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410

스파게티 공장의 비밀

그들은 나의 서재를 스파게티 공장이라 부른다. '그들'이란 양사나이와 아리따운 쌍둥이 소녀를 일컫는다. 스파게티 공장이란 말에 대단한 의미는 없다. 끓인 물의 온도를 조절하거나, 소금을 뿌리거나, 타이머를 작동시키거나, 그런 정도이다. 내가 원고를 쓰고 있노라니, 양사나이가 두 귀를 쫑긋쫑긋 거리며 다가온다. "있잖아, 우린 아무래도 그 문장이 마음에 안 들어." "그런가?" 하고 나는 말한다. "어쩐지 주제넘은 것 같고, 유익한 게 없잖아." "흐음." 하고 나는 말한다. 정말이지 난 고생하며 쓴 문장이다. "소금을 좀 많이 뿌린 게지." 하고 쌍둥이 중 208쪽이 말한다. "새로 만들기." 하고 209가 말한다. "우리도 거들께." 라고 양사나이가 말한다. "아니 됐어." 양사나이가 도와주면 무엇이든..

캥거루 통신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휴일이라서, 아침나절에 근처 동물원으로 캥거루 구경을 다녀왔습니다. 별로 큰 동물원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래도 고릴라를 비롯해서 코끼리까지 대강의 동물은 그럭저럭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라마라든가 개미핥기의 팬이라고 한다면, 아마 그 동물원에 가지 않는 편이 좋을 거예요. 거기엔 라마도 개미핥기도 없답니다. 임팔라도 하이에나도 없답니다. 표범조차 없답니다. 그 대신 캥거루가 네 마리 있습니다. 한 마리는 새끼인데, 태어난 지 2개월밖에 안되었답니다. 그리고 수놈 한 마리에 암놈 두 마리. 도대체 어떤 가족 구성으로 된 것인지, 나로서는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캥거루를 볼 때마다, 도대체 캥거루로 있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하고 항상 궁금해집니다. 그들은 도대..

거울 속의 저녁노을

우리는(우리라 함은 물론 나와 개를 말한다.) 아이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서 오두막을 나왔다. 내가 베개 맡에 앉아서 1963년도 판 조선(造船) 연감을 소리 내어 읽고 있는 사이에(그 외에 오두막 안에는 책이라고는 없었다) 아이들은 금세 잠에 빠져 들어 나직이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총 배수량 23652톤, 전체 높이 37.63미터......' 따위 문자를 읊고 있으면 제 아무리 코끼리 떼라 해도 잠들어 버린다. "저 주인어른." 하고 개가 말했다. "산책이라도 하러 나가요. 오늘 밤은 달님이 무척 아름다워요." "좋고말고." 이처럼 나는 말을 할 줄 아는 개와 생활하고 있다. 물론 말을 할 줄 아는 개는 극히 드물다. 말을 할 줄 아는 개와 살기 전에는 나는 마누라와 함께 살았다. 작년 봄, 시내..

32살의 데이트리퍼

내가 32이고, 그녀는 18이고.. 이러면 아무래도 진부한 표현이 될 수밖에 없다. 난 아직 32이고, 그녀는 벌써 18....아,,그래, 좋아,,, 이거다. 우린 그저 그런 단지 친구 사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내겐 아내가 있고, 그녀에겐 남자 친구가 여섯 명이나 있다. 그녀는 주말마다 6명의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한달에 한번씩 일요일엔 나와 데이트를 한다. 그 외 일요일엔 텔레비전을 본다. 텔레비전을 볼 때의 그녀는 너무 귀엽다. 그녀는 1963년생인데, 그해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었다. 그리고 그 해에 난 처음으로 여자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유행하던 노래는 클리프 리처드의 '썸머 홀리데이'였던가? 뭐...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무튼 그 해 그녀는 태어났다. 그해에..

겨울 박물관으로서의 포르노지

섹스, 성행위, 성교, 교합, 그 외 뭐라고 해도 좋지만, 그런 말이나 행위, 현상에서 내가 상상 하는 것은 언제나 겨울 박물관이다. 겨울의 박물관...... 물론 섹스에서 겨울 박물관에 이르기까지에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몇 번인가 지하철을 갈아타고, 빌딩의 지하도를 빠져 나가거나, 어딘 가에서 계절을 지나 보내거나, 뭐 그런 수고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런 귀찮음은 처음 시작할 때 몇 번뿐이고, 그런 의식의 회로에 한 번 익숙해지면 누구라도 '앗' 하는 순간에 겨울 박물관에 다다른다.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 그렇다. 섹스가 거리의 화제가 되고, 교접의 물결이 어둠을 채울 때 나는 언제나 겨울 박물관의 현관에 서 있다. 나는 모자를 걸고, 코트를 걸고, 장갑을 책상 구석에 겹쳐놓고, 그리고 목도리를 ..

