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새빨간 고추

chocohuh 2013. 1. 17. 09:06

어머니 어깨를 슬슬 두들겨 드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햇살이 가득 비추고 있는 툇마루에 나가보았더니, 거기에는 어머니 모습은 없고, 마당에는 새빨간 고추가 웃고 있을 뿐이었다. 방석이 하나, 버려진 것처럼 외롭게 그 자리에 남겨져 있었다.

 

"하하하 하하하"

 

고추는 소리를 내면서 웃고 있었다. 마치 '하'라는 글자를 한 줄로 옆으로 늘어놓고, 하나하나 차례로 읽어 내려가는 것 같은, 그런 웃음이었다. 나는 그 부근을 대충 살펴보았지만, 역시 어머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 나는 큰 소리로 불러보았다. 그렇지만 대답이 없었다. 고추는 그 동안에도 계속 같은 투로 웃고 있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어머니는 어디 계시지?" 나는 툇마루에 서서, 웃고 있는 새빨간 고추를 향해서 단호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그렇지만 새빨간 고추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고 계속 웃을 뿐이었다.

"이봐, 너는 어머니가 어디에 계시는지 알고 있을 거야. 어머니는 툇마루에 내가 어깨를 두들겨 드리러 오는 것을 기다리고 계셨고, 다리가 불편하시니까 그렇게 멀리는 못 가셨을 거거든. 너는 거기에 쭉 있었으니까, 어머니가 어디에 가셨는지 보았겠지. 바보 같은 웃음을 짓지 말고 빨리 가르쳐 줘. 이쪽도 바쁘다고."

"하하하하." 고추는 좀 더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설마 네가 어머니를 잡아먹은 것은 아니겠지?" 나는 걱정이 돼서 물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내 말을 듣자 고추는 한층 더 심하게 웃어댔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우스운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고추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에 나도 왠지 점점 우스워졌다.

나도 모르게 볼이 누그러지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너, 진짜로 어머니를 먹어치운 거야?" 나는 웃음을 참으면서 물어보았지만, 그러고 나서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하하하하" 하고 나도 '하'라는 글씨를 읽어 내려가는 것처럼 웃었다. 내가 웃자, 고추는 좀 더 심하게 웃었다. 고추는 글자 그대로 포복절도하면서 웃고, 그 부근을 데굴데굴 뒹굴었다. 고추는 히―히―숨을 몰아쉬었고, 이마에 땀까지 내비쳤다. 그래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고추는 너무 웃어서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실룩 실룩 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연히 배를 비틀었을 때, 입에서 어머니를 툭 내뱉었다.

 

"저런, 정말이지." 나는 말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 어머니는 옛날부터 간지럼 태우기를 굉장히 잘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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