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휴일이라서, 아침나절에 근처 동물원으로 캥거루 구경을 다녀왔습니다. 별로 큰 동물원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래도 고릴라를 비롯해서 코끼리까지 대강의 동물은 그럭저럭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라마라든가 개미핥기의 팬이라고 한다면, 아마 그 동물원에 가지 않는 편이 좋을 거예요. 거기엔 라마도 개미핥기도 없답니다. 임팔라도 하이에나도 없답니다. 표범조차 없답니다. 그 대신 캥거루가 네 마리 있습니다.
한 마리는 새끼인데, 태어난 지 2개월밖에 안되었답니다. 그리고 수놈 한 마리에 암놈 두 마리.
도대체 어떤 가족 구성으로 된 것인지, 나로서는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캥거루를 볼 때마다, 도대체 캥거루로 있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하고 항상 궁금해집니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멋대가리 없는 장소를, 저렇게 야릇한 꼴을 하고 뛰어다니는 것일까요. 그리고 무엇 때문에, 부메랑인지 뭔지 하는 볼품없는 막대기에 의해 간단히 죽고 말까요?
하지만 글쎄, 그것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대수로운 문제는 아니지요. 적어도 이야기의 진짜 줄거리와는 관계없는 일입니다.
아무튼 캥거루를 바라보고 있는 중에,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진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어째서 캥거루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지, 캥거루와 나 사이에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지 하고요.
하지만 부디 그런 일에는 신경 쓰지 말아 주십시오. 캥거루는 캥거루고, 당신은 당신입니다. 캥거루와 당신 사이에, 시선을 끌 만한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컨대 이런 얘기지요.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일과 캥거루 사이에는 36개의 미묘한 노정(路程)이 있어, 그것을 순서에 맞게 하나하나 더듬다 보니,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것뿐입니다.
그 노정을 일일이 설명해 봤자, 당신은 틀림없이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우선 나만 해도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해요. 글쎄 36개의 노정이라니까요!
그 중 한 가지만 순서가 틀렸어도, 나는 당신에게 이런 편지를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나는 문득 마음 내키는 대로 남극해에서 향유고래의 등에 올라타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근처 담배 가게에 불을 질렀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이 36개 우연의 축적이 인도하는 바에 따라, 나는 이처럼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먼저 자기소개부터 시작합시다.
나는 스물여섯 살로, 백화점 상품 관리과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 당신도 쉽게 상상하리라 생각합니다만 - 지극히 하찮은 일이지요.
우선 구매과에서 구매한다고 결정한 상품에 문제가 없는지 어떤지를 조사합니다. 이것은 구매자와 업자의 유착을 막기 위한 작업입니다만, 그것이 당신이 상상하는 것만큼 엄격한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백화점에는 손톱깎이에서 모터보트에 이르기까지, 온갖 상품들이 나날이 크게 변모하고 있어, 그런 상품들을 일일이 테스트하다가는 하루가 64시간이고 우리들의 손이 8개 있다 해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지요. 회사 쪽에서도 우리들에게 거기까지는 요구하지 않습니다. 구두 버클을 슬쩍 잡아당겨 보거나, 과자를 몇 개 집어먹어 보거나 하는 정도가 되고 맙니다. 이것이 이른바 상품 관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주된 업무는 소비자 상담, 즉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을 접수해서 하나하나 점검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 불만을 분석하고 원인을 조사해서, 메이커에게 불만을 말하든가, 구입을 중단해 버리든가 합니다.
예를 들면, 갓 사간 스타킹이 두 켤레나 잇달아 줄이 가버렸다거나, 태엽 장치를 한 곰이 탁자에서 떨어졌을 뿐인데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거나, 목욕용 실내복을 세탁기에 넣었더니 4분의 1이나 줄어들었다거나 하는 식의 불만 말입니다.
글쎄, 당신은 모르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이 같은 불만의 사례는 실로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답니다. 내가 취급하고 있는 것은 상품 자체에 대한 불만 처리뿐인데도 굉장히 많은 불만이 날아들어 오곤 합니다. 우리 부서 인원은 네 명인데, 아침부터 밤까지 타인의 불만에 쫓겨 다닌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만이 글자 그대로 굶주린 짐승처럼 우리들의 뒤를 쫓아온다는 말입니다. 불만 가운데는 사리에 맞는 것도 있고, 또 정말 터무니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쪽이라 단정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요.
우리들은 그것을 편의상 A, B, C 세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방 한가운데에 A, B, C라는 커다란 상자 세 개가 있어, 거기에다 편지를 던져 넣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작업을 '이성(理性)의 3단계 평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직업상의 농담이지요. 신경 쓰지 마세요.
