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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영화의 엉터리 자막 이야기

chocohuh 2022. 11. 28. 14:55

존 스터지스 감독의 <황야의 7>이라는 영화가 있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스터지스가 각색하고, 율 브리너와 스티브 맥퀸이 출연해서 유명해진 영화로, 본 사람도 꽤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영화속에서 제임스 코번의 냉정한 모습과 로버트 본의 과장된 촌스러운 연기를 특히 좋아하는데 그것은 이 이야기의 본 줄거리와 관계가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내가 문제로 삼고 싶은 것은 이 영화의 첫 부분이다. 영화는 우선 멕시코의 한 마을을 멕시코인 산적이 습격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그것대로 전혀 상관이 없지만 그 멕시코인끼리 영어로 지껄여대는 것이다. 그것도 참으로 말도 안 되는 멕시코 사투리 영어로 "나하고 너, 친구다.", "너희들 수확 빼앗아 가면 우리 마을 굶어 죽는다."라는 식이다. 그런 바보스러운 대화를 할 바에는 제대로 된 스페인어로 얘기를 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지만, 미국인의 자막 혐오증은 상당히 철저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이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아디오스'라든가, '바이아 콘디오스' 같은 인사말은 모두 스페인어이다. 하긴 나처럼 그 바보스러움이 마음에 들어서 몇 차례씩이나 <황야의 7>을 되풀이해서 보고 있는 멍청한 인간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허리우드의 사정도 변해서 영화에 등장하는 독일인은 독일어를, 프랑스인은 프랑스어를 정확히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소피의 선택> 같은 영화 속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아우슈비츠의 장면은 전부 독일어로 되어 있다.

 

얼마 전에 재일 미국인과 <소피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는 "나는 독일어를 모르고 일본어 자막도 읽을 줄 모르니까 아우슈비츠 장면은 전혀 모르겠더라고" 하고 불평을 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다. 리얼리즘이라는 것은 보기보다는 피곤하고 불편한 것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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