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무시쿠보 노인입니다." 무시쿠보 노인은 여기까지 말하고 헛기침을 했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이 부근에 사는 사람치고 무시쿠보 노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갑작스러운 얘깁니다만, 오늘은 젊은 아가씨들의 처녀성에 대해서 당신하고 얘기를 하고 싶군요."
"자, 잠깐만요. 저는 지금 저녁식사 준비를 하던 참이거든요. 그런 얘기라면 다음에……."
나는 당황해서 상대방을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무시쿠보 노인은 눈치를 채고 잽싸게 문 안으로 상반신을 밀어 넣었다.
"길게 시간을 뺏지는 않겠습니다. 그냥 요리를 계속해도 상관없구요. 여기서는 음식을 만들면서도 얘기할 수가 있겠지요."
정말 어쩔 수 없군.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부엌칼로 마늘과 가지를 싹둑싹둑 썰었다. 부엌문으로 들어오다니 정말이지 용의주도하다. 무시쿠보 노인은 보통 때는 꽤 노망기를 보이는데 이런 때는 무척 머리 회전이 빠른 것 같다.
"무얼 만드는 중입니까?" 무시쿠보 노인은 흥미 있는 듯 내게 물었다.
"음ㅡ, 가지와 마늘이 든 스파게티하고 강낭콩 샐러드입니다."
"그게 댁의 저녁식사입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내가 저녁식사로 무얼 먹든 남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강낭콩이 먹고 싶으면 강낭콩을 먹고 호박이 먹고 싶으면 호박을 먹는다. 젊은 여성의 처녀성과 마찬가지로 무시쿠보 노인이 이러쿵저러쿵 간섭할 일이 아니다. 차라리 단도직입적으로 그렇게 말해 줄까도 생각했지만, 무시쿠보 노인한테 미움을 사면 동네방네 무슨 얘기를 하고 다닐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꾹 참고 잠자코 있었다. 어쨌든 무시쿠보 노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다하고 나면 돌아갈 것이다.
내가 스파게티와 샐러드를 먹고 접시를 다 닦을 때까지, 무시쿠보 노인은 문간에 선 채 잠시도 쉬지 않고 장황하게 처녀성의 중요성에 대해서 얘기를 계속했다. 목소리가 무척 컸기 때문에 노인이 돌아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귀가 윙윙 울렸다. 뜻하지 않은 재난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생각한다.
'요즘은 처녀를 거의 볼 수가 없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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