어쨌든 세 등급에 관해 설명을 하겠습니다.
(A) 사리에 맞는 불만. 우리 쪽이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경우입니다. 우리들은 과자 상자를 들고 고객의 집을 방문, 그에 상당하는 상품과 교환해 줍니다.
(B) 도의적. 상업 관습적. 법률적으로는 우리 쪽에 책임이 없는 것이지만, 백화점의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고, 또 쓸데없는 트러블을 피하기 위하여 상응한 조치를 취합니다.
(C) 명백히 고객의 책임으로, 우리 쪽은 사정을 설명하고 포기하도록 부탁합니다.
그래, 일전에 당신이 접수한 불만 신청에 대해 우리들은 신중히 검토해 보았습니다만, 결국 당신의 신청은 C등급에 분류될 성격의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그 이유로서는 - 좋습니까, 잘 들어주세요.
(1) 한번 사간 레코드는, (2) 더구나 1주일이나 지난 뒤에, (3) 영수증도 없이, 다른 상품과 교환할 수는 없습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말한 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자, 이상으로 나의 사정 설명을 끝났습니다. 당신의 불만 신청은 기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직업적 관점을 떠난다면 - 사실 나는 언제나 그 관점에서 떠나곤 합니다만 - 개인적으로는 당신의 신청, 즉 브람스의 심포니와 마라의 심포니 레코드를 뒤바꿔 사갔다는 불만 신청에 대해, 정말로 동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저 상투적인 사무통지가 아니라, 이처럼 어떤 의미에선 친밀함이 담긴 메시지를 당신에게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 1주일 동안, 나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당신에게 편지를 쓰려고 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상업 관습상 레코드를 교환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우리 쪽에 보내신 편지에는 무엇인지 제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 운운 ......"
이런 편지지요.
하지만 잘 쓸 수 없었습니다. 결코 글을 쓰는 것이 고역스러웠기 때문은 아닙니다. 스스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뭣하지만, 글쓰기에 능숙한 편이라서 편지 쓸 때 고심한 적은 별로 없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에게 편지를 쓰려고만 하면, 아무리 해도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떠오르는 말은 언제나 빗나간 것들뿐이지요. 글자의 겉모양은 옳은 듯해도,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나는 다 써서 봉투에 넣고 우표까지 붙인 편지를 몇 통이나 찢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나는 당신에게 답장을 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불완전한 편지를 보내기보다는 아무것도 내지 않는 편이 낫기 때문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완벽하지 못한 메시지란, 오식이 있는 시각표나 다름없는 것이지요. 그런 것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셈입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아침 캥거루 울타리 앞에서, 36개의 우연의 집적을 거쳐 하나의 계시를 얻었던 것입니다. 즉, '위대한 불완전성'이라는 것이지요.
'위대한 불완전성이란 무엇인가' 하고 당신이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당연히 물으시겠죠.
위대한 불완전성이란, 간단하게 말해 버리면, 누군가가 누군가를 결과적으로 용서한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캥거루를 용서하고, 캥거루가 당신을 용서하고, 당신이 나를 용서하는 - 예컨대 이런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사이클은 물론 항구적인 것이 아니고, 어느 때 캥거루가 이제는 당신을 용서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캥거루에게 화내지 말아 주세요. 그것은 캥거루 탓도 당신 탓도 아닙니다. 또 내 탓도 아닙니다.
캥거루 쪽에도, 아주 복잡한 사정이 있답니다. 도대체 누가 캥거루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순간을 포착하는 것,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순간을 포착해서 기념사진을 찍어 둔다는 말입니다. 앞줄 왼쪽 끝부터 당신, 캥거루, 나...... 처럼.
글을 쓰는 일은 이제 단념했습니다. 간단한 사무 통지 성격의 글이라도 틀렸습니다. 이제는 글자 그 자체를 신용할 수 없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우연'이라는 글자를 씁니다. 그러나 이 '우연' 이라는 글자에서 당신이 느끼는 것은, 내가 똑같은 글자에서 느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 - 혹은 반대되는 것 - 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굉장히 불공평한 일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팬티마저 벗었는데 당신은 블라우스의 단추를 세 개 밖에 끄르지 않다, 이것은 어떻게 봐도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나는 불공평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세계는 불공평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내 쪽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그런 것에 가담하고 싶지는 않다', 이것이 나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그래서 나는 직접 카세트테이프에다가, 당신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취입하기로 했습니다.
(휘파람 - <보기 대령의 행진곡> 8소절)
어때요, 들립니까?
