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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앗 미안 실수였어

chocohuh 2013. 1. 18. 01:15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게 된 이후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사람은 반드시 실수를 한다.'라는 것이다. 하긴 글을 쓰기 이전부터 일상적으로 여러 가지 실수를 저질렀으니까 이제 와서 새삼스레 그렇게 통감할 필요도 없지만, 글을 쓰기 전에는 대부분의 잘못은 "앗, 미안해, 실수였어." 하고 넘어 갔다. 상대방도 "정말 어쩔 수 없군." 하는 정도로 넘어가 주었다.

 

그러나 글을 쓰면 실수란 것이 확실하게 흔적을 남기게 될 뿐 아니라 그것이 광범위하게 퍼지게 된다. 실수를 깨달았더라도 "앗, 미안해요. 실수였어요." 하고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과를 하며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암만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는 해도 이건 너무 골치 아프다. 그 대신에 -라고 할 것도 없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실수나 실패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 아닌가 한다. 다른 사람이 실수했다고 해서 그걸 트집 잡으며 "어이, 너 그때 그런 말을 했었지. 맞지, 그랬었잖아" 하며 빈정대는 일은 일단 없다. 덕분에 14년 동안 그런대로 평온한 결혼 생활을 해왔다.

 

문장상의 실수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번역이다. 여하튼 원본이 있으므로 나보다 어학력이 뛰어난 사람이 치밀하게 원본과 번역문을 맞춰 보면 자잘한 실수 같은 건 얼마든지 나오게 된다. 얼마 전 가쓰시카 구에 사는 모리시타 씨라는 사람이 엽서를 보냈는데, "당신의 번역 중에는 2주(a couple of weeks)가 '이틀'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2주'를 잘못 옮긴 게 아닙니까?"라고 지적해 주었다. 이것은 정말 누가 뭐라 해도 나의 잘못이다.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 후에도 부끄럽지만 'twenty one'을 '31'로 옮긴 적도 있고, 'bald'와 'bold'를 혼동해서 번역 한 일도 있다. 어째서 그런 실수를 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학창 시절, 답 안 용지에 "사소한 실수가 많으니까 다시 잘 보도록" 하고 몇 번이나 씌어져 있던 기억이 있는데, 그런 성향은 나이를 먹어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것 같다.

 

다만 이런 말을 쓰면 변명을 늘어놓는 것 같아서 죄송스럽지만 하나의 문장, 하나의 단어를 정확하게 옮기기 위해서 하루 종일 끙끙대는 경우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그리고 그런 조마조마한 부분을 어찌어찌 통과해서 비교적 평탄한 부분으로 들어갔을 때 후유 하고 한시름 놓다가 사소한 실수를 하게 되는 게 대부분이다. 물론 나중에 원본과 번역문을 몇 번이고 다시 맞춰보긴 하지만, '이런 데서 실수를 했을 리가 없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있어서 몇 번이나 체크를 해도 실수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난처한 일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식은땀이 흐른다.

 

다른 사람에게 지적을 받을 것까지도 없이, 나 자신이 오역을 나중에 퍼뜩 깨닫는 경우가 있다. 밤중에 이부자리에 들어가 불을 끄고 멍청히 누워 있을 때에 "앗, 틀렸어. 그건 실수야!" 하고 벌떡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주의하지 않아 저지른 실수라기보다는 좀 더 중대한 의미를 가진 잘못일 때가 많다. 따라서 전자보다 식은땀의 양도 훨씬 많다.

 

그러나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부주의해서 저지른 무수한 실수들을 잔뜩 모아 그것을 병리적으로 분석해 보면, 꽤 재미있는 연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문장뿐만 아니라 나는 일상생활의 온갖 측면에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실수를 저지르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소변을 봐야지' 하고 화장실에 갈 생각이었으나 잘못해서 욕실에 가서 샤워를 하고 그대로 방에 돌아와선, "앗, 이상한데 아직 소변이 마렵잖아. 몸 상태가 안 좋은 걸까?" 하고 의아해 하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 거에 비하면 'twenty one'을 '31'로 번역하는 것은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전철 시간표나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편집자가 되지 않아 정말 다행 이다.

 

번역만이 아니라 이렇게 내 글을 쓰고 있을 때도 때때로 심한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나는 데이터를 구사하여 이론을 전개해 나가는 타입의 글쟁이도 아니고, 모델 소설이나 논픽션도 쓰지 않아 그 일로 특별히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도 없으므로 대개의 실수나 사실 오인은 웃음으로 넘겨 버리고 만다.

 

며칠 전 아키시마 시의 오카무라 씨라는 사람으로부터, 하루키 씨의 소설 중에 '폭스바겐의 라디에이터'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이상하지 않느냐는 투서가 모 잡지에 게재된 걸 알고 계십니까, 하는 편지를 받았다. 나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사람들한테 물어 보니 분명히 폭스바겐에는 라디에이터가 없는 듯하다. 영락없는 나의 실수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하느냐 하면, 그러기는커녕 웃으며 넘겨 버린다. 왜냐하면 이것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세계에서는 화성인이 하늘을 날아다녀도, 코끼리를 축소하여 손바닥에 올려놓아도, 폭스바겐에 라디에이터가 붙어 있어도, 베토벤이 교향곡 11번을 작곡했다 해도, 그건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앗, 그렇구나. 이건 폭스바겐에 라디에이터가 붙어 있는 세계의 얘기구나!'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어 주면 나는 굉장히 기쁠 것 같다.

 

그래도 역시 실수는 자랑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성실한 분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나올 영문판 <핀볼, 1973>에서는 그 부분을 제대로 고쳐 놓았으니까 그 쪽을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보니 책 소개까지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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