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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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고장에선 이상하게도 영화관에 가고 싶다

나는 3일 동안 삿포로에 있었다. 특별히 볼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내친김에 혼자 한번 들러본 것뿐이다. 그러면 삿포로에서는 무얼 했는가 하면, 우선 맥주집에 들어가서 생맥주를 세 잔 마시고 점심식사를 했다(훗카이도에서 마시는 맥주는 왜 그렇게 맛있을까?). 그러고 나서 와 의 동시상영 영화를 보았다. 그다음에 저녁을 먹고 당연히 또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재즈카페에 들어가서 위스키를 마셨다. 이튿날은 또다시 영화관에 가서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와 빌리 와일더 감독의 , 그리고 를 보았다. 밤에는 또 술. 어째서 일부러 삿포로까지 가서 영화를 구경해야 했는지 나로서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모르는 고장에 가면 이상하게도 영화가 보고 싶어 진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국 각지의 참으로 많은 영화관에 들어가..

동물원

"이봐요, 고이치로 상. 당신 이상한 사람이야. 굉ㅡ장히, 이상해." "조금도 이상하지 않아요. 이상한 건 오히려 당신 아니에요? 내 안에 존재하는 이 의식이라는 것이, 나를 나로서 성립시키고 있는 이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것이 도대체 어떻게 기능한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도대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것일까?ㅡ댁은 그런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오차오차오차." "뭡니까, 그 오차오차오차라는 것은?" "그저 놀랐을 뿐이에요. 후후후후." "이봐요, 스가코 상, 그런 일로 사람을 놀리면 못 써요. 사람에게는 말이죠, 진지하게 사물을 생각해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당신처럼 항상 세상을 얕잡아 보고 히히덕거리며 장난처럼 살다가는 틀림없..

그리스의 여름밤과 야외 영화관

그리스에서 영화를 구경하는 것은 간단할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어렵다. 왜 어려운가 하면 그리스의 영화관은 대개 여름이면 밤 아홉 시쯤 되어야 개장을 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렇게 늦은 시간에만 상영을 하느냐 하면,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한 것으로 영화관에 지붕이 없기 때문이다. 지붕이 없게 때문에 주위가 완전히 깜깜해지지 않고서는 영화를 상영할 수가 없다. 굉장하지 않은가? 그 느낌은 옛날에 흔히 학교의 교정 같은 데서 상영하던 야외 영화회를 떠올리면 거의 비슷하다. 테니스 연습을 하는 판을 새하얗게 칠한 것 같은 스크린에 파이프 의자를 흙바닥에 늘어놓았을 뿐이다. 엉터리라고 하면 엉터리지만 요금도 200엔 정도니까 턱없이 싼 거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느냐 하면 그리스의 여름밤은 굉장히 시원하고 상쾌..

언어란 공기와 같은 것

나는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지방 태생으로, 죽 그곳에서 자라났다. 부친은 교토의 승려의 아들이고, 모친은 센바의 상인의 딸이니까, 우선 100퍼센트 간사이 토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간사이 사투리를 쓰면서 살아왔다. 그 밖의 언어는 말하자면 이단이어서, 표준어를 쓰는 인간치고 변변한 녀석이 없다고 하는 상당히 민족주의적인 교육을 받아왔다. 피처하면 무라야마, 식사는 싱거운 맛, 대학하면 교토대학, 장어하면 장어 덮밥의 세계이다. 그러나 어찌 된 셈인지 도쿄의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게 되어(실은 와세다 대학이 어떤 대학인지도 거의 몰랐다. 그렇게 지저분한 곳인 줄 알았더라면 아마 가지 않았을 거다) 그다지 마음이 내키지 않는 도쿄로 올라갔지만, 도쿄로 올라가서 가장 놀란 것은 내가 ..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정보

그리스라는 나라는 이상한 곳이어서 거리를 걸어 다니고 있어도 서점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가뭄에 콩나듯 있어도 엄청나게 작고 손님도 없다. 수도 아테네가 그러니까 지방에 가면 말할 것도 없다. 요컨대 책 따위는 모두들 읽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하느냐 하면 사람들은 카페에 모여 앉아 이러쿵 저러쿵 토론을 하면서 나날을 보낸다. 그 정도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국민도 없을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정보의 전달 방법도 일본과는 상당히 다르다. 일본 같으면 정보는 우선 텔레비전으로 보도되고, 신문으로 퍼져나가고, 잡지로 보충이 되고, 서적에 의해서 확인이 되는 셈인데 그리스에서는 일단 정보가 들어오면 마을의 아저씨들이 카페에 모여서 그 정보에 대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끝도 없이 지껄..