이 편지 - 즉, 카세트테이프지요 - 를 받아 들고 당신이 어떤 기분이 들지, 나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전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아주 불쾌하게 느낄지도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백화점의 상품 관리 담당이 고객의 불만 신청 편지에 대해 카세트테이프에 취입한 답장 - 그것도 개인적인 메시지를 말입니다 - 을 보낸다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만약 당신이 불쾌하거나 몹시 화가 나서, 이 테이프를 내 상사 앞으로 반송하게 되면, 나는 회사 내에서 굉장히 미묘한 입장에 처하게 될 겁니다.
만약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렇게 되더라도, 나는 화를 내거나 당신을 원망하거나 하지는 않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우리들 입장은 100퍼센트 대등한 것입니다. 즉,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보낼 권리를 가지고 있고, 당신은 내 생활을 위협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어떻습니까, 공평하죠?
그래요, 나는 나름대로의 책임을 맡고 있답니다. 내가 뭐 농담이나 장난으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참, 말하다가 잊었습니다. 나는 이 편지를 '캥거루 통신' 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야 어떤 것에나 이름은 필요하니까요.
예를 들어 당신이 일기를 쓰고 있다고 하면 [오늘 백화점 상품 관리과로부터 불만에 대한 답장 (카세트테이프에 취입된 것)이 도착함]이라고 길게 적는 대신, [오늘 '캥거루 통신' 도착] 이라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간단해서 좋죠? 게다가 '캥거루 통신'이라는 것은 제법 멋진 이름이라고 생각지 않습니까? 넓은 초원 저만치서 캥거루가 배주머니에 우편물을 채워 넣고, 깡총깡총 뛰어오는 것 같지 않습니까.
똑 똑 똑 (책상 두드리는 소리).
이것은 노크입니다. 노크 노크 노크...... 아시겠어요? 나는 댁의 문을 노크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 당신이 문을 열고 싶지 않다면 열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나로서는 정말 아무래도 좋다구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면, 여기서 테이프를 끄고 쓰레기통에라도 던져 버리십시오.
나는 다만 당신 집 현관 앞에 앉아, 잠시 동안 혼자 떠들어 보고 싶다는 것뿐입니다. 당신이 그것을 들어주고 있는지 어떤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하고, 만약 그러하다면 사실 귀하가 듣던 안 듣던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하하하. 이것도 사태가 공평하다는 증거겠지요. 나에게는 지껄여댈 권리가 있고, 당신에게는 듣지 않을 권리가 있고.
좋아요. 아무튼 해보겠습니다. 노크는 했고, 당신에게는 그 노크에 응수할 의무가 없다는 것도 확인했지요.
하지만 불완전성이란 아주 대단한 것입니다. 원고도 없고, 계획도 없이 마이크에 대고 떠든다는 것이 이처럼 어려우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 서서, 컵으로 물을 뿌리고 있는 것 같은 심정입니다. 무엇 하나 보이지 않고, 무엇 하나 반응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줄곧 VU(volume unit, 음량을 재는 단위)미터의 바늘을 향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VU미터라고, 알고 계시죠. 음량에 맞춰서 똑똑 바늘이 흔들리는 '그것' 말입니다.
V와 U라는 것이 무엇의 머리글자인지 나는 잘 몰라요.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들이 나의 연설에 대해서 반응을 나타내 주는 유일한 존재랍니다.
V와 U라는 것은 실로 완벽한 2인조입니다. V 아니면 U, U 아니면 V, 그저 그뿐입니다. 멋진 세계지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고 누구를 향해 무엇을 떠들건, 그런 것은 그들에게 아무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들이 흥미를 갖는 것은 내 목소리가 얼마만큼 강하게 공기를 진동시키느냐 하는 것뿐입니다. 그들로서는 공기가 진동하기 때문에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멋지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뭐라도 좋으니 무작정 떠들어대고 싶은 기분이 든답니다. 무엇이라도 좋아요. 불완전이든 뭐든, 그들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공기의 진동입니다. 의미가 아니죠. 그저 공기의 떨림일 뿐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양식이랍니다.
후유.
그러고 보니 요전에 몹시 슬픈 영화를 보았습니다. 아무리 농담을 해도 누구도 웃어 주지 않는 코미디언의 이야기였습니다. 아시겠어요, 누구 한 사람 웃지를 않는 것입니다.
지금 이런 식으로 마이크에 대고 떠들다 보니, 문득문득 그 영화가 생각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똑같은 대사인데도 어떤 사람이 얘기하면 죽도록 우습고, 다른 사람이 얘기하면 전혀 우습지 않고. 이상하죠?
그래서 나는 생각해 보았는데, 그 차이란 것은 아무래도 타고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왜, 반고리관(척추동물의 속귀에 있는, 평형감각 담당 기관)의 끝이 남보다 약간 더 구부러져 있다든가 하는 느낌입니다. 만약 그러한 능력이 나에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가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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