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상당히 상황이 호전되었지만, 내가 대학원을 나온 1960년대에는 서퍼 같은 친구들은 모두 무뢰한이라고 여겨졌었다"라고 얘기한 사람은 하와이 대학에서 해양학을 연구하고 있는 리처드 그리그 박사다. 그리그 박사는 한때 와이미어 베이의 톱 서퍼였고 마흔여덟 인 지금도 가장 우수한 서퍼 중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무렵은 정말 형편없었다. 어쨌든 내가 서핑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도 나의 연구를 인정해 주려고 하지 않았다. 남들보다 두 배의 노력을 해서 무엇인가를 발견해도, 저 녀석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말만 들었다. 제대로 대접을 받게 될 때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공화당 의원인 프레드 헤밍스 쥬니어는 서핑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치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상당한 핸디캡을 짊어지고 있었다. 아무도 서핑을 하는 국회의원을 신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들도 자식에게 서핑을 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서퍼는 야구나 미식축구와는 달라서 추천받아 대학에 입학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스포츠로서의 서핑은 1960년대에 비하면 지위가 굉장히 향상된 편이다. 1960년대에 비하면 서퍼도 드롭아웃(역주: 사회체제로부터의 탈출, 타락)적인 색채는 희미해지고, 마약이나 여자에 얽혀 난장판을 벌이지도 않는다. 서핑도 겨우 '2급 시민적'이기는 하지만 스포츠로서의 시민권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서핑의 뛰어난 점은 그것이 개인적인 스포츠라는 것이다. 서핑은 순수한 의미에서의 정직함을 사람들에게 요구하며, 그것에 의해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응시하게 된다. 파도 앞에 나서면 인간은 갖가지 공포와 직면한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법을 배운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 정신치료라고 할 수 있다" 하고 어느 서핑 잡지의 편집자가 말했다.
자기 정신적 치료라고 하는 게 약간의 과장일지도 모르지만, 금년 가을 태풍이 오기 전날의 고코누마 해안의 파도는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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