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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정보

chocohuh 2023. 2. 24. 16:31

그리스라는 나라는 이상한 곳이어서 거리를 걸어 다니고 있어도 서점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가뭄에 콩나듯 있어도 엄청나게 작고 손님도 없다.

 

수도 아테네가 그러니까 지방에 가면 말할 것도 없다. 요컨대 책 따위는 모두들 읽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하느냐 하면 사람들은 카페에 모여 앉아 이러쿵 저러쿵 토론을 하면서 나날을 보낸다. 그 정도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국민도 없을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정보의 전달 방법도 일본과는 상당히 다르다. 일본 같으면 정보는 우선 텔레비전으로 보도되고, 신문으로 퍼져나가고, 잡지로 보충이 되고, 서적에 의해서 확인이 되는 셈인데 그리스에서는 일단 정보가 들어오면 마을의 아저씨들이 카페에 모여서 그 정보에 대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끝도 없이 지껄여대고, 그 결과로 막연한 여론 같은 게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여론 형성은 시간이 좀 걸리지만 그만큼 단단히 조리가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버스를 타고 시골을 여행하고 있으면, 내가 있는 곳으로 그리스인 할아버지가 다가와서는 골짜기의 마을을 가리키며 그리스어로 뭐라고 이야기를 걸어온다. 자세히 들어보니 '1944년에 독일군이 여기서 마을 사람들을 250명이나 학살했다'는 내용의 이야기인 것 같다. 그러면 버스 안에 있던 그리스인들은 노인에서 어린이까지 '맞아요, 맞아요.' 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확인하거나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누군가가 "우리들은 나치스를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하고 말하면 또다시 모두들 "그래요, 맞아요."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40년이나 된 옛날 일인데도 모두들 그 학살을 마음속으로 증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건 지나치게 완고하다고 생각해버리면 그뿐이겠지만 반대로 너무 간단하게 매사를 강물에 흘려버리거나, 사고방식을 10년마다 경솔하게 바꿔버리는 요즘의 국민성도 사실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쪽이 좋으냐고 물어보면 나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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