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410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

그 여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는 부엌에 서서 스파게티를 삶고 있는 중이었다. 스파게티는 삶아지기 직전이었고, 나는 FM라디오에 맞춰 로시니의 의 서곡을 휘파람으로 불고 있었다. 스파게티를 삶기에는 아마 최적의 음악이었다. 전화벨이 울렸을 때, 나는 그대로 못 들은 척하고 스파게티를 계속 삶으려고 까지 생각했다. 스파게티는 거의 삶아졌고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런던 교향악단을 그 음악적 피크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가스 불을 약하게 하고 젓가락을 오른손에 낀 채 거실로 가서 수화기를 들었다. 새 업무로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기 때문이다. "십 분간 시간을 갖고 싶어요."하고 당돌하게 여자가 말했다. "실례지만."나는 놀라서 재차 물었다. "뭐라고 말씀하..

풀 사이드

35세가 되던 봄, 그는 자신이 이미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버린 것을 확인했다. 아니,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35세의 봄을 계기로 그는 인생의 반환점을 돌기로 결심했다고 하는 것이 적합하리라. 물론 자신의 인생이 몇 년간이나 계속 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만약 78세까지 산다고 한다면 그의 인생의 반환점은 39세가 되는 셈이고 39세가 되려면 아직 4년의 여유가 있다. 게다가 일본 남성의 평균 수명과 그 자신의 건강 상태를 함께 생각한다면 78년의 수명은 그다지 낙천적인 가설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35세의 생일을 자기 인생의 반환점으로 정하는 것에 대해 조금의 망설임도 가지지 않았다. 그렇게 하려고 생각하면 죽음을 조금씩 멀리 물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을 계속하다..

앗 미안 실수였어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게 된 이후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사람은 반드시 실수를 한다.'라는 것이다. 하긴 글을 쓰기 이전부터 일상적으로 여러 가지 실수를 저질렀으니까 이제 와서 새삼스레 그렇게 통감할 필요도 없지만, 글을 쓰기 전에는 대부분의 잘못은 "앗, 미안해, 실수였어." 하고 넘어 갔다. 상대방도 "정말 어쩔 수 없군." 하는 정도로 넘어가 주었다. 그러나 글을 쓰면 실수란 것이 확실하게 흔적을 남기게 될 뿐 아니라 그것이 광범위하게 퍼지게 된다. 실수를 깨달았더라도 "앗, 미안해요. 실수였어요." 하고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과를 하며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암만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는 해도 이건 너무 골치 아프다. 그 대신에 -라고 할 것도 없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실수나 ..

슬픈 외국어

1 그 미국의 아름다운 지성의 고향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처음으로 뉴저지 주의 프린스턴을 찾아간 것은 1984년 여름이었다. 암트랙 선 열차를 타고 워싱턴에서 뉴욕으로 가던 도중에 환승역인 프린스턴 역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고 프린스턴 대학까지 갔다. 1984년이라면 레이건 대 먼데일의 대통령 선거전이 있던 해였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본인 더 USA)를 어디를 가나 들을 수 있었고 마이클 잭슨이 화상을 입은 손을 가리기 위해서 은색 장갑을 끼고 다니던 해기도 하다.(이렇게 말하니 불과3~4년 전의 일처럼 생각되는데, 나이 탓일까?) 프린스턴 대학이 F.스콧 피츠제럴드의 모교이기 때문에 그 캠퍼스를 한 번 내 눈으로 보고 싶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 나는 프린스턴에 갔었다. 특별히 다른 볼일..

새빨간 고추

어머니 어깨를 슬슬 두들겨 드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햇살이 가득 비추고 있는 툇마루에 나가보았더니, 거기에는 어머니 모습은 없고, 마당에는 새빨간 고추가 웃고 있을 뿐이었다. 방석이 하나, 버려진 것처럼 외롭게 그 자리에 남겨져 있었다. "하하하 하하하" 고추는 소리를 내면서 웃고 있었다. 마치 '하'라는 글자를 한 줄로 옆으로 늘어놓고, 하나하나 차례로 읽어 내려가는 것 같은, 그런 웃음이었다. 나는 그 부근을 대충 살펴보았지만, 역시 어머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 나는 큰 소리로 불러보았다. 그렇지만 대답이 없었다. 고추는 그 동안에도 계속 같은 투로 웃고 있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어머니는 어디 계시지?" 나는 툇마루에 서서, 웃고 있는 새빨간 고추를 향해서 단호한..

