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날이 있는 인생은 빨리 흘러간다."는 것은 미국의 어느 저널리스트가 한 말인데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다. 유식한 체를 해서 죄송하지만 영어에서는 마감날을 '데드라인'이라고 한다. 데드라인이라는 말에는 그 밖에도 '사선: 죄수가 이 선을 넘으면 사살 당한다.'라고 하는 의미도 있어서 이것은 일본의 '마감날'보다는 훨씬 어감이 절실하다.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마감이라는 것은 작가 쪽뿐만 아니라 상대방인 편집자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자주 이 마감날 문제가 화제에 오른다.
1. 마감날에 늦는다. 2. 악필 3. 건방지다. 는 것은 작가가 편집자를 울리는 '3대 요소'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3에 대해서는 상당히 죄책감을 느끼지만, 1이나 2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결백하다. 마감날을 제대로 잘 지키고 글씨는 특출나게 읽기 쉽게 쓴다. 그래서 마감날에 늦어지기 일쑤인 작가나 악필인 작가에 대한 불평은 남의 일이어서 웃어넘길 수가 있으며, "그건 좀 너무하군요." 하고 적당히 편집자에게 동정 어린 말을 하기도 한다. 게다가 대체로 둔필이나 악필이라는 것은 재능이나 인격과는 전혀 무관한 성향이니까, 잡담으로 삼기에 비교적 부담이 적고 이야기도 밝다.
편집자들의 말에 의하면 일류 대가 정도의 작가쯤 되면 더러 마감일이 되기 4, 5일 전에 편집부에 전화를 걸어서 "아아, 자네인가? 이번 연재는 쉬겠네!" 하고 한마디 하고는 탕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잡지사는 온통 발칵 뒤집힌다.
재미있다고 하면 재미있을 것 같지만 나 같은 사람이 그런 짓을 했다가는 즉각 어느 들판으로 끌려나가 사살당하고 말 것이다. 5분 후에 전화를 걸어서 "조금 전에 한 말은 거짓이고, 원고 다 돼있어요" 하고 말해도 두 번 다시 원고 청탁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까지 심하지는 않더라도 편집가가 작가의 집에서 잠을 자면서 기다리거나, 받아든 원고를 초스피드로 차를 달려서 가까스로 데드라인 한 시간 전에 인쇄소로 전달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자주 듣는다. "정말이지 XX씨에게 질렸다니까!" 하고 편집자는 불평을 늘어놓지만 내가 듣기에는 편집자 쪽에서도 그러한 데드라인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만약 이 세상의 작가들이 모두 마감 3일 전에 원고를 전달하는 일이 생긴다면-그런 일은 행성이 직렬로 나란히 늘어선 데다 헬리혜성이 겹치는 정도의 확률로밖에 일어날 수 없겠지만-편집자들은 아마 어느 곳의 술집에 모여서 "요즘 작가들은 기개가 없어 옛날이 좋았다니까!" 하면서 불평을 늘어놓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내 목을 걸어도 좋을 정도로 확실한 이야기다.
작가들 가운데는 그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상당히 많은 탓인지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내가 2,3일 뒤로 닥쳐온 마감날 걱정을 하고 있으니까 "이봐, 원고라는 것은 마감날이 되면 그때부터 쓰기 시작하면 되는 거라고" 하고 충고해주었다. 편집부에선 반드시 며칠 여유를 남겨두고 일찍 마감날을 설정하니까 그 사람의 주장에도 일리도 있겠지만 나는 성격적으로 도저히 그런 짓은 하지 못한다. 마감날 3일 전쯤에는 완성을 해서 원고지의 모서리를 탁탁 가지런히 맞춰 책상 위에 올려놓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분해지는 효과라는 것도 있다. 글을 쓰고 나서 금세 원고를 건네주어 버리면 이따금 나중에 '아차! 그런 것은 쓰지 말 걸 그랬어!'라든가 거꾸로 '그래 이렇게 썼으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있는데 3일 정도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그런 위험 부담은 회피할 수가 있다.
웬만한 베테랑이 아닌 한 펜이라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과속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딴 3일 간의 여유를 갖기만 해도 무의미하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처를 입히거나 쓸데없이 망신을 당하는 것을 피할 수가 있다. 그것은 참으로 간단한 일이다.
다음으로 아슬아슬한 선까지 늦어지게 되면 인쇄소 직원들에게 폐를 끼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고교시절에 학교 신문을 만드느라 인쇄소에 늘 드나들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데 인쇄소 아저씨들은 누군가의 원고가 늦어지거나 하면 철야를 해가면서 활자를 뽑지 않으면 안 된다. 인쇄소의 식자공 집에서는 아주머니가 식탁에 저녁식사를 차려놓고서 아저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빠, 아직도 안 돌아오시네" 하고 초등학생인 아들이 말하면, 엄마는
"아빠는 말이야,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의 원고가 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하시지 않으면 안 된단다." 하고 설명을 한다.
"그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녀석은 나쁜 사람이군요."
"그래, 틀림없이 변변치도 못한 3류 소설을 쓰면서 세상 사람들을 속여먹고 있을 게다."
"엄마, 이다음에 내가 어른이 되면 그런 나쁜 녀석은 힘껏 두들겨 패줄 거야."
"그래, 그래, 착하구나!" 하는 식의 대화를 상상하면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얼른 원고를 완성해버리게 된다. 어쩌면 나는 상상력(이라고 할까 망상력이겠지?)이 지나치게 발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어째든 간에 나는 분명히 3의 건방진 인간일지는 모르겠지만 식자공의 처자에게 미움을 살 가능성만은 일단 배제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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