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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신문이 끼어들 틈이 없다

chocohuh 2022. 11. 22. 11:02

외국에 나가서 가장 마음이 편한 것은 신문을 읽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나는 일본에 있을 때도 거의 신문을 읽지 않는 편이므로 장소와는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일본에 있으면 싫든 좋든 큰 사건 등에 관한 얘기를 듣게 된다. 가령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전투기에 격추된 사건쯤 되면 일단은 신문을 한 장 한 장 넘겨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럽 같은 데 있으면 현지의 신문은 읽을 수가 없고,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비싼 돈을 내고 영자 신문인 <헤럴드 트리뷴>을 사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라, 정보와는 전혀 무관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렇게 지내면 정말 편하다. 솔직히 신문 같은 것은 없어져도 조금도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리스에 있을 때는 불편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난다 > 밥 먹는다 > 수영한다 > 밥 먹는다 > 낮잠 잔다 > 산책한다 > 술 마신다 > 밥 먹는다 > 잔다. 이런 패턴이 노상 반복되어 도무지 신문이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리스는 정말 훌륭한 나라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전에 독일에서 한 달간 체류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신문이란 걸 읽지 않았다. 딱 한 번 베를린행 팬암기에서 서비스로 준 트리뷴을 읽었는데, 별다른 사건도 없어서 '그런가, 미국이 그레나다를 침공했나'라든가 '론과 야스가 손을 잡았군' 하고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그보다는 독일의 젊은이들이 모두 반핵 배지를 가슴에 달고 있거나, 퍼싱2 반대 캠페인 실(Seal)을 차에 다닥다닥 붙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세계의 흐름 같은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진짜 정보란 바로 그런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코 신문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단지 세상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 나가는 것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정보가 흘러넘치도록 무진장 많은 건 아닐까 생각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