천장 속 난쟁이

우리 집 천장 속에 난쟁이가 살고 있다고 아내가 처음 이야기한 것은 설날이었다. "여보, 천장을 좀 살펴봐 줘요." 아내가 말했다. 그때 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기분 좋게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느닷없는 말이었다. "난쟁이라니, 도대체 어떤 난쟁인데?" 나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아내에게 말했다. "도대체 이름이 뭐야?" "나오미라고 해요." "그게 남자야, 여자야?" 내가 물었다. "그것까지는 몰라요." 아내는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이름밖에 몰라요." 할 수 없이 나는 손전등을 들고 천장 속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벽장 위쪽의 판자를 제치면 천장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나는 벽장 가운데 단 위에 올라서서 손전등 불빛으로 천장 속을 빙 둘러 비춰보았다. 난쟁이 따위는 없었다. "아무것도 없잖아." ..

교통 파업은 즐겁다

이런 발언을 하면, 전철로 출근을 하는 사람들은 혹시 불쾌하게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솔직히 말해서 '교통 파업'이라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운수 관계의 근로자를 지원하고 있다든가,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좋아한다든가, 그런 것은 아니고(사회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약간 좋아하지만), 그저 단순히 '여느 때와 다른 일'이 생기면 기쁜 것이다. 역이 폐쇄되어서 조용하거나, 야마노테 선의 육교 위에서 30분 동안 철로를 내려다보고 있어도 열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거나 하면 공연히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좀 더 자세히 분석해 보면 나는 똑같이 '여느 때와 다른 것'이라도, 여느 때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 무엇인가가 생기는 것보다는, 여느 때는 무엇인가가 있는 곳에 아무것도 없게 되는 마이너스..

맥주

오가미도리 상의 본명은 도리야마 교코라고 하는데, 저자한테서 원고를 받을 때는 언제나 절이라도 하듯 깊숙이 고개 숙이며 "감사합니다. 황송하게 원고를 받겠습니다." 라고 하기 때문에 편집부 사람들 모두가 오가미도리(정중하게 인사하며 받는다는 뜻)라고 부르고 있다. 도리야마 상은 스물여섯 살이고 제법 귀티가 나는 미인이며 독신이다. 도쿄 학예대학 국문과 출신으로 회사에 들어온 지 그럭저럭 4년이 되어간다. 가슴이 크고 플레어스커트를 즐겨 입는다. 입고 있는 옷에 따라서는 깊숙이 고개 숙일 때 살짝 가슴의 봉곳한 부분이 보일 때가 있어서, 작가들은 도리야마 상이 일을 부탁하면 자기도 모르게 수락해 버리게 된다. 편집장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 "바로 저런 것이 교양 있는, 좋은 가정 출신이라고 하는..

무시쿠보 노인의 습격

"제가 무시쿠보 노인입니다." 무시쿠보 노인은 여기까지 말하고 헛기침을 했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이 부근에 사는 사람치고 무시쿠보 노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갑작스러운 얘깁니다만, 오늘은 젊은 아가씨들의 처녀성에 대해서 당신하고 얘기를 하고 싶군요." "자, 잠깐만요. 저는 지금 저녁식사 준비를 하던 참이거든요. 그런 얘기라면 다음에……." 나는 당황해서 상대방을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무시쿠보 노인은 눈치를 채고 잽싸게 문 안으로 상반신을 밀어 넣었다. "길게 시간을 뺏지는 않겠습니다. 그냥 요리를 계속해도 상관없구요. 여기서는 음식을 만들면서도 얘기할 수가 있겠지요." 정말 어쩔 수 없군.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부엌칼로 마늘과 가지를 싹둑싹둑 썰었다. 부엌문으로 들어오다니..

스패너

마유미가 처음으로 쇄골을 으깨놓은 젊은 남자는, 스포일러가 붙은 하얀 닛산 스카이라인을 몰고 있었다. 이름은 모른다. 그 남자는 일요일에 집 근처를 산책하고 있을 때, "드라이브하지 않을래?" 하고 말을 걸어왔다. 별 생각 없이 올라탔는데, 에노시마 근처에서 강제로 모텔에 끌고 들어가려 해서, 마유미는 옆에 있던 스패너를 집어 들고 상대방의 어깨를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푹 소리가 나면서 쇄골이 부러진 것이다. 그녀는 낑낑 신음 소리를 내면서 괴로워하는 남자를 남겨두고 차에서 뛰쳐나와, 가까이에 있는 오다와라 역까지 뛰어갔다. 그리고 승차권 자동발매기에서 표를 사려고 했을 때에야 비로소 자기가 아직도 오른손에 대형 스패너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이상한 듯이 그녀와 스패너를 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