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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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즙

낙타사나이가 여느 때처럼 식사 쟁반을 들고, 지하실 계단을 비칠비칠 내려왔다. 여전히 더럽고, 추한 사나이다. 낙타사나이는 하루하루 더 불결해지고 더 추해져 가는 것 같다. 콧물은 뚝뚝 아래로 떨어지고, 눈에는 커다란 눈곱이 끼어 있다. 앞으로 툭 튀어나온 이빨은 누런 데다 다 바스러졌고, 귓밥은 때 때문에 변색되어 있고, 길게 자란 머리는 비듬투성이라, 걸을 때마다 하얀 비듬이 하늘하늘 주변에 떨어진다. 입 냄새로 말하자면 엄청나다. 그런 사나이가 날라 온 식사 같은 걸 먹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가 그렇게 말하자, 낙타사나이는 수프 접시 안에 탁탁 침을 뱉고 나서 즐거운 듯이 말했다. "마음대로 해. 굶어 죽어도 나는 모른다고. 하긴 넌 어차피 죽을 거니깐 마찬가지겠군. 헤헤헤." 보통 때라면 이까..

인도 장수 아저씨

대략 두 달에 한 번 정도, 인도 장수 아저씨는 우리 집에 온다. "슬슬 인도 장수 아저씨가 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라고 엄마가 말하면, 마치 그 말을 듣기나 한 듯 2, 3일 뒤에는 인도 장수 아저씨가 우리 집 현관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언제나 "엄마, 인도 장수 아저씨 일은 될 수 있으면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겠어. 엄마가 생각하면 언제나 인도 장수 아저씨가 와버리니깐." 이라고 말했고, 엄마는 그때에는 "그러게 말야, 엄마가 생각을 하는 게 잘못인가 보지?" 하며 반성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랬던 일은 금방 잊어버리고, "슬슬 인도 장수 아저씨가..." 라고, 또 깜박 말해버린다. 그러면 이내 인도 장수 아저씨는 확실하게 우리 집 현관으로 나타나게 된다. 인도 장수 아저씨는 ..

장편 끝내고 2주 동안 영화만 봤다

장편소설이 겨우 일단락되었기 때문에 2주일 동안 영화만 봤다. 금년 봄에는 등 상당한 역작이 구색별로 갖춰져 있어서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다만 나는 와 같은 부자지간이 즐길 수 있는 작품에는 역시, 끝이 없는 이야기처럼 제대로 된 일본어 제목을 붙여 주는 것이 친절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기다란 영어 제목은 어린애들이 기억하기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나는 의 팬이기도 해서,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주연하는 를 상당히 좋아한다. 와 과 을 함께 섞어 놓은 것 같은 스릴 넘치는 이 영화는 미국에서 6주간 연속 관객 동원수 제1위를 기록하여 업계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 독일 사투리가 심한 거구의 사나이가 주연한 영화가 대히트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놀드 슈왈츠네거는 19..

나 홀로의 조조 상영 영화관

얼마 전 볼일이 있어서 교토에 여행을 갔었는데, 시간이 남아서 언제나처럼 눈에 띄는 영화관으로 뛰어 들어가 영화를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런 식으로 여행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도쿄에서는 그렇게 열심히 영화관에 가는 것도 아닌데, 낯선 도시에 여행을 가서는 영화관의 간판이 눈에 띄면 거의 조건 반사적으로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른다. 교토에서는 라고 하는 전쟁영화를 보았는데, 아침의 조조 상영을 보러 들어갔기 때문에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는 객석에는 나 한 사람밖에 손님이 없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10분쯤 되었을 때, 두 번째의 손님이 들어왔기 때문에 얼마간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은 주위가 휑뎅그렁해서 불안..

대학의 영화과 입학-영화만 봤다

나는 와세다 대학 문학부의 연극영화과라는 데에서, 영화에 대한 공부를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영화에 정통한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사람에 비해서 영화를 보다 잘 이해하고 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대학교육이라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와세다 대학의 영화과에 들어가서 좋았던 점은,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거다. 영화과에도 일단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이론'을 원서로 읽는다든가 하는 강의가 있어서 예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학생 쪽에서는 '체! 이론만 해가지고 어떻게 영화를 알 수 있겠어?'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럼 무엇을 했느냐, 수업을 빼먹고 아침부터 명화좌(역주: 옛날 명작만 상영하는 곳)에서..

