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낡은 와이셔츠를 세 장 가량 처분했기 때문에, 그 대신 입을 것을 하라주쿠의 '폴 스튜어드'로 사러 갔다. 나는 특별히 옷에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어서 언제나 비슷한 것만 입는 편인데, 와이셔츠를 사는 것만은 비교적 좋아한다. 남성복 전문점의 선반에 진열되어 있는 와이셔츠를 보고 있기만 해도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바지라든가 블레이저 코트라든가 스웨터에 대해서는 특별히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와이셔츠뿐이다. 어째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이유로 와이셔츠를 좋아한다. 새로 사 온 와이셔츠 포장을 풀 때 희미하게 풍기는 옥스퍼드 면 냄새를 좋아하고, 빨아서 빳빳하게 마른 와이셔츠를 다림질해 나갈 때의 그 감촉도 좋아한다.
고교시절과 대학시절에는 VAN 재킷의 버튼다운 컬러 사이즈 37만 입는다고 하며 상당히 편집광적으로 지냈는데, 최근에는 여러 가지 셔츠를 즐겨 입게 되었다.
미국의 남성 잡지에는 와이셔츠 메이커의 광고가 많은데,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애로우일 것이다. 1920년에 스콧 피츠제럴드가 <낙원의 이쪽 This Side of Paradise>으로 데뷔했을 때, 그의 잘생긴 얼굴은 "애로우 와이셔츠의 광고 모델 같다"라고 형용되었을 정도니까, 그 역사가 길다.
뉴요커 지에 실린 애로우 사의 광고를 보니까, 이미 문을 닫은 레스토랑에서 몸을 밀착시키고 있는 남녀의 사진이 있고, "아메리카가 숨 쉬고 있는 셔츠"라는 카피가 붙어 있었다. 남자는 리처드 기어와 존 트라볼타를 합쳐서 두 개로 쪼개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아마 지금은 이러한 타입의 핸섬 보이가 유행하는 것이리라. 옷은 세련되었으나, 플레이보이라기 보다는 비즈니스맨에 가깝다. 역시 세련된 옷차림을 한 여자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그의 흰 와이셔츠 소매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다. 좋은 그림이었다.
그런데 '폴 스튜어트'에서 와이셔츠를 샀더니 앙케이트 용지가 딸려왔다. 그래서 그 직업란에 기입을 하려고 보니까, 자영업이 1.지적서비스업, 2.물적 서비스업, 3.기술 서비스업 세 가지로 분류되어 있었다. 1로 할까, 3으로 할까 굉장히 망설였다. 와이셔츠 한 장 샀을 뿐인데, 그런 어려운 질문은 제발 하지 말아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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