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노보루가 나한테 문어 그림이 그려진 엽서를 보내왔다. 문어 그림 밑에는 그 특유의 비뚤비뚤한 글씨로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지난번에는 제 딸이 지하철에서 당신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지요. 감사합니다. 언제 가까운 시일 내에 문어라도 먹으러 갑시다."
나는 엽서를 읽고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한동안 여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두 달 동안은 지하철 같은 것은 타지도 않았으며 지하철 속에서 와타나베 노보루의 딸을 도와준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아마 다른 누군가와 나를 혼동하고 있는 거겠지.
그렇지만 문어를 먹는다는 얘기는 나쁘지 않다.
나는 와타나베 노보루한테 편지를 썼다. 엽서에 개똥지빠귀 그림을 그리고 그 아래에, "지난번 엽서는 감사합니다. 문어 좋지요. 먹으러 갑시다. 월말 경에라도 연락 주세요"라고 썼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 와타나베 노보루한테서는 연락이 없었다.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잊어버렸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한 달 동안 묘하게 문어가 먹고 싶었지만, 어차피 와타나베 노보루하고 먹으러 갈 거니깐 하고 미루다가 결국 못 먹고 말았다.
내가 문어의 일도 와타나베 노보루의 일도 잊어버렸을 때쯤 그에게서 또 엽서가 왔다. 이번 엽서에는 개복치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 밑에 글이 있었다.
"지난번 문어는 참 맛있었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문어다운 문어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날 이야기한 당신의 생각에 대해서는 약간 이의가 있습니다. 결혼 적령기가 된 딸을 가진 부모로서, 저는 당신의 성적 가치관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냄비요리라도 먹으면서 천천히 얘기를 나눕시다."
저런 저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와타나베 노보루는 또 나와 누군가를 혼동하고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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