굿 뉴스

안녕하세요, 여러분. 열시 뉴스입니다. 오늘 밤에는 특별 기획으로 아주 좋은 뉴스만을 골라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나쁜 뉴스는 없습니다. 안심하여 주십시오. 마음이 따뜻해질 훈훈한 좋은 뉴스만 전해 드리겠습니다. * 멕시코의 대형 탱커 '쉐라 마들레 호'가 오늘 아침 새벽, 치바 앞바다에서 원인 불명의 돌발적인 폭발로 침몰했습니다. 그러나 밤까지 승무원 120명 중 35명이 기적적으로 구출되었습니다. 구출된 승무원들은 저마다 해상 보안청의 훌륭한 솜씨에 대해 감탄의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다행이죠? '버리는 신이 있으면 줍는 신도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야기일 겁니다. * 지난 주 금요일에 도쿄도 분쿄구 오토와 2가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도쿠시마 후에(72세)씨의 귓불을 가위로 자르고 도망쳤던..

엘리트

내가 어제 선을 본 상대는 엘리트였다. 물론 최종 학력은 '동경대학 졸업'이었다. 본인은 '변변치 않은 학교를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끝에 은행나무 잎사귀 뱃지를 가지고 만지작거리고 있어서 알게 되었다. 우리들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앉아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다. 날씨가 조금 추워서 어깨를 움츠리자 그는 자신의 코트를 벗어서 나에게 걸쳐줬다. 옷 속에는 '바바리'마크가 선명히 찍혀져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신일본 제철의 간부였다. 이 사실을 내 직감으로 알아냈다. '무척 머리가 좋군요.'라며 그는 웃었다. 그도 감각이 뛰어난 편이었다. 어떻게 내가 미용사인지를 잘 알아맞혔던 것이다. 그는 엘리트라고 내세우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동백나무 집에서 "저어, 데이트 한번 해보지 않겠어요?" 싹싹한 말..

잊혀진 왕국

잊혀진 왕국 뒤편에는 맑은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너무나 깨끗해서 많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 수초가 자라고 있어서 물고기들은 그것을 먹으며 살았다. 물고기들은 왕국이 사라지건 말건 상관없었다. 그건 그렇다. 물고기들에겐 왕국이니 공화국이나 하는 건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다. 투표 같은 것은 하지 않았고, 세금 따위도 납부하지 않았다. "그런 건 우리와 관계없는 일이야." 물고기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냇물에서 발을 씻었다. 냇물은 차가워서 잠깐 발을 담그고 있어도 금세 빨개졌다. 냇가에는 잊혀진 왕국의 성벽과 첨탑이 보였다. 첨탑에는 두 가지 색으로 된 깃발이 게양된 채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냇가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그 깃발을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저것 봐. 저건 잊혀진 왕국..

커피

건물 정면에 '커-피-'라는 거대한 간판이 걸려 있었다. 이런 간판이 없었다면 시빗거리도 없었을 것이다. 하얀 바탕 위에 그저 검은 글씨로 '커-피-'라는 글씨뿐이었다. 게다가 글씨는 하늘 위로 치우쳐 있었다. 그래서 간판은 마치 하늘을 향해 싸우려는 도전장처럼 보였다. 왜 이런 간판을 붙였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행인이 쳐다보기에 간판의 위치가 너무 높아서 그런지 모른다. 그래서 글자만은 크게 써놨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 간판을 발견하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가끔 어쩌다 아무 의미도 없이 차창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곤 했었을 때였다. 우리들은 먼 거리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이라 무척 피곤에 지쳐 있었다. 운전대 핸들을 잡은 친구는 이십 초마다 하품을 했다. 그의 여자친구는 그의 옆에 앉아..

코카콜라

코카콜라를 발명한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코카콜라 회사의 선전을 믿으면 된다. 그런데 코카콜라를 발명한 동물에 대해서는 막막하다. 하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 내 연구가 현재 가장 앞서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보르네오 섬의 오지 깊숙한 곳에 있는 밀림 지대는 독자 여러분들도 잘 알겠지만 '코카콜라 나무'의 분포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액체가 흘러나오는 나무'를 벌채하는 건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금기로 여기고 있다. 밀림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보면 '코카콜라 마개'를 채집할 수 있는 암산이 나온다. 교양이 풍부한 독자들께 일반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다소 신경이 쓰이지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코카콜라 마개'는 보통 땅 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웅덩이나 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