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초코렛 HUHSI chocolate

무라카미하루키

생소한 고장에선 이상하게도 영화관에 가고 싶다

chocohuh 2023. 3. 16. 10:18

나는 3일 동안 삿포로에 있었다. 특별히 볼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내친김에 혼자 한번 들러본 것뿐이다.

그러면 삿포로에서는 무얼 했는가 하면, 우선 맥주집에 들어가서 생맥주를 세 잔 마시고 점심식사를 했다(훗카이도에서 마시는 맥주는 왜 그렇게 맛있을까?). 그러고 나서 <람보><소림사>의 동시상영 영화를 보았다.

그다음에 저녁을 먹고 당연히 또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재즈카페에 들어가서 위스키를 마셨다. 이튿날은 또다시 영화관에 가서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탐정 이야기>와 빌리 와일더 감독의 <선셋 스트리트>, 그리고 <불꽃의 러너>를 보았다. 밤에는 또 술.

 

어째서 일부러 삿포로까지 가서 영화를 구경해야 했는지 나로서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모르는 고장에 가면 이상하게도 영화가 보고 싶어 진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국 각지의 참으로 많은 영화관에 들어가서 수많은 영화를 관람했다. 낯선 고장의 낯선 영화관에 들어가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영화가 묘하게 몸에 스며들어 온다. 이것은 어쩌면 영화의 즐거움이 본질적으로 안타까움과 동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열여덟 살 때 시험공부가 하기 싫어져서 고베에서 배를 타고 훌쩍 규슈로 갔었다. 그리고 구마모토에 가서 영화관에 들어가 제임스 칸이 출연하는 <영광의 사나이들>과 록 허드슨의 <눈가리개>를 동시상영으로 보았다.

 

영화관을 나와서 어슬렁거리고 있으려니까, 어떤 여자가 다가와서 "500엔이면 되는데, 한번 하지 않을래요?" 하고 말을 걸었다. 500엔이라는 돈은 그 당시로서도 굉장히 쌌기 때문에 수상해서 거절하고, 다시 다른 영화관에 들어갔다. 도에이 계통의 영화관으로 요금은 500엔 정도였다. 그래서 '세상이란 참 이상한 곳이군.' 하고 생각했던 걸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때 연애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구경하는 것과 같은 요금으로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삿포로에는 열 개의 영화관이 한꺼번에 모여 있는 빌딩이 있었다. 정말로 굉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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