한 부류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옛날에 비해 훨씬 줄어 들었다. 가끔 예전에 만난 사람들을 기억해 내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마치 기억의 끝에 떠오르는 단편적인 풍경처럼 나에게 더 이상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별로 그립지도 않고, 별로 불쾌하지도 않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우연하게 그녀의 남편이라는 인물을 만나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나와 같은 나이로 레코드 회사의 연출가였다. 키가 크고 차분하며, 느낌이 꽤 좋은 사람이었다. 옆머리가 마치 경기장의 잔디처럼 깨끗하게 일직선으로 잘 다듬어져 있었다. 우리는 일 관계 때문에 만났기 때문에 그가 누구의 남편이라는 건 전혀 알 수도 없었다. 필요한 말이 끝나자 그가 말했다.
"아내가 전에 무라카미 씨와 알고 지내던 사이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옛날 이름을 말했다. 그 이름과 그녀의 존재가 잠시 연결되지 않았다. 대학 이름과 피아노에 대해서 듣고 나서야 겨우 그녀인 것을 알았다.
"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녀의 그 후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잡지에 실린 무라카미 씨의 사진을 보고는 바로 알아본 모양입니다. 옛날 생각이 난다고 하더군요."
'나도 그 때가 그립군요."
그러나 나는 그녀가 나를 기억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실제로 그립다기 보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녀와 내가 만난 것은 아주 짧았고, 직접 말을 해 본 적도 거의 없었다. 생각지 못한 곳에 나의 옛 모습이 남아 있다는 것이 어쩐지 이상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그녀의 부드러운 젖가슴과 머리카락의 냄새와 발기한 페니스를 떠올렸다.
"매력적인 여자였죠."
나는 회상하듯 말했다.
"건강합니까?"
"예, 그저 그만합니다."
그는 말을 고르듯이 천천히 말했다.
"어디 안 좋은 데라도 있습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아니요. 별로 아프지는 않습니다만, 그다지 건강하다고 할 수 없는 때가 몇 년 있었지요."
도대체 어디까지 질문을 해야 좋을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후 그녀가 어떻게 지냈는지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제가 한 말만으로는 뭐가 뭔지 종잡을 수 없겠죠?"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띄우면서 말했다.
'순서대로 정리해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기도 하고..... 정확히 말해서 그녀는 상당히 건강해졌습니다. 적어도 이전보다는 훨씬 건강합니다."
나는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 잠시 망설이다가 역시 물어보기로 했다.
"이렇게 묻는 것이 실례일지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말씀을 듣고 있어도 잘 이해가 안 돼서요."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빨간색 말보로를 꺼내 불을 붙여 피웠다. 지독한 골초인 듯 오른손 인지와 중지 손톱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괜찮습니다. 별로 감추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까지 상태가 나쁜 것도 아닙니다. 일종의 사고 같은 것입니다. 저어,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하죠. 그게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다방을 나와 황혼의 거리를 잠시 걷다가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작은 바에 들어갔다. 자주 가는 단골 가게인 듯, 그는 카운터에 앉자마자 익숙한 말투로 대형 그라스에 든 스카치위스키 더블과 광천수를 주문했다. 나는 맥주를 주문했다. 그는 위스키에 광천수를 조금 따라 붓고 가볍게 휘저어 한 입에 절반 정도를 마셨다. 나는 맥주에 조금 입을 댔을 뿐, 컵 안의 거품을 바라보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는 위스키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 속에 자리 잡는 것을 확인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혼한 지 10년 정도 됩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스키장입니다. 저는 지금 근무하는 회사에 들어온 지 2년째였고,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카사카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로 피아노를 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결혼했습니다. 결혼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습니다. 양쪽 집안에서도 우리 결혼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고 저는 그녀에게 빠졌습니다. 평범함 이야기죠."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는 맥주에 다시 입을 댔다.