언제나 비슷한 옷을 입는 나

며칠 전에 낡은 와이셔츠를 세 장 가량 처분했기 때문에, 그 대신 입을 것을 하라주쿠의 '폴 스튜어드'로 사러 갔다. 나는 특별히 옷에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어서 언제나 비슷한 것만 입는 편인데, 와이셔츠를 사는 것만은 비교적 좋아한다. 남성복 전문점의 선반에 진열되어 있는 와이셔츠를 보고 있기만 해도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바지라든가 블레이저 코트라든가 스웨터에 대해서는 특별히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와이셔츠뿐이다. 어째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이유로 와이셔츠를 좋아한다. 새로 사 온 와이셔츠 포장을 풀 때 희미하게 풍기는 옥스퍼드 면 냄새를 좋아하고, 빨아서 빳빳하게 마른 와이셔츠를 다림질해 나갈 때의 그 감촉도 좋아한다. 고교시절과 대학시절에는 VA..

홀리오 이글레시아스

속아서 모기향을 빼앗긴 뒤, 우리한테는 바다거북의 습격에서 몸을 지킬 만한 것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전화나 우편으로 통신회사에서 새 모기향을 주문하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짐작했던 대로 전화선은 끊겨 있었고, 우편배달도 보름 전부터 끊겨 있었다. 생각해 보면 저 교활한 바다거북이 그런 일을 쉽사리 하도록 놓아둘 리가 없다. 그 녀석은 여태까지 우리들이 갖고 있는 모기향 때문에 실컷 쓴 맛을 보았었다. 지금쯤 틀림없이 푸른 바다 밑바닥에서 득의에 찬 미소를 짓고, 밤에 대비해서 낮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우린 인제 끝장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밤이 되면 둘 다 바다거북에게 먹혀 버릴 거예요." "희망을 버려선 안돼." 내가 말했다. "지혜를 짜내면 절대로 바다거북 따위한테 지지 않을 거야." "..

인디언

그 친구는 정말로 많은 돈을 벌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 본인도 잘 모를 지경이었다. 그는 회사를 몇 개나 가지고 있었고 그 하나하나의 회사가 또 다른 하나하나의 회사에게 마치 질투심 많은 다족동물과 같이 완전히 연결되어 있었다. 결국 A회사는 B회사에게 돈을 빌려주고, B회사는 C회사를 착취하고, C회사는 D회사를 교묘하게 속이는 그런 수법이었다. 그래서 그의 회사조직이 얼마나 수익을 올리고 있는지 본인도 잘 알지 못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잉크 지우개처럼 못생긴 회계사가 찾아왔다.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회계사는 작은 볼펜으로 무언가 숫자를 썼다. 그리고 칠판에다 그래프를 그리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금을 B회사로 옮기지요." 회계사는 권유했다. "음-." "허나 이건 명목상일 뿐입니다...

1 잠을 이루지 못한 지 열이레 째다. 나는 불면증을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불면증에 대해서라면 조금은 알고 있다. 대학생 시절, 한번 불면증 비슷한 것에 걸린 일이 있다. 구태여 '비슷한 것'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 증상이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불면증이라 부르는 증상과 일치하는 것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병원에 갔더라면 그것이 불면증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병원에 간다한들 필경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딱히 그렇게 믿을 만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직관적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가 봐야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병원에도 가지 않았고,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줄곧 아무..

댄스 댄스 댄스 2

제2부, 그림자와 춤추는 공백 지대 25 일곱 시가 되어 유키가 훌쩍 돌아왔다.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어떡하겠니? 식사라도 하고 가겠니? 하고 마키무라 히라쿠가 물었다. 유키는 고개를 저었다. 시장하지 않으니까요, 이제 집에 돌아가겠어요, 하고 말했다. "그럼 또 마음이 내키면 놀러 와라. 이번 달은 죽 일본에 있을 것 같으니까" 하고 그녀의 부친은 말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일부러 와주었으나 아무런 대접도 못해서 미안하고도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아르바이트 학생인 프라이데이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정원 안쪽의 주차장에 지프차로 키와 혼다와 일반도로가 아닌 곳에서 달릴 수 있는 특제 자전거 등이 보였다. "과소비적 생활 같군요."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