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영화를 구경하는 것은 간단할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어렵다. 왜 어려운가 하면 그리스의 영화관은 대개 여름이면 밤 아홉 시쯤 되어야 개장을 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렇게 늦은 시간에만 상영을 하느냐 하면,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한 것으로 영화관에 지붕이 없기 때문이다. 지붕이 없게 때문에 주위가 완전히 깜깜해지지 않고서는 영화를 상영할 수가 없다.
굉장하지 않은가? 그 느낌은 옛날에 흔히 학교의 교정 같은 데서 상영하던 야외 영화회를 떠올리면 거의 비슷하다. 테니스 연습을 하는 판을 새하얗게 칠한 것 같은 스크린에 파이프 의자를 흙바닥에 늘어놓았을 뿐이다. 엉터리라고 하면 엉터리지만 요금도 200엔 정도니까 턱없이 싼 거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느냐 하면 그리스의 여름밤은 굉장히 시원하고 상쾌하며 비도 거의 내리지 않아 지붕을 씌우거나 에어컨을 설치하거나 하는 것은 바보스러운 짓이고 그래서 자연히 지붕 없이 상영을 하기로 정해진 것이다.
그리스라는 나라는 아무튼 지붕 없는 시설이 많은 곳이어서, 극장도 콘서트 장도 레스토랑도 모두 지붕이 없다. 덕분에 영화관 주변에 사는 아파트 주민들은 매일 밤 공짜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일본 같으면 소음 공해라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겠지만, 그리스인은 그러한 것에는 대단히 무신경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아기 테오도리라고 하는 해수욕장의 영화관에서 앨런 J. 파큘러 감독의 <컴즈 어 호스먼>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2부작이어서 전편과 후편 사이에 예고편이 상영되었다.
코린토스의 영화관에서는 놀랍게도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버스의 창으로 흘끗 포스터를 보기만 했기 때문에 잘은 모르는데 도대체 그리스어로 제목이 어떻게 붙여져 있는지가 궁금했다.
리카비토스 산꼭대기의 원형극장에는 사가와 유키오가 연출하고 히라 미키지로가 주연한 연극 <메디아>를 보았다. 이 연극은 참으로 재미있었고 사실 아테네에서는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것을 보면 역시 그리스의 연극은 야외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 정말로 기분이 말할 수 없이 좋으니 말이다. 잔뜩 기대하고 있던 헤로데스 아티코스 음악당은 아테네 국립 교향악단의 파업 소동으로 들어가 볼 수 없어서 유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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