'저는 그런 평범한 결혼 생활에 충분히 만족했습니다. 결혼 전에 그녀에게 애인이 몇 명 있었던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주 현실적인 인간이어서 만약 과거에 좋지 못한 일이 있었다 해도 현실적으로 그것이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다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본질적으로 평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도, 결혼 생활도, 가정도, 평범한 재미가 있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저와 생각이 달랐죠. 그래서 여러 가지 일이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는 그녀의 기분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직 젊고 아름답고 생동감이 흘러 넘쳤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녀는 습관적으로 다양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매우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위스키를 한 잔 더 주문했다. 나는 아직 맥주가 절반 정도 남아 있었다.
"결혼한 지 3년 만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여자 아이입니다. 매우 귀여운 여자 아이였습니다. 살아 있으면 벌써 국민학생이죠."
"죽었습니까?"
"예.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죽었죠. 흔히 있는 사고였습니다. 아이가 자다가 몸을 뒤척일 때 이불이 얼굴에 덮여 숨이 막혀 죽었습니다.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단순한 사고입니다. 운이 좋았으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결국은 운이 나빴습니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녀가 아기를 혼자 내버려두고 물건을 사러 나갔던 것을 탓하기도 하고, 그녀 자신도 그 일로 자신을 학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운명입니다. 저와 당신이 같은 상황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다고 해도 사고는 비슷한 확률로 일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아마 그렇겠지요."
나는 인정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매우 현실적인 인간입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서도 어릴 때부터 충분히 익숙해져 있습니다. 저의 집안은 크고 작은 사고가 많았죠. 따라서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도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부모에게 있어 아이를 잃는 것만큼 큰 슬픔은 없습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모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뒤에 남겨진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쭉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 기분이 아니라 그녀의 기분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런 감정적인 훈련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에 대해서는 잘 아시겠죠?"
"예"
나는 간단히 말했다.
"죽음은 매우 특수한 사건입니다. 저는 가끔 삶은 상당히 많은 부분을 다른 누군가의 죽음이 가져다주는 에너지에 의해, 아니면 상실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에 대해 익숙하지 못했죠. 요컨대......"
그는 카운터 위에서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그녀는 자기만을 생각하는데 익숙했던 거죠. 그 결과 다른 사람의 빈자리가 가져다주는 아픔을 그녀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는 웃으며 나의 얼굴을 보았다.
"결국 그녀는 황폐화 되어 있었던 겁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는, 좋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군요. 어쨌든 저는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그녀가 그녀 자신이나 저나 주위 사람들에게 두루 상처를 입히더라도 저는 그녀를 떠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부부란 그런 거죠. 결구 그 후 1년 정도 끝이 없는 싸움이 계속 되었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1년이었습니다. 감정도 다 소모됐고, 장래에 대한 희망도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그 1년을 극복했습니다. 우리는 아기의 존재와 관련된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새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는 두 잔째 위스키를 다 마시고 기분 좋은 듯 심호흡을 했다.
"지금 아내를 만나더라도 잘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그는 정면에 있는 벽을 가만히 노려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지금의 아내를 더 좋아합니다."
"아이를 다시 낳을 생각은 없습니까?"
나는 잠시 뒤에 물었다.
"아마 어려울 거예요."
"다시 갖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아내는 그런 상태가 아닙니다. 저야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바텐더가 그에게 위스키를 권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아내에게 전화해 주지 않겠습니까? 그녀에게는 그런 자극이 필요하거든요. 인생이란 기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는 명함 뒷면에 볼펜으로 전화번호를 써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시외 국번을 보니 놀랍게도 그들은 나와 같은 지역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계산을 하고, 우리는 지하철역에서 헤어졌다. 그는 남은 일을 끝내기 위해서 회사로 돌아가고, 나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직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있다. 그녀의 숨결과 온기와 부드러운 젖가슴의 감촉이 아직도 내 몸에 남아 있어서, 나는 14년 전의 그날 밤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망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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