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야기.
중학교에 들어가던 봄, 생물 첫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잊고 안 가져와 집에까지 가지러 돌아간 일이 있다. 우리 집은 그때 학교에서 걸으면 십오 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었으므로, 냅다 뛰어서 왕복을 하면 수업에는 거의 지장 없이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그 당시에는 아주 순진한 학생이어서 -옛날 중학생들은 모두 순진했던 것 같은데- 선생님이 하신 말씀대로 열심히 뛰어 집으로 가서는 교과서를 들고 물을 한 컵 꿀꺽꿀꺽 마시고서는 다시 학교를 향해서 뛰었다. 우리 집과 학교 사이에는 강이 한 줄기 흐르고 있었다. 그리 깊지도 않고 깨끗한 물이 졸졸졸 흐르는, 그리고 거기에 낡은 다리가 걸려 정취를 더하고 있었다.
오토바이도 지나갈 수 없을 만큼 좁은 다리였다. 그 주변은 공원이고, 협죽도가 눈가리개처럼 줄지어 피어 있었다. 다리 한가운데 서서 난간에 기대어 남쪽 방향을 바라보았더니, 바다가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하도 눈이 부셔 나도 모르게 눈을 찡그렸다. '따끈따끈한'이란 형용사가 딱 어울린다. 마치 마음이 느긋하게 풀어져 버릴 것 같이 기분 좋은 봄날 오후였다. 사방을 돌아보니 모든 것이 지표에서 이삼 센티미터쯤 둥실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한숨을 돌리며 땀을 닦은 다음 강변의 잔디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힘껏 달렸잖아 잠시 쉬어도 괜찮겠지 하면서 말이다.
머리 위로는 휜 구름이 꼼짝 않고 한 군데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눈앞에 손가락을 세워 재어 보니 조금씩 조금씩 동쪽을 향해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머리 밑에 밴 생물 교과서에서도 역시 봄 냄새가 났다.
개구리의 시신경과 저 신비스러운 랑겔한스섬(췌장에 있는 내분비세포. 전체에 섬 모양으로 산재)에서도 봄내음이 풍겼다. 눈을 감으니 부드러운 모래톱을 어루만지며 지나가는 강물 소리가 들렸다. 봄의 소용돌이 속으로 삼켜질 듯 무르익은 사월의 오후에 또다시 생물 수업시간으로 돌아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961년 봄의 따스한 어둠 속에서 나는 살며시 손을 뻗어 랑겔한스섬의 물가를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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