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주유소에 들어가면 무슨 까닭인지 유별나게 기세 등등한 종업원이 설쳐 댄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퉁명스러운 것보다야 나을지 모르겠으나, 고함을 치듯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면서 90도로 허리를 굽힐 때면 솔직히 눈살이 찌푸려진다. 고교 야구를 하는 것도 아니니 기름 정도 좀 조용히 넣을 수 없을까 싶다. 처음으로 일본에서 기름을 넣는 외국인들은 종업원이 갑자기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질겁하지 않을까. 어째 '전장의 크리스마스' 같은 풍경 아닙니까. 요 얼마 전에도 운전을 하다 보니, '일본에서 최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하는 주유소'라는 광고 플래카드가 보였다. 물론 내가 그런 데 들어갈 리는 없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다들. 일본에서 최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고 해서,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아시다시피 미국은 셀프서비스 주유소가 주류다. 혼자 주유소에 들어가 크레디트 카드를 기계에 쑥 집어넣어 말없이 기름을 넣고, 기계에서 튀어나오는 크레디트 카드를 받아 들고 그대로 나간다. '어서 옵쇼'도 '감사합니다.'도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셀프서비스의 묵묵한 과정을 제법 좋아하여, 셀프서비스와 풀 서비스가 있으면 반드시 셀프서비스 쪽으로 들어간다. 물론 셀프 서비스 쪽이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또 하나 영어로 '가득 채워 달라(Full it up, Please)'고 말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게 처음부터 좔좔 발음되지 않는다 말씀이에요. 미국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발음하는데(당연한 일이다).
내가 미국에 가서 처음 살았던 뉴저지 주는, 셀프 서비스 주유소가 법률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나는 주유소를 이용할 때마다 이 'Full it up, Please' 발음을 연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결국 끝까지 유창하게 발음하지 못했다. 아마도 나의 구개 형태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리라. 매사추세츠 주로 이사하여 셀프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자, 사소한 일이지만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잠깐, 구태여 가득 채울 필요 없지. 10달러어치만 넣어 줘(Ten bucks, Please)라고 말하는 건데'하고 깨달은 것은, 뉴저지 주를 떠나서도 한참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참 내, 어쩌자고 머리가 이렇게 늦게 돌아가는 건지.
영어 발음하면, 나는 맥주라는 뜻의 '쿠어스(Coors)' 때문에 곤혹을 치른 일도 있다. 하와이에서 한여름 무더운 오후에 바에 들어가 '쿠어스'를 주문하였다. 그런데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코어스'니 '쿠아스'니 '콰아스'니 '쿠우아스'니 하고, 표정에다 제스처까지 섞어 땀방울을 흘려가며 여러 가지로 발음해 보았지만 결국 헛수고였다. 할 수 없이 버드와이저를 마셨다. 그렇다고 버드와이저의 맛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일이 있으면 피곤이 확 몰려온다.
그런데 이 하와이에서의 사건은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나는 그때까지 1백 번 이상이나 미국의 바나 레스토랑에서 쿠어스를 주문하였지만, 의사소통이 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밀러 맥주에 관해서는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은 비극적인 에피소드가 있지만…… 흑흑). 유독 하와이에서만, 그 뚱뚱하고 짜증 나는 웨이트리스만 내 '쿠어스'를 알아듣지 못했다. 왜 그런 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지, 대답은 부는 바람 속에나 있을 것이다, 마이 프렌드.
영어는 그렇게 잘하지 못하지만, 외국에서 바에 들어가 무리 없이 맥주를 주문하고 싶으신 분에게는 저의 오래고 귀중한 체험에 바탕하여 하이네켄 맥주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철자에 R도 L도 들어 있지 않아 비교적 발음하기 쉬우므로, 욕심 같아서는 제1음절에 악센트를 주어 '하이네켄'으로 발음하면 좋겠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충분히 통한다. 당신 앞으로 틀림없는 하이네켄 맥주가 나올 것이다. 분명. 아마. 반드시.
그런데 맥주든 기름이든 미국에서 돌아와 보니 일본은 가격이 너무 비싸 아연해질 지경이다. 미국에서 맥주는 작은 병이 1달러 이하이고, 기름은 가득 채워도 20달러를 넘는 일이 없었다. 일본에서 기름을 넣으면 자칫 1만 엔을 훌쩍 넘어 버린다. 아무리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지만, 기름 값이 이렇게 비싸서야 어디 인사받은 기분이 나겠습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말없이 싼 편이 좋다.
그러나 미국 역시 압도적으로 싼 맥주와 기름 값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정세다. 미국의 재정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주세와 유세를 증액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클린턴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마디라도 벙긋했다가는 재선은 어림도 없을 것이다. 자동차와 맥주와 총은, 미국 남자들에게는 누가 뭐라든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피켓 라인인 것이다. 과연 어떻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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