마이 스니커 스토리

'스니커'라는 명칭은 정확하지 않다. 스니커(sneaker)는 '비열한 사람' 을 말한다. 사실은 스니커즈(sneakers)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괜찮다. 스니크(sneak)는 '살금살금 걷는다.' 는 뜻이다. 분명히 스니커를 신으면 살금살금 걸을 수가 있다. 틀림없이 처음으로 스니커를 발명한 사람은 친구나 가족에게 수없이 싫은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뭐, 뭐야, 자넨가? 뒤에서 살금살금 걸어오니까 깜짝 놀랐잖아" 라든지, "당신, 앞으로 그 새 신발 좀 신고 다니지 마세요. 깜짝 놀라서 접시를 세 개나 깨 먹었다고요" 라고 말이다. 하지만, 스니커를 발명한 이는 여간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러 가지로 장난을 쳤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광경을 상상해 보면 상당히 재미있다..

구토 1979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하루도 거르는 일 없이 일기를 쓸 수 있다는 흔치 않은 능력을 갖춘 소수의 사람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자신의 구역질이 언제 시작되어 언제 끝났는지, 그 정확한 날짜를 인용할 수가 있었다. 그의 구역질은 1979년 6월 4일(맑음)에 시작되어, 같은 해 7월 14일(흐림)에 끝나 있었다. 그는 젊은 일러스트레이터인데, 언젠가 한 번 나와 한 조가 되어 잡지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는 레코드 컬렉터였고, 친구의 애인이나 부인과 자는 것을 좋아했다. 나이는 나보다 두셋 아래이다. 그는 실제로 그때까지의 인생에서 몇 명이나 되는 친구의 애인이나 부인과 잔 적이 있었다.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그 친구가 근처 술집에 맥주를 사러가거나 샤워를 하고 있는 동안에 그 부인과 섹스..

재즈다방을 위한 광고

처음부터 흥을 깨는 것 같습니다만, 여기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라도 마음 편하게 들어오는 그런 종류의 가게가 아닙니다. 특히 여름에는 문제가 약간 있습니다. 냉방장치가 별로 신통치 않습니다. 전혀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나오는 입구 근처는 꽤 시원합니다만, 조금만 떨어지면 여간해서는 찬바람이 와 닿지 않습니다. 어쩌면 기계에 뭔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새 것으로 바꾸면 되겠습니다만, 그렇게 간단하게 바꿀 수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이 가게에는 음악이 틀어져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재즈 팬이 아니라면, 이 볼륨은 상당히 불쾌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당신이 열렬한 재즈 팬이라면, 이 음량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당신이 어느 쪽 부류에 속한다 하더라도..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여기 수록된 문장을 소설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 내게는 약간의 저항감이 있다. 보다 확실하게 말하면 이것은 정확한 의미에서의 소설이 아니다. 내가 소설을 쓰려고 했을 때 나는 모든 현실적인 제재 -그런것이 만약에 있다면 하는 말이지만- 를 커다란 냄비에 한 데 집어넣고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용해한 후에 그것을 적당한 모양으로 찢어내어 사용한다. 빵가게의 리얼리티는 빵속에 존재하는 것이지 소맥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 수록된 문장은 원칙적으로 사실에 입각하고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여러가지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문장으로 만들었다. 물론 나는 당사자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세부를 여러가지로 주물렀기 때문에 완전한 사실이라고는 할수 없지만 그러나 얘기의 줄거리는 사실이다. 나는 ..

강치

강치는 고독했다. 친구가 없기 때문은 아니다. 몇 명의 친구가 있었고, 함께 마작도 했다.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여, 따져 보면 승패가 거의 비슷했다. 이따금 술을 마시는 데 불려가기도 한다. 여자 친구도 있었다. 두 시간 동안 다섯 번이나 섹스를 할 수도 있었다. 한 시간당 2.5회이므로, 강치의 평균 횟수에 비하면 어지간한 편이다. 하긴 강치에게는 전희가 필요하지 않으므로, 그다지 시간이 걸리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또 배가고파서도 아니다. 전갱이 따위는 닥치는 대로 먹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치는 고독했다. 바다에 떠올라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강치는 자신이 강치인 데에 대한 무한한 허무감을 느끼는 것이다. ‘왜 나는 강치인 것일까’ 하고 그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녀석이 요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