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전에 나는 옷장의 옷들을 정리하다가 양복을 다섯 벌이나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넥타이도 스무 개나 있었다. 그러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과거 3년 동안 양복을 입은 적은 겨우 한 번밖에 없고, 넥타이 역시 한 해에 몇 번 맬까 말까..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양복을 가지고 있는 거지 하고 나는 스스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일단 명색이 사회인이니 무슨 때를 위해서 계절마다 양복을 준비해 두는 것은 상식이겠지만, 그것 역시 '흥, 나는 양복 따윈 안 입어.' 하고 형식을 거부하면 직업병으로 통하지 않을 것도 없다.
어째서일까 하고 나는 머리를 갸우뚱거리다가 문득 생각났는데(까맣게 잊고 있었다.), 마흔 전후쯤 되었을 때 '그래, 이제 내 나이 젊지도 않은데 슬슬 제대로 된 차림을 하고 제대로 어른다운 생활을 하자.' 하고 결심했다. 그래서 양복을 맞추고 가죽 구두도 샀다. 마침 로마에 살고 있을 때여서, 적당한 가격으로 아주 좋은 옷을 살 수 있었고, 그런 옷을 입고 '외출할' 장소도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괜찮은 옷을 입지 않으면, 레스토랑에 가도 좋지 않은 자리로 안내한다. 이탈리아는 무조건 옷차림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나라로 인격이니 능력이니 하는 일상생활의 레벨은 전혀 관계가 없다. 무엇이 어찌 되었건, 우선은 외양이다. 그래서 모두 말쑥하게 차려입고 있다. 뭐, 그건 그것대로 깔끔해서 좋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나는 일본에 돌아와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의 청바지와 운동화 생활로 돌아오게 되어, 양복이니 넥타이니 가죽 구두니 하는 따위는 까맣게 잊게 되었다. 한심하다.
생각건대, 인간의 실체란 것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무엇인가의 계기로, '자, 오늘부터 달라지자!' 하고 굳게 결심하지만, 그 무엇인가가 없어져 버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마치 형상 기억 합금처럼, 혹은 거북이가 뒷걸음질 쳐서 제 구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처럼 엉거주춤 원래의 스타일로 돌아가 버린다. 결심 따위는 어차피 인생의 에너지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옷장을 열어 거의 팔도 끼어 보지 않은 양복과 주름 하나 없는 넥타이를 앞에 두고 절실하게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과는 반대로 '별로 달라지지 않아도 돼.' 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이상하게 사람은 달라져 가는 것이다. 희한한 일이다.
각설하고,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양복이라면, 20년쯤 전에 '군상' 신인상을 받을 때, 수상식에 입고 간 올리브 색 면 양복이다. 양복이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아 아오야마에서 바겐 세일하는 한 가게에 가서 샀다. 거기에다 평소 신던 운동화를 신었다. 그때는 지금부터 뭔가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는가 하면, 음, 확실히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고, 별로 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도 할 수 있고. 흐음, 잘 표현할